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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빛은 그 이면의 어둠과 더불어 공존한다. <블랙 스완>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블랙스완>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랙 스완>(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

영화 <블랙 스완>은 오프닝의 발레를 통해 연약하고 아름다운 백조가 스스로 어둠을 향해 걸어들어감을 소묘한다. 우아한 발걸음을 향하던 핀 조명이 백조를 비추지만, 결국 시퀀스의 마지막까지 백조는 그 빛에 가닿지 못한다. 어둡게 암전되는 화면과 쓸쓸한 백조의 뒷모습은 허무한 날개짓을 따라 허공으로 흩뿌려진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블랙 스완>은 안온한 빛을 지향하는 여인 ‘니나’를 조명한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날아서 닿지 않던 곳의 빛에 다다르고자 하는 발레리나. 하지만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빛은 사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끌어안아야 하는 고통과 공존하는 포근함이었다. 언제나 어머니의 포근함 안에서 우아한 여성으로, 통제된 여성으로 살아온 니나에게 어느 날 ‘백조 여왕’의 역할이 부여된다. 모든 발레리나들의 이상처럼 자리한 ‘백조 여왕’ 역할은 언제나 우아한 여성, 아름다운 여성으로의 빛을 갈망했던 니나에게 이는 막연히 갈망했던 빛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완벽한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빛을 향한 도전의 대가로써 동시에 그녀에게 ‘어둠’이 강요된다. 이 어둠은 어머니의 캔버스 안에 갇혀 있는 니나의 자아에서 억압된 본능이며, ‘흑조’처럼 남성을 유혹하는 조신하지 못한 여성의 표상을 지닌다. 삶의 바탕이었던 흰색과 새로운 역할을 통해서, 완전한 이상을 위해서 강요되는 본능의 검정색의 혼재. 이렇듯 외면의 순수함과 내면에 억압되었던 본능의 충돌로 인해 니나는 정신과 육체의 지향이 상이한 분열증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네 모습은 마치 불감증 환자 같아.”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는 니나의 완벽한 백조 연기와는 상반되게 어색한 흑조 연기를 보고 이처럼 말한다.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흑조의 감각을 마치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는 듯이, 아니면 의식적으로 흑조의 유혹을 거부하는 듯이 니나는 불안하다. 이때 그녀의 모습은 얼핏 근대적 여성상에 가깝다. ‘여성은 정숙해야하며, 음란해선 안 되고, 남성의 요구에 따라야만 한다.’는 가치가 모든 행동을 통제한다. 그래서 니나는 “집에 가서 네 몸을 만져봐”라는 토마스의 요구에 방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위하고는 어머니의 존재에 화들짝 놀라 숨어버린다.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함이란 핑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있어 쾌락은 부끄러운 것이었고, 정숙한 여성에겐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었기에. 하지만 이렇게 흑조를 연기하면서 피어난 니나의 쾌락에 대한 궁금증은 억압되어 아주 작게 응축된 욕망에 미세한 바늘 구멍을 뚫어 놓는다. 그리고 응축된 욕망의 압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분출되는 본능의 단초가 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욕망의 분출로써 니나는 그동안 ‘여성스러움’이란 교육으로 자신을 통제해 왔던 어머니에 대한 도주를 시도한다. 단 한 번도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그녀는, 발레단의 단원 릴리와 함께 마약, 섹스, 술이라는 쾌락으로 빠져들며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품을 맹렬히 거부한다. 그리고 그 반항의 극단에서 결국 니나는 ‘남성’에게만 허락되는 여성의 쾌락 공유를 부정하고, 꿈속에서 릴리와 레즈비언 섹스를 나눈다.

