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2015년 후반에서 현재 2016년 새해가 밝은 지금까지 tvN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는 여전하다.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과거로의 여행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1988년을 추억하고 있는 세대들 그리고 1988년을 궁금해 하는 세대들의 수요까지 전부 잠식해버렸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현재 대중문화예술 중심에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어떻게 대중문화예술 중심에 단번에 침투할 수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음악에 있다. 여러 방송 소품, 상황 설정 등이 1988년도로 되돌아가게끔 도움을 주었지만 1988년도를 들려준 음악이 있었기에 ‘응답하라 1988’의 시청층은 눈을 감도 1988년도로 단번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1988년을 들려준 ‘응답하라 1988’ 속 음악들을 다시 들어 그 때의 추억을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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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에게’가 실려있는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
무한궤도 – 그대에게
현재 대중음악 공급 화수분은 누가 뭐래도 음악 경연 방송들이 제 1선에서 채워주고 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K팝스타’, ‘쇼 미 더 머니’ 등 다양한 음악 경연 방송들이 다양한 음악과 음악인 데뷔를 제공하며 현 대중음악 공급의 화수분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1980년대 후반에는 어땠을까? 1980년대 특유의 방식이라면 방식이자 당시만의 음악 경연 방송이었던 각종 가요제가 있었다.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의 가요제들이 굳건하게 개최되어 각자 가요제에 맞는 권위도 자랑하고 있었다. 1988년 제 12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1988년 자체를 상징했던 곡이 세상에 등장하니 바로 그 음악이 故신해철의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였다. ‘그대에게’ 특유의 도입부 멜로디는 1988년으로 돌아간다는 신호탄과 같았고 이 멜로디를 ‘응답하라 1988’은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보다 추억으로의 회귀를 수월하게 도왔다. 당시의 음악 생산 방식, 당시의 음악적 정서 그리고 당시를 기억하는 세대들에 대한 강력한 호소 등을 전부 갖춰버린 1988년 음악, 바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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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에 손잡고’가 실려있는 코리아나의 ‘그날은’ | ||
Koreana – 손에 손잡고
1988년은 뭐니 뭐니 해도 세계 스포츠인들의 축제, 88 서울 올림픽으로 그때를 단번에 회상할 수 있다.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 개폐회식을 위해 관객석을 가득 채운 전 세계의 국민들, 성대한 올림픽을 알리는 굴렁쇠 소년의 꿈을 담은 달리기, 88 올림픽을 가장 한국답게 상징해준 호돌이까지, 우리는 88 올림픽을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눈으로 이렇게 많이 기억하고 있다면 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있다. Koreana가 부른 ‘손에 손잡고’로 기억하고 있다. 88 올림픽 개회식에 부른 ‘손에 손잡고’는 올림픽이 항상 꿈 꾸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음악을 전달하기에 너무나도 정확한 음악이었다. 국제 스포츠 대회가 감당해야만 하는 평화적 정서를 분명히 담는데 성공한 것이다. 고로 ‘손에 손잡고’는 88 올림픽 자체를 상징하는데도 성공했으며 대중들로 하여금 1988년도를 단번에 응답하게도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쉽게 덕선이는 마다가스카르의 입장 팻말이 아닌 우간다의 팻말을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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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항상 그대를’이 실려있는 이선희의 ‘사랑이 지는 자리’ | ||
이선희 – 나 항상 그대를
1980년대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시기다. 현재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뿜고 있는 음악인들의 왕성히 활동했던 시기이며 가장 두드러지게 대한민국 대중음악이 음악적 성장을 이룬 시기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은 넘쳐났다. 故이영훈과 영혼의 합작을 선보였던 이문세, 누구도 복사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가 되어버린 정수라, 일말의 수식어조차 아까운 가왕 조용필까지. 1980년대를 수놓았던 가수들은 정말 많았다. ‘응답하라 1988’은 인물들의 묘한 감정선이 섬세하게 표현돼있어 이 점을 즐기는 묘미도 상당한 드라마다. 선우는 보라를, 정환이와 택이는 덕선이를, 그 사이에서 덕선이가 누구의 마음을 받을지를, 참으로 미묘한 감정선이 진행되는 드라마다. 결국 ‘응답하라 1988’ 속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다. 