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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가득한 금오도의 밤하늘과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텐트 | ||
[THE ARTIST 매거진=이소연]당신의 삶이 예술이다, THE ARTIST MAGAZINE.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걸 /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해` /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1996년 발표된 WHITE의 ‘네모의 꿈’ 일부이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 이 땅의 십대들이 주말동안, 혹은 방학동안 할 수 있는 일, 아니,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뭐가 더 있을까. 네모난 방 안, 무수히 네모난 픽셀 속에 갇혀 살아가는 그들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지구는 과연 둥글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십대들이 자라나 만드는 세상은 역시 네모의 꿈에 불과하지 않을까.
‘스스로 여행학교’는 십대들의 놀이문화를 바꾸고 그럼으로 이 땅 위의 동그란 희망을 찾고자하는 비전을 가진 비영리단체 기부이펙트의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수학여행도 아니고,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서는 가족여행도 아니다. 십대 아이들 두 명에서 세 명, 그리고 인솔교사 선생님 두 명 그렇게 소수정예 팀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여기서 인솔교사 선생님의 역할은 아이들이 여행 중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게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완충제 역할과 고민을 나누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할 뿐 여행에 있어서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여행지 선정부터 모든 여행계획과 매표, 숙소 예약, 미션 수행 방법, 경비 지출 계획 등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은 허둥대고 실수하기 마련이었지만 그런 위태로움조차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여행이었다. 성장소설과도 같던 3일, 그 짧지만 진했던 여행의 기록이다.
시작이 반이다, 쉽지만은 않던 여정의 시작
우리 조는 계획 단계에서 인원이 빠지거나, 알아봤던 제주도 무전여행이 성수기 비행기 표값의 폭등으로 무산되어 전라도 투어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통영으로 목적지를 잡은 다른 팀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밤 12시 버스를 낮 12시 버스로 잘못 예약을 해서 출발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조는 꼬마 팀장인 열네 살 영규네 아버지 학원 승합차를 빌려 네 명이서 전라도 투어를 하기로 한 것이라 차에 마침 자리가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통영으로 가기로 한 팀을 태워다주는 조건 하에 아침을 대접받기로 하고, 통영으로 첫 여행지를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두 팀. 한 차에 탑승한 채 통영으로 향하는데 뭔가 어색한 기류와 설레는 기류가 뒤섞여 참 묘한 분위기였다. 이미 센터에서 몇 번 만나 여행계획을 짜며 친해진 아이들이었고 선생님들이었지만 쌀쌀한 가을날 새벽, 여행지로 떠나는 자동자 안에서 보는 얼굴들은 또 달랐다. 누군가 튼 피아노 재즈가 젊은, 혹은 어린 우리들이 꽉꽉 들어찬 스타렉스 안을 비집고 잔잔하게 흘렀다. 몇몇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몇몇은 서로의 무게에 지탱해 잠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통영에 도착했다. 우리는 일출 명소라는 이순신 공원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다 같이 지켜보았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대부분 고요한 아침 공기를 깨고 싶지 않은지 조용히 해를 감상했다. 붉은색이 강한 석양과는 달리 보랏빛과 다홍빛, 노란빛으로 짙게 물든 일출 무렵의 하늘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첫째 날 – 사람 냄새가 나, 여수 시장과 금오도
여수에서 아침을 대접하기로 했던 저쪽 팀은 부족한 예산 때문에 공원 주차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뽀글이를 끓여 줄 수밖에 없었지만 밤샘 이동과 아침의 찬 공기 때문인지 라면 하나에 행복해지던 우리였다. 그렇게 배를 채운 뒤 우리 팀은 통영을 떠나 원래 계획했던 목적지인 여수로 이동했다.