이렇게 니나는 반항적 태도로써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여성이란 자아의 영역을 벗어나 점점 하나의 인간 객체로서 욕망을 분출한다. 동시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그녀 몸의 상처와 꺾여버리는 관절, 의도적으로 벗겨내는 피부 등의 시각적 드러냄을 통해 니나는 개인의 한계와도 같은 육체를 훼손하면서 여성성 자아의 탈영토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시각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상처로 인해 그녀의 육체적 훼손은 정신 속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으로 매몰되고, 벗어나고자 하는 전통적 여성상은 무의식적 올가미가 되어 계속 발목을 붙잡는다.

교육으로 강요된 여성성과 인간으로서 타고난 본능 간의 충돌. 이는 완벽한 백조의 형상인 니나와 자유로운 흑조의 형상인 릴리의 대립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엑스터시를 복용하고, 술을 마시고, 남성과 섹스하는, 즉 인간 본능인 쾌락에 충실한 여인 릴리는 니나에게 일순간의 쾌락을 전파하지만 이 쾌락의 불건전성에 두려움을 느낀 니나는 시종일관 릴리에게 적개심을 느낀다. 그 적개심은 결국 니나의 이상처럼 여겨지던 ‘백조 여왕’ 역할을 릴리가 빼앗으려 한다는 오해로 번지고 만다. 그러므로 결국 니나는 자신의 이상인 밝은 빛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정치 못하는 모습과 더불어, 결국 어둠이 자신의 빛을 집어 삼킬 것이란 공포에 두려워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자신의 이상을 놓칠 것만 같은 불안함,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의 존재, 알지 못하는 욕망이란 영역이 건네주는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이 혼재한 니나의 내면은 점차 스크린 속에서 시각적으로 분열한다. 연습실에서 바라보는 전신 거울 속에 끊임없이 늘어선 자신의 모습, 깨진 거울을 통해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는 얼굴, 지속적으로 다각도에서 비춰지는 거울 속의 모습.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고 계속 분화하는 자아는 순백의 순수했던 니나의 정서를 어둡고 끈적하게 물들인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결국 흑조로 마지막 무대 위에 오르기 전, 니나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던 릴리를 깨진 유리조각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백조가 가진 정숙한 여성의 모습을 깨치고 폭력적이고 과감한 여성으로 변모한 니나는 언제나 실패했던 흑조의 매혹적인 몸동작을 성공한다. 이전에 백조로서 완전한 순백의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니나가 보여주었던 우아한 여인, 아름다운 몸동작과는 상반되는 매혹적이고 섹시한 흑조의 모습은 진정한 ‘백조 여왕’의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한번 검게 물들은 백조는 다시 하얗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엔딩에 결국 백조로 되돌아가야하는 니나에게 불쑥 다가온 사실은 유리조각에 찔린 건 라이벌인 릴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자해였다는 것이다. 완벽히 통제되고 완벽해야만 하는 여인, 백조에 머물러있던 자신의 육체로 구속된 자아를 붕괴시키고 흑조의 자유로운 본성을 획득한 니나는 결국 백조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얀 살결을 붉은 피로 물들인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무대 위에 쓰러져 죽어가는 와중에도 외친다. “난 완벽했어.” 이는 억압된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해방된 인간의 모습으로 발산한 연기에 대한 스스로의 찬사이다. 그리고 니나가 바라보는 무대 위의 조명은 그녀의 이상으로 자리했던 밝은 빛의 형상으로 포근히 감싸 안는다. 만족한 듯한 니나의 표정은 백조의 사슬에서 벗어난 까닭일까, 흑조를 향한 두려움을 깨친 까닭일까. 답은 잘 모르겠다.

결국 <블랙 스완>은 백조로 살아야만 했던 여인의 진정한 자아 회복을 소묘한다. 여성으로의 교육이 얼마나 폭력스런 아픔인지, 어찌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이제 이 대목에서 드는 생각은 오프닝에 그 처연했던 백조의 날개짓이 결국 안락한 빛의 포근함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확실한 건 어둠과 빛, 이 둘의 차이가 곧 서로의 의미를 규정하며 소중함도 깨닫게 해준다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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