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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살>(좌)와 <손님>(우)의 포스터 | ||
[디아티스트 매거진=박동수]
-<암살> <손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무로에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흥행하기 힘들다’라는 ‘일제 징크스’가 있다. <마이웨이>, <모던 보이>, <아나키스트> 등부터 올해 개봉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까지 <암살>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흥행에서 쓴맛을 봤다. 그럼에도 여러 편의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들이 줄을 서있다.
우선 올해 개봉한 영화로는, 이해영 감독의 장르 크로스오버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과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있다. 일제강점기가 배경은 아니지만, 그 흔적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 우화였던 김광태 감독의 <손님>도 있었다. 현재 제작이 확정되었거나 촬영 중이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로는, 박흥식 감독의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 <해어화>, <암살>에도 등장했던 ‘밀정’을 다룬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의 <밀정>,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준인 감독의 <동주>, 소설 『핑거스미스』를 일제강점기로 가져온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등이 있다. 개봉을 앞둔 박훈정 감독의 <대호>역시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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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 ||
‘일제 징크스’가 있음에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계속 제작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근대화, 식민지 수탈, 새로운 사상의 등장, 신문물과 자유연애 등 혼란과 낭만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때문에 영화화할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로맨스도, 신파도, 액션도, 정치도 모두 가능한 배경이 바로 일제강점기이다.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과도한 제작비, 친일논란 등 제작과 흥행에 걸림돌이 될 사항들 또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논란 이후부터 높아진 역사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정화 교과서 논란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입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때문에 역사 왜곡과 친일파 등 과거 청산에 대한 관심 역시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를 확실히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논란이 일어났다.”라고 말한다. 올해 개봉한 세편의 일제강점기 영화 중 두 편의 영화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바로 김광태 감독의 <손님>과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다. 물론 이 영화들이 정답을 제시하진 못한다. 영화가 무엇을 담았던 그것을 온전한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두 영화가 결말부에서 보여준 생각은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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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살>의 변절자 염석진(이정재) | ||
<암살>은 1930년대 임시정부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는 작전을 다루고 있다. 김구의 신임을 받는 염석진(이정재)이 독립군 최고의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을 모아 암살단을 꾸린다. 하지만 염석진은 변절자였다. 그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에게 암살단을 살해할 것을 청부한다. 엉망이 된 작전 끝에 친일파 강인국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염석진 때문에 안옥윤을 제외한 암살단과 임시정부의 사람들이 죽었다. 영화에 에필로그, 반민특위에 회부된 염석진은 과거 임시정부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다. 재판장에서 나오는 염석진은 자신이 죽인 줄 알았던 임시정부시절 부하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 한 골목길에 들어선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안옥윤. 안옥윤이 염석진을 죽이면서 영화는 끝난다.
<손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의 강원도 산골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웰컴 투 동막골>의 동막골처럼 밖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다. 전쟁이 났다는 사실은 알지만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은 우연히 마을을 찾은 악사 우룡(류승룡)을 통해 알게 된다. 마을의 촌장(이성민)은 혼란을 막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긴다. 마을에 쥐떼가 창궐하고 있음을 안 우룡은 자신의 피리소리로 쥐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한다. 촌장은 쥐떼를 쫓아주면 소 한 마리 값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우룡은 쥐떼를 쫓아내는데 성공하지만, 촌장은 마을의 무당 미숙(천우희)의 신통함 때문이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우룡이 따지고 들자 촌장은 그와 그의 아들을 죽이려하고 아들이 실제로 죽는다. 이에 분노한 우룡은 다시 쥐떼를 몰고 마을로 돌아오고 피리에 홀린 쥐들은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촌장은 병풍 뒤에 일본군복과 함께 숨겨둔 일본도를 꺼내 쥐들을 죽이지만 결국 죽임을 당한다. 우룡이 마을의 아이들을 데리고 쥐들을 가둬놨던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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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의 주인공 악사 우룡(류승룡)과 그의 아들 | ||
두 영화 모두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암살>은 반민특위에서조차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 염석진을 안옥윤이 직접 쏴죽이며 끝낸다. 둘의 관계는 염석진의 죽음을 개인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서게 만든다. 배신자와 배신당한 자의 관계는 아직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영화 속에서 직접 처리한다는 대리만족과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딘가 아쉬웠다. 염석진을 죽이지 않고 영화를 끝냈다면 어땠을까? 관객들을 1930년대 말 항일운동의 한복판으로 데려갔던 <암살>의 엔딩이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라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맞이하는 것은 과거가 청산되지 못한 현재이기 때문이다. 염석진이 죽지 않았다면 아직도 친일파와 그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심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손님>은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의 행적을 그린다. 친일파는 어떻게 권력을 잡고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지를 촌장을 통해 보여준다. 자신의 과거를 집안 깊숙이 묻어두고(혹은 모셔두고 또는) 살아가는 독재자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닮았다. 강우석 감독의 <이끼>에서 정재영이 연기한 촌장을 연상시키는 이성민의 촌장은 일제강점기부터 80년대에 이르는 친일파와 독재자들의 합집합이다. 때문에 <손님>의 엔딩은 <암살>의 엔딩처럼 개인적이지 않다. 비록 우룡의 복수가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을 지라도 그 결과는 독재체제의 전복이기 때문이다. 김광태 감독은 독재자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그에게 동조한 사람들과 다수의 의견에 휩쓸린 우민까지 모두 죽여 버리는 급진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아이들만이 살아남아 우룡을 따라 사라진다. 우화의 형식을 빌려온 <손님>의 엔딩은 <암살>의 엔딩처럼 진작 이루어 졌어야 할 것을 보여준다. <암살>보다 더욱 판타지적인 결말이지만 잔혹동화라는 컨셉과 어우러져 튀지 않는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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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의 촌장(이성민) | ||
<암살>은 직접 그 시대로 뛰어들어 일종의 판타지를 선사하고, <손님>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가 어떻게 권력을 잡고 살아남았는지 우화를 통해 보여준다. 실제에 가깝게 보여줬음에도 관객들이 판타지로 생각하고 쾌감을 느낀 <암살>과 서양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차용해 만든 우화임에도 현실의 모습과 더욱 닮아있던 <손님>. <암살>은 흥행하고 <손님>은 실패한 이유가 아닐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을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는 장치이다. 감독의 답을 보고 관객은 자신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암살>과 <손님>도 마찬가지다. 최동훈, 김광태 두 감독이 제시한 답에 관객들이 답을 찾을 차례이다. 국정화 교과서 등으로 어지러운 지금 <암살>과 <손님>을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보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