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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등 위 고혈의 자유를 위한 낙하 <군도: 민란의 시대>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윤종빈)

수많은 구경꾼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콜로세움 한가운데에 선 남자의 손엔 칼 한 자루가 들려있었고, 그가 응시하는 정면엔 똑같이 칼을 든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오래도록 싸워온 투사(鬪士)였다. 매일 자신들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유로 칼을 휘둘렀으며, 칼끝에 맺힌 핏방울이 하루 더 연장된 생존을 일러주었다.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는 도치와 조윤의 일생은 범속하였으나 치열하였고, 생존 앞에 처연했다. 평등하지 않았던 신분구조에서 더 이상 아래가 없는 도치와, 양반도 천인도 될 수 없는 조윤의 삶은 ‘불합리함’과 ‘차별’로부터 기인한 ‘저항’을 드러낸다. 거대함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은 숭고하지만, 도치가 지향하는 저항의 이면에는 죄책감이 함축된 조윤에의 복수가, 조윤이 지향하는 저항의 이면에는 스스로 차별의 주체가 되려한다는 추잡함이 묻어있다. 이들의 이러한 양면성은 도치의 머리에 난 화상자국처럼 험악했으며, 조윤의 무표정한 얼굴처럼 음산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른 상투로 화상자국을 감추고, 펼친 부채로 무표정을 감추며, 투사로서 그들의 치부를 은폐했다.

 

   
 

도치는 조윤에게 정심에 대한 살인 청부를 의뢰받는다. 며칠은 굶지 않을 음식과 돈. 매일매일을 콜로세움 안에서 가난과 싸움을 벌이던, 아니 일방적 폭행을 당하던 그에게 그 의뢰는 콜로세움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일했다. 소 잡는 칼을 들고 당당히 가난과의 마지막 싸움에 나선 도치. 가난의 목을 치는 완전한 해방에 한 발짝 남겨둔 마지막 순간, 그의 옆구리엔 날이 선 칼이 들어온다. 결정적 순간에 그를 찌른 건 투사로서는 버려두었던, 그러나 인간이란 자각 속에 편린으로 남은 이성이었고, 연민이었다. 결국 그는 가난과의 싸움에서 패배했으며 그 대가는 콜로세움의 더 깊숙한 난고의 암실로의 편입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제 사람 간의 선-악을 나누고 급간을 나누는 사회의 근원적인 시스템과의 콜로세움으로 발을 들어섰다. 낡은 쌍칼을 든 그의 모습은 숭고하다. 하지만 그는 조윤에의 복수심이란 구차함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숭고함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반면 조윤의 싸움은 지극히 사회적 선(善)으로의 편입을 위한 비속함의 발현이었다. 그의 태생은 선과 악의 혼탁함에서 비롯되었기에, 선명하지 못한 선함에 대한 신경증이 존재했다. 그 신경증의 분출은 그를 선으로 이끄는 듯했으나, 곧 그 욕망은 조윤의 뺨에 상처가 생기며 현실과 괴리감이 벌어진다. 억지로 새어나와 뺨을 타고 흐르는 피처럼, 조윤은 로고스의 줄을 끊어버리고 혼탁함에 가려 억압되었던 파토스를 분출한다. 그 또한 콜로세움에서 패배하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도치와 같은 콜로세움으로 입장했다. 그가 진리로 믿었던 ‘선’으로부터의 배제, 그리고 그동안 스스로 배척했던 ‘악’에 대한 원망도 역시 그를 숭고함에서 한 발짝 떨어뜨려 놓았다. 그들의 목적은 근원적 사회 시스템에 대한 반역이며, 붕괴이지만, 서로에 대한 원망의 해소를 위해 그들의 칼끝은 서로를 향했다. 따라서 서로의 육체는 종이 한 장만큼 거리 밖에 서있지만 서로의 심리적인 대립은 극단적으로 날카로워진다.

 

   
 

조윤이 외치는 “너희들 중,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 거라”는 대사는 이상의 환상에 속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자신의 심경과 좌절이 깃들어있다. 콜로세움 안에서의 벗어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절대로 싸우는 대상들의 화해가 될 수 없다. 또한 상대를 죽인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 반드시 죽어야만 해방될 수 있는 콜로세움 안에서 위 대사의 의미는 죽음의 표명이며, 이상에 대한 체념이다. 결국 조윤은 죽음이 예정된 마지막 싸움을 시작한다. 한 손에는 자신이 되고자 했던 ‘적자’를 품고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의 분신인 장검을 들고서, 신분의 벽에 절망하던 그는 끝내, 역사가 방기한 불합리라는 상징계의 질서에서 죽음이라는 실재계로 기어갔다. 그리고 조윤의 심장을 관통한 창 위를 흐르는 고혈이 바닥으로 떨어지듯, 비로소 그는 출신의 멍에에서 자유로 낙하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시대를 지배하는 시스템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을 통한 산물로써 변화했다. 조윤이 남긴 희망은 양반이 호명한 ‘적자’라는 이름이 지워진, 비로소 완성된 평등사회의 신인류이다. 그의 존재는 더 이상 시스템이 배태한 콜로세움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제 방황하는 스파르타쿠스처럼 세상 밖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부감으로 처리된 조윤의 시체는 작고 초라하지만 떠나는 신인류에게 당당히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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