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훈기]
검을 휘두르는 사무라이.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력적인 소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사무라이의 무사도는 이웃나라의 필자가 봐도 굉장히 멋있게 느껴진다. 그런 사무라이를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남자의 로망과도 같은 사무라이의 매력으로 오랫동안 관객을 매혹시켜온 영화 그리고 사무라이를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영화. 바로 <7인의 사무라이(195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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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인의 사무라이>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 ||
필자가 소장하는 <7인의 사무라이> DVD는 많이 닳아있다. 여러 번 완주하여 생긴 흔적이다. 그런데,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 심지어 휴식시간을 영화 속에 자체적으로 삽입한 무서운(?) 이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틈만 나면 이 영화 앞에 앉는다. 재미있는 건 둘째 치고, 볼 때 마다 신선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줄거리와 포맷을 외우고 있는데도 말이다. 좋은 영화에는 뭐든지 이유가 있다. 신선함은 영화를 찰지게 해주는 소스가 이곳저곳 버무려져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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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 ||
<7인의 사무라이>를 논할 때면 항상 붙어 다니는 단어가 있다.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등장을 의미하는 ‘멀티 주인공’이다. 현대 할리우드 영화의 트렌드인 ‘히어로 무비’에서 이 ‘멀티 주인공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누구나 알만한 <어벤져스>와 <판타스틱4> 등이 있다. 근래에는 ‘멀티 주인공 시스템’의 영화가 비일비재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가 등장한 시점에는 혁신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7인의 사무라이>는 단순한 시작점에 불과하지 않고, 완성형에 가깝게 다진 영화라는 점에서 큰 좌표가 되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혜성같이 등장한 ‘브라운 아이즈’의 한국형 R&B음악 도입에서 완성까지 이룬 그들의 음악적 행보를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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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
속담 중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다.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이 필히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화도 일맥상통한다. 몰입하지 못할 영화는 말장 도루묵이다. 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는 그 난관을 뚫고 나왔다. 많은 사공들의 힘을 받아 저어 나아간다. 그 힘은 7명의 사무라이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하게 표현하기에 뿜어져 나온다. 정말이야 영화의 힘이 폭발하기 직전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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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 ||
<7인의 사무라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할리우드에서 이를 토대로 리메이크를 기획하였다. 제목조차 흡사한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1960)>이다. 도적으로부터 7명의 주인공이 농민들을 보호한다는 같은 포맷(주인공의 신분이 총잡이라는 점이 구별)의 <황야의 7인>도 큰 히트를 기록하며 속편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영화에는 <7인의 사무라이>의 핵심인 ‘멀티 주인공 시스템’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당시 스타배우였던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등을 캐스팅하며 캐릭터화한 점이 그렇다. 하지만, 그들 7명의 매력을 다 합쳐도 <7인의 사무라이> 속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기쿠치요 한 명의 매력을 당해내기에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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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야의 7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 ||
<7인의 사무라이>는 ‘액션 영화의 교과서’로 꼽힌다. 반세기 묵은 영화임에도 최신 액션 영화와 비교해도 테크닉은 시간을 속일 순 없겠지만, 현장감과 박진감만은 손색없다. 현장감과 박진감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재미로 이어진다. <7인의 사무라이>는 지금의 액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현재에도 이 영화의 요소를 많이 차용하고, 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중 하나가 한 장소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여 여러 각도로 촬영한 장면이다. 관객들은 한 사건을 다양한 시선을 통해서 감상함으로써 입체감을 더해준다. 또한, 최근 널리 사용하는 슬로우 모션 기법을 도입하여 액션 하나하나에 사실감을 준 것도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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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 ||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7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세계적 출세작이다. 과거, 그의 또 다른 걸작 <라쇼몽(1950)>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마르코 금사자상을 수상하였지만, <7인의 사무라이>가 세계적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물론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 출품 당시, 정작 구로사와 아키라 본인은 출품된 사실을 몰랐다는 유명한 일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도 추가할 수도 있다. <스타워즈>의 모티브도 바로 그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조지 루카스가 그의 작품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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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루카스 감독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
결과적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는 <7인의 사무라이>로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당시 일본 내보다 서양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다. 과거 시대적 배경으로 옮겨 일본의 미학적 소재와 특유의 휴머니즘을 잘 표현하고 있음에도, 주인공 설정이 서부극의 총잡이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다. <7인의 사무라이>만을 놓고 봐도, 농민과 사무라이의 관계가 서부국의 개척자와 보안관의 관계와 판박이하다. 그럴만한 이유는 구로사와 아키라, 그에게 있다. 구로사와 감독은 생전에 ‘서부극의 대가’인 ‘존 포드’를 롤 모델로 삼을 만큼 그에 대한 존경을 극진히 표하였다. 그런 그가 서부극의 영향을 받은 것은 어쩌면 그의 시네마틱 자아에 있어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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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포드 감독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 ||
1950년대, 패전 이후의 일본은 전통적 사회상과 현대화의 접점을 찾는 과정을 겪었다. 그 속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비판과 관조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려했던 ‘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 두 거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대신, 일본 사회에 발생한 문제점과 모순을 전통적 가치로 재연하고 재인식 시켜주었다. 그의 역할은 <7인의 사무라이>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번에도 우리가 졌군. 이긴 건 저 농민들이야.”
마지막 대사는 미국의 일본 점령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담은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 된다.
검을 사용하기 위해선 검집에서 빼야하고, 마지막에는 검집에 다시 넣는다. 일련의 과정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다. 이것도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의 일부이기에 완벽할 순 없다. 이를 <7인의 사무라이>는 거의 완벽하게 이뤄냈다. 검을 휘두르고, 생기를 불어넣었기에 가능했다. 삶의 애환이 가득 배어있는 검으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