우리는 3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기 때문에 하나의 도시에서 하나의 포인트를 잡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수에서 우리가 정한 포인트는 금오도라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여수에 들어서자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여수의 바다가 우리를 반겼다. 통영에 들리는 바람에 일정이 늦춰졌기 때문에 밥도 못 먹은 채 서둘러 시장에서 장을 보고 배를 타러 가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추가 용돈 10만원이 걸린 ‘30명 프리허그’ 미션 수행을 위해 부지런히 상인 아주머니들을 향해 팔을 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길에 서서 프리허그를 하는 것보다 휴일에도 일을 하고 계신, 우리의 여정에 한 조각이 되어주신 분들을 위해 포옹을 건네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처음에는 상인 아주머니들도 쑥스러워하셨지만 진심으로 팔을 벌리는 아이들을 웃으며 안아주셨다. 사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근사한 풍경도, 맛있는 음식들도 있지만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사람 살 냄새다. 아주머니 품에서 나던 정육점의 비릿한 냄새와 맞닿은 어깨 위에 스미던 여수의 햇볕, 그리고 그 미소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장을 본 뒤 서둘러 배를 타고 금오도로 들어갔다. 텐트를 칠 곳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리를 잡은 곳은 여수의 바다가 훤히 보이는 동쪽 평지였다. 등 뒤 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내려앉고 있었고, 산 그림자도 외로운지 고요한 섬마을로 기어 내려왔다. 꼬마팀장 용규와 다른 남자 선생님은 해가 지기 전에 텐트를 치기 위해 바닷바람과 싸우며 텐트를 쳤고, 나와 여고생 지선이는 하루 종일 비어 있던 배를 채우기 위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고기가 다 구워졌을 무렵엔 이미 해가 다 져 별이 뜨고 있었다. 훌륭한 캠핑 장비를 챙길 여력이 없었기에 핸드폰 불빛으로 겨우 식사를 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달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핸드폰 불빛을 끄자 그제야 섬 위로, 바다 위로 쏟아지는 별빛이 보였다. 하늘 가득 메운 별들과 어둠 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갈대 소리, 파도치는 소리는 우리를 한껏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네모난 도시에서 숨 쉴 틈 없이 살아가던 우리에게 둥근 별빛이, 둥근 밤하늘이, 우리를 둥글게 감싸는 바람과 소리들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감성에 젖은 우리는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종이를 꺼내 일상에 돌아가 있을 ‘나’에게 편지를 썼다. 여행의 길목에 만난 시장 사람들의 냄새, 여행을 함께 하는 팀원들의 냄새, 그리고 내 품 안에 갇혀 있던 나 자신의 냄새까지. 사람 냄새에 취해 그렇게 첫째 날이 마무리 되었다.
둘째 날 – 실패는 또 다른 길의 시작이었다. 순천 드라마 세트장과 담양 죽록원
둘째 날 아침. 우리를 깨운 것은 휴대폰 알람도, 엄마의 잔소리도 아니었다. 눈앞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의 온기였다. 따스하고 고요하게 바다 위에 깔리는 아침햇살에 잠에서 깨는 경험은 순수한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동그란 형태를 갖출 때까지 감상하다가, 남은 고기와 김치를 모두 털어 넣은 야매 김치찌개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출발했다. 섬에서 나가기 직전, 작고 낡은 슈퍼 앞 빨간 우체통에 지난 밤 적은 편지를 각자의 집 주소로 부치기도 했다.
먼저 향한 곳은 순천 드라마 세트장이었다. 드라마 세트장에 갔다가 순천만을 둘러보고 고성으로 올라가 또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었다. 세트장까지는 정말 재밌게 둘러보았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드라마 세트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유명 배우가 연기를 했다는 장소에서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렇게 세트장 투어를 하고 순천만으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창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순천만은 못 갈 것 같았다. 고성에서 텐트를 치려던 계획도 무리인 것 같았다. 잔뜩 실망한 우리는 한참을 차안에서 머리를 싸맸다. 날씨 때문에 어그러진 계획에 아이들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 선생님, 함평이라고, 전라도인데 여기서 가까워요?”
꼬마 팀장 용규였다. 증조할머니 댁이 함평에 있는데 할아버지랑 두 분이서 엄청 큰 집에서 지내셔서, 아마도 우리가 거기에서 잘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우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서둘러 부모님과 증조할머니께 전화를 드려봤더니 흔쾌히 허락하셔서 우리는 오늘 밤을 예정에도 없던 할머니 댁에서 묵기로 했다. 대신 저녁 식사 등 신경 쓰시지 않게 잠자기 직전에 들어가자고 계획을 잡았는데, 그 동안 어디에 있어야할지가 문제였다. 함평까지의 경로를 검색해보니 그 사이에 담양이 걸쳐 있었다. 그래, 담양이다. 우리는 바로 시동을 걸어 담양으로 향했다.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대나무가 아니라, 개천가로 죽 들어선 다양한 먹거리와 물 건너온 소품들을 파는 부스들이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홀린 듯 문어 꼬치, 양 꼬치, 피자와 다코야키, 케밥 등을 사고 이리저리 부스 구경을 다니다가 자리를 잡고 앉아 먹기 시작했다. 문어 꼬치는 처음 먹어봤는데 버터 냄새가 향긋하니 식감은 쫄깃했고, 각종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케밥은 보는 것만으로도 푸짐하니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그 밖의 음식들도 모두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일정이 틀어져버려 생긴 뜻밖의 즐거움이었다.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까르르, 아이 웃는 소리처럼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들과 오후를 즐기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즐거운 간식타임을 마치고 죽록원에 들어가려던 우리는 또 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 마시고 놀다가 입장 시간을 놓친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밖에 안 나왔다. 담양 죽록원 앞까지 와서 들어가질 못한다니. 그러나 이번엔 좌절된 계획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계획은 틀어졌지만 더 이상 틀어진 계획 앞에 실망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럼 우리 인증샷이나 찍죠! 아이들은 어이없는 상황에 깔깔거리며 죽록원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자전거를 빌려 타기로 했다. 저녁 무렵, 잎이 큰 플라타너스 나무와 키가 큰 메타세콰이어가 죽 늘어선 개천가는 물에 반사된 노을빛을 받아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 사이를. 이유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가며 쌩쌩 내달렸다. 갈 곳을 잃은 이름들이 아무렇게나 날아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셋째