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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 씁쓸하고 아픈 현실에의 거리두기

   
▲ <빅쇼트>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빅쇼트>(2015, 아담 맥케이)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다들 ‘극 영화’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 다소 차이는 있더라도 ‘새롭고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로의 몰입’이라는 것은 아주 대표적인 기대이다. 그러므로 영화관 내의 모든 환경(어두운 공간, 사방에서 튀는 사운드, 바짝 당겨지는 스크린 등)이 이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극히도 집중한다.

그런데 <빅쇼트>는 명백히도 이 기대를 과감히 배반한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첫 자막과 더불어 불쑥 튀어나오는 다큐멘터리적 화면 배열, 극적 배경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나레이션, 지속적으로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시도하는 등장인물들, 이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입니다.’라고 강조하며 몰입을 방해한다. 방해는 또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극장에 입장하기 전에 바라본 포스터에서 ‘월스트리트에서 부유하는 돈을 노리는 천재들의 케이퍼 무비’일 것이란 기대 역시 서사가 진행되면서 꾸준히 무너진다. 포스터에 떡하니 자리한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레드 피트’의 환상적인 협업을 기대했지만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스티브 카렐과 라이언 고슬링을 제외하고는 서로 대면하지도 않는다.

이 말인 즉, 영화 <빅쇼트>는 흔히들 선호하는 영화적인 쉬운 길을 거부한 영화라는 의미이다. 더 자극적인 몰입도와 흥미로운 서사로 쉬운 흥행을 이끌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더 어려운 길로 향하는 것일까? 나는 <빅쇼트>를 향하는 질문을 여기서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감독이 주조한 무언가의 메시지를 최대한 납득할만한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지극히도 수사학적 매체라고 할 수 있다.(물론 그 틀을 깨는 파격은 늘 존재한다) <빅쇼트>는 그런 의미에서 ‘납득할만한 방법’을 새롭게 제시한다. 사실 전반적으로 흐르는 메시지는 기존 몇몇 영화들에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위해 양심과 인간성을 팔아버린 세상의 부정성을 고발’하며 부패한 세상을 향해 일갈한다. 그런데 이 지긋지긋하고 뻔한 일갈이 <빅쇼트>에선 꽤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마이클 버리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미국 주택 시장의 붕괴를 예측하고, 월스트리트 붕괴에 돈을 배팅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비웃음을 사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는 큰돈을 번다. 일반적인 영화였으면 이 대목에서 느껴질 정서는 ‘통쾌함’(한국 영화 <작전>(2009)에서의 통쾌함과 같은……) 이었겠지만, 486%라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자랑스레 칠판에 적는 그의 행동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하다. 아마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희열보다 내가 옳았기에 누군가 연금을 잃고, 노후자금을 잃고, 집을 잃고, 차를 잃고, 생을 잃었다는 안타까움 탓일 까닭이다. 정확히 통념과 반대되는 결말. 과연 <빅쇼트>는 이 찝찝함으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걸까?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수사학의 세 요소로 흔히 Ethos(전달자의 인격적 측면), Pathos(정서적 측면), Logos(논리적 측면)를 이야기 한다. 그런데 <빅쇼트>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아이러니하게 비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실패에 투자한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는 시장의 실패로 큰 이득을 버는 사람들이지만, 시장이 붕괴하며 생긴 다수의 손해에 괴로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계속 ‘왜 채권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거야!’하며 자신들의 손해를 병적으로 거부한다.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이들의 모습. 이러한 가식이 관객들에게 느껴지지 않고 단순히 ‘착한 사람들’로 포장됨은 마이클 버리의 장애와 마크 바움의 형을 잃은 사연과 찰리(존 마가로)와 포터(해미쉬 링클레이터)의 자수성가에 따른 정서적 호소에 의함이다. 전달자의 인격이 정서로 덮이고, 그 포장된 정서는 꽤나 우스운 결말로 나아간다.

돈을 벌었지만(그것도 아주 많이) 돈을 잃은 사람들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인물들. 어마어마하게 모순된 이 상황은 명백히도 분열증적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 속 현실보다도 더 우스운 건 현실의 사건이다. 돈을 잃은 사람들은 고통 받고, 그 원인이 되었던 은행의 고위관계자들은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만큼보다도 현실은 더 분열증적이다.

<빅쇼트>가 굳이 영화적으로 쉽지 않은 길을 갔는지는 바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한 까닭이다. 관객들은 현실에 거주하고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낯섦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같은 맥락으로 <빅쇼트>가 정확히도 현실을 반영하지만, 계속 영화적 기대를 배반하고 거리감을 심는 것은 아마 현실에 눈 먼 이들을 위한 감독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결말에 자막으로 나타나는 주인공들이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약간은 분노가 치민다. 어찌됐건 수많은 사람들의 피고름과 같은 돈을 벌어간 가식적 인물들이지 않은가? 한참을 분노하다가 ‘왜 극장에선 분노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미쳤을때, 나는 나 또한 분열증에 걸린 사람이란 걸 깨닳았다. 세상은 참 바라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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