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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덧칠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했다. 영화 <설행: 눈길을 걷다>

   
▲ <설행: 눈길을 걷다> 캐릭터 포스터

[디아티스트 매거진=박동수]

*스포일러 포함

알코올 중독자 정우(김태훈)는 어머니의 추천으로 수녀들이 운영하는 깊은 산 속의 요양원을 찾는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꿈과 현실을 오가고, 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며 시간을 보내던 정우에게 비밀을 지닌 수녀 마리아(박소담)가 다가온다. 마리아와 교감하며 조금씩 치유되는 정우는 매년 겨울이면 요양원을 찾는 사냥꾼(최무성)을 만난다. 사냥을 나가는 그의 가방 속 술을 노리고 따라간 정우. 갑작스런 눈에 그들은 산 속 폐가에 고립된다.

   
▲ 정우(김태훈)과 마리아(박소담). <설행: 눈길을 걷다> 스틸컷

생각보다 더 종교적인 영화이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요양원이 배경일 때부터 미스터리 장르와 종교적 색채의 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관람한 <설행: 눈길을 걷다>는 ‘종교영화’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될법한 영화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종교를 통한 죄책감의 참회이다. 때문에 가톨릭적인 요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미사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묵주기도법이 언급되기도 하며(직접 언급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수녀들의 위계가 언급된다. 가장 중요한 소품은 ‘쳉스터호바의 검은 성모’ 그림이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기독교 유물인 이 그림은, 과거 침략자들이 약탈을 시도하다 그림이 벽에서 떨어지지 않자 그림 속 성모의 창을 던졌는데 그 흠집에서 피가 흘렀다는 전설이 있다. ‘쳉스터호바의 검은 성모’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가톨릭적인 요소 외에도 불교의 화엄사상이나 무당의 토속 민속신앙까지 등장한다.

   
▲ <설행: 눈길을 걷다> 스틸컷

영화는 정우의 죄책감에 집중한다. 정우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정우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게 된 이유가 자신이라 생각한다. 이는 극 중 반전으로 등장하는데, 극 초반에 요양원에 데려다 주는 정우의 어머니는 정우의 환상이었다. 정우가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이는 후반부에 플래시백으로 등장한다. 정우의 죄책감은 무당인 어머니를 둔 마리아의 이야기와 맞물린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무당이고, 어릴 적부터 신병에 들린 마리아는 신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을 받는다. 마리아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느낌(불교의 화엄사상의 인용)을 좋아했지만, 소위 ‘빙의’라고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때문에 마리아는 어머니를 부정하고 집에서 도망쳐 수녀가 된다. 마리아는 무당인 어머니를 원망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선물이라 여기며 묘한 죄책감을 가진다. 그래서일까, 정우를 챙겨주는 마리아의 모습은 정우와 마리아가 유사 어머니-아들 관계처럼 보이게 만든다.

   
▲ 사냥꾼(최무성) <설행: 눈길을 걷다> 스틸컷

그리고 가장 모호한 인물일 듯한 사냥꾼이 등장한다. 과연 그는 정우의 환상일까, 아니면 실제일까? 정우는 사냥꾼의 가방에서 유리병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서 술병이 아닐까하고 사냥꾼을 따라 나선다. 하지만 그 병의 정체는 사냥꾼의 아내의 뼛가루를 담은 사기그릇이었다. 폭설을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게 된 둘. 금단증상 후유증으로 잠시 기절했다 일어난 정우에게 사냥꾼을 총을 겨눈다. 그는 자신을 죽이거나 죽지 않으면 산에서 내려갈 수 없다고 정우를 협박한다. 아내를 산에 묻어주고 자신도 자살(할 자신은 없기에 정우에게 부탁하려는)할 속셈인 것이다. 정우는 결국 도망치다 그를 찾으러 온 마리아를 만나고. 마리아는 사냥꾼이 쏜 총에 맞는다. 그러고 기절하는 정우. 그는 깨어난 뒤 과거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과 사냥꾼이 들고 온 뼛가루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깨닫는다. 그 산에 묻어달라는 것 역시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 <설행: 눈길을 걷다> 스틸컷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함께 요양원을 찾았던 기억 속에서 사냥꾼이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것을 보면 사냥꾼 또한 정우의 환상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물론 환상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해석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때문에 사냥꾼의 총에 마리아가 맞는 것은 결국 정우의 어머니가 정우를 위해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총에 맞은 마리아가 눈밭에 누워있고, 검붉은 피가 퍼지며 얼굴에 ‘쳉스터호바의 검은 성모’와 같은 상처가 나는 장면은 죄책감을 뉘우치고 싶어 하는 정우의 소원이 이뤄진 결과랄까. 영화의 주제인 종교를 통한 참회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끝내 참회가 간단하게 이루지지 않음을 확인시키며 끝났다.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고, 어머니의 묘에 걸릴 십자가를 직접 조각하지만, 그의 참회는 끝나지 않았다.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마리아는 기도원으로 향했다. 그녀 역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끊기 위해 기도한다. <설행: 눈길을 걷다>는 영화적 종교적 구원이 아닌 현실적인 종교적 구원을 갈구한다. 환상이라는 영화적 요소를 통해 이를 강화한다. 비록 후반부가 너무나도 모호해지고, 맥 빠지는 반전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김태훈 박소담 두 배우의 절제되면서도 터질 땐 터지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관객과의 대화가 있다면 참여해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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