그래도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가. 1988년도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며 이 청춘들의 감정에 한껏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 음악이 역시 1980년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가수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다. 한 사람만 바라보는 마음을 이선희의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한 음악이 ‘나 항상 그대를’이다. 한 사람만 바라보는 선우, 정환, 택 이 세 남자의 굳은 사랑과 참으로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아닐 수 없다. 1988년도에 발매되어 1988년도를 들려주는 동시 ‘응답하라 1988’ 속 미묘한 감정선을 잘 노래해준 음악,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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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노을’이 실려있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
이문세 – 붉은 노을
‘응답하라 1988’은 두 말 할 것 없이 1980년대 후반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1980년대 후반 청춘들의 낭만을 역시 단번에 상징할 수 있는 매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라디오가 있다. TV 산업이 완벽히 또는 활발히 활개를 펴지 못 했을 시기였기에 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 라디오가 청춘들의 정서적 소통창이 되어주었다. 수많은 라디오 방송 중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에’는 당시 청춘들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2016년 현재도 1980년대 후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당시의 청춘들은 기린다. 1980년대 후반 청춘들의 낭만을 후벼팠던 그 문제적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를 책임졌던 별밤기지는 바로 이문세였다. 1980년대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중심에 이미 서있던 이문세는 라디오라는 방식으로도 청춘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이문세가 1988년 9월 15일 발매한 5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7번 트랙 ‘붉은 노을’은 마냥 서정적인 음악색에서 벗어난 신나는 분위기를 들려주었으며 세상으로 뭔가 소통하고 싶어 라디오를 찾는 1988년 청춘들의 감성에도 정확히 꽂혀들었다. 젊은 피를 가지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1980년대 후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이문세라는 별밤기지와 단번에 음악적으로 소통하게 해준 음악이 바로 ‘붉은 노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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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에서’가 실려있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를 찾는 사람들’ |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광야에서
역사를 되짚어보자. 1988년은 각종 가요제들이 존재했다. 1988년은 올림픽도 개최됐다. 1988년은 한국 대중음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1988년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한 라디오도 성행했었다. 참 문화적으로 의미가 깊은 1988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1988년 아니 1980년대 후반이었을까? 1980년대가 존재했기에 현재의 우리 사회가 존재했다. 무슨 말이냐면, 보다 발전된 사회인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1980년대 시민들의 항거가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이렇게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역사가 198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었다. 이 점이 ‘응답하라 1988’은 피하지 않고 표현해버렸다. 서울대학생 보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그에 따라 몸도 많이 고생한다. 비록 보라라는 인물은 픽션의 인물이지만 보라가 보여준 대학생들의 뜻있는 항거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1980년대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이 당시 음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직접적으로 시위대를 위하여 창작했다고 밝히진 않았지만 민중들의 가슴을 울릴만한 민중가요가 대거 등장했다. 그 수많은 민중가요 중에 ‘응답하라 1988’에도 삽입됐고 당시의 정서 또한 잘 반영한 음악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광야에서’다. 가사가 이리도 간절하고 절절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아래에서 살아가는 보다 좋은 사회를 간곡히 원하는 꿈이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른 민중가요들도 당시에 많이 공개됐지만 단연 ‘광야에서’가 가장 짙게 1980년대 항거 역사를 잘 대변해준다고 믿는다. 보라의 굽히지 않았던 신념을 음악으로 듣고 싶다면 현재 우리 민주주의 사회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느껴보고 싶다면 ‘광야에서’를 꼭 듣길 바란다. 그렇게 1988년도의 응답에 응답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