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디아티스트

꼴사나워도 괜찮아요, 사랑이니까

   
▲ ‘왓 이프(What if)’, 2013, 마이클 도즈 감독 / 다니엘 래드 클리프, 조 카잔, 라프 스팰

‘중요한 건 삼각관계 같은 게 아닙니다’

[디아티스트매거진=문희경]불안은 신뢰를 흔든다. 믿음이 흔들리면 사랑은 위태로워진다. 샨트리(조 카잔 분)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빅토리아와 런던 사이의 거리? 혹은 5년이라는 시간이 만든 권태? 불안의 시발점이 무엇이었건 그녀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코끝이 찡해진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삼각관계 치정극이나, 사랑과 우정사이를 줄 타는 남사친(남자사람친구)과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다. ‘애인이 있는 이성을 사랑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아닌가’ 따위의 얕은 프레임을 벗겨내고 나면, 이것은 국적과 문화를 뛰어넘어, 사랑을 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던졌을법한(혹은 던질법한) 질문,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에 대한 감독 나름의 사유다. 다시 질문해보자. 우리는 왜 사랑하고 있을까? 아니, 숱하게 상처받으면서도 왜 다시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는 걸까?

‘월레스가 없었어도 둘은 헤어졌을 거에요’

 우리는 월레스를 ‘사랑의 훼방꾼’이라고 마음껏 욕할 수 있을까. 5년이나 사귄 약혼자를 두고 월레스에게 흔들린 샨트리를 흘겨보기 전에 그녀가 벤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에 박수를 보내자. 애인과 공유하던 삶이 절반 비어도 그녀만의 일상을 열심히 살았고, 시차 때문에 줄어든 연락이 불안함이 되지 않도록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벤에게서 오는 엽서들을 꼬박꼬박 챙겨 모아 그의 행적을 좇았고, 미리 월차까지 받아가며 영국으로 날아갈 비행기 표도 끊어두었다. 같은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시도할법한, 하지만 지치지 않기 어려운 노력들을 그녀는 꽤 열심히 실천한 것이다. 물론 이 눈물 나는 고군분투 속에 늘 월레스가 함께였음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녀가 그를 곁에 둔 것은 밀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혼자인 외로움이 벤과의 연애를 지치게 할까봐서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벤과 샨트리의 이별에서 월레스는 위협적인 제2의 남자는커녕 별 연관 없는 제3자 혹은 관찰자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온 뒤에 고백해도 될 것을) 생뚱맞게 무작정 런던으로 날아간 월레스가, 샨트리와 헤어진 벤에게 맞고 넘어지는 장면이 우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월레스는 그들의 이별에, 안타까울 만큼이나 기여한 것이 없다. 런던에서 맞은 선빵이야말로 그 측은함의 피날레격인 셈이다.

 결국 월레스가 없었어도 두 사람은 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런던과 빅토리아 사이의 거리 때문도 아니고, 권태나 익숙함 때문도 아니다. 이별의 순간까지도 벤과 샨트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샨트리가 확인한 것은 벤의 변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달라져버린, 혹은 달라져야만 하는 연애의 모습이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어 하는 벤과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샨트리에게, 이별은 피하기 어려운 수순이었을 거다.

 5년을 만났고, 결혼을 약속했지만 인생에서 맹세는 생각보다 한 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진다. 변치 않는 건 세상에 없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슬퍼해야 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몇 번을 경험해도 그러한 크고 작은 변화들 앞에서는 작아지고 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결국 보통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 : 이 사랑도 끝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긴 시간을 공들인 사랑이 무너졌어도, 삶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애인이 있었기에 무수히 피웠던 ‘만약’(What if….?)’이라는 짝사랑의 상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연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든, 그냥 도피였든 간에 나를 속 끓이게 한 여자는 멀리 다른 나라에 가있고, 혼자 남은 남자에게 가능한 것은 ‘선택’ 뿐이다.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캐나다에 남을 것인지, 그녀를 좇아 대만으로 날아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혼자가 되었다고 그 마음이 내 것인 게 아니니까. 막연하게 흘러갈지도 모르는 시간을 감수하고 그녀 곁에 머물 것인지, 새로운 사랑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월레스는 다시 한 번 모험을 선택한다.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결과는?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친구였던 샨트리와 월레스는 몇 년 전 벤과 샨트리가 그랬듯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된다. 새롭고도 같은, 관계의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월레스의 모험이 성공한 걸까? 끈질기게 매달려 얻어낸 사랑이므로 해피엔딩인거라고, 쉽게 결론짓지는 말자. 사랑이 흐르는 시간의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라는 걸, 매일 지키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알고 있으니.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일어설 때 개운한 것은 월레스와 샨트리가 그렇고 그렇게 잘 먹고 잘살았다는, 해피엔딩이라서가 아니라(잘먹고 잘살았는지 여부는 보여주지도 않을 뿐더러), ‘떠나간 벤’과 ‘남겨진 샨트리’와 ‘쫓아간 월레스’를 통해 연애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거다. 결국 사랑의 출발과 종착점은 모두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데 있다는 것 말이다. 누구나 행복해질 거라 믿으며 사랑을 시작하니까. 연애를 저주했던 월레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정남으로 변해도, 그를 비웃을 수 없는 건 우리 모두 그런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