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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박수인] 화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무작위로 흩뿌리는 화가들은 이 ‘선택’이라는 단어 하에 무책임하다는 삿대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에 작품을 맡기는 행위조차 화가의 선택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11월 29일부터 3월 1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는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전에서는 화가들의 삶의 선택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사진촬영은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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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카소 [황소] | ||
전시는 ‘형태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재구성은 기존에 있던 전체의 짜임을 다시 새롭게 배치한다는 뜻이다. 선택을 의미하는 예술적인 표현이 틀림이 없다. 피카소가 [황소]라 이름 붙인 11개의 그림을 주목해보자. 처음 황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황소가 그려진 그림이다. 몸집도 우람하고 색도 거먼 것이 꼭 흑소 같다. 하지만 다음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황소들은 나눠지고 나눠 진 부분들이 생략이 되어 점점 왜소해진다. 황소의 둥근 몸짓을 표현하던 선들도 점점 곧아지고 색도 점점 희어져 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 앞에 도착하면 우리는 오직 한 선만으로 표현 된 앙상한 백소를 보게 된다. 11번째의 황소를 그리기 위해서 피카소의 선택의 과정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간단한 선을 위해 피카소가 원래의 황소에 얼마만큼 집중하고, 대상을 들여다보았는지 알 수 있다.
샤갈은 자신의 선택에 굉장한 확신과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중산책]이라는 그림을 보면 형태를 그리는 선부터 다른 화가와는 다르다. 다른 화가들의 스케치는 하나의 선이라면 샤갈의 선은 하나로 죽 이어진 것이 아니라 짧게 잘린 선 “)” 와 “,” 혹은 “(” 이 여러 개로 겹쳐져 형태를 만들고 있다. 색칠 또한 하나의 영역 안에 한 색으로 칠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없다. 3 살배기 어린아이의 색칠공부책 에서나 볼 것 같은 채색법이다. 그래서 ‘예술과 꿈’이라는 소주제에 맞게 그림이 마치 따뜻하고 포근한 꿈같다.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에 때로는 겁이 날 법도 한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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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 베이컨, 좌 앵그르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 ||
프란시스 베이컨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라는 그림을 보자. 기존의 그림을 차용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재해석하기로 유명한 베이컨은 앵그르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또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스핑크스는 왼쪽, 오이디푸스는 오른쪽에 배치한 것은 같다. 하지만 베이컨의 오이디푸스는 발 부상을 입은 운동선수처럼 보인다. 스핑크스의 가슴팍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달리 그의 손가락은 자신의 발을 가리킨다. 스핑크스의 핑크라 전체 배경 색이 핑크인 것도 베이컨이 우리에게 던지는 농담이 아니었을까. 이를 통해 우리는 선택의 기준과 방향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회의 끝은 ‘예술과 사회’라는 주제로 막을 내린다. 마르쉘 뒤샹의 동상 [생명의 공허]에서 잘려진 체스판 위에 턱을 괴고 고뇌하는 한 노인을 볼 수 있다. 어떠한 다른 신체기관 없이 팔과 얼굴만 묘사되어 있는 이 상에서는 손목과 이마의 잔주름이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다. 세세한 잔주름은 이 노인의 심리적 괴리감을 한층 더 드러내준다. 그 노인 또한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데서 깨달았을 공허함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그 ‘흉’ 없는 흉상이 더욱 더 앙상해 보여 마음이 아프다.
전시회는 그림만 조명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이 적힌 캡션에는 조명이 가지 않게 배치하고 있다. 고개를 가까이하여 주목하지 않으면 글씨가 잘 안 보인다. 처음에는 그림을 보고 난 후 즉각적으로 제목을 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만 나중에는 좋은 그림들 옆에서만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전시회에 끝나고 이 선택들을 모아본다면 그것 또한 우리의 기준과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발견하기 위한 그 인사들은 그림에 올리는 감사 인사이자, 새로운 나에 대한 환영 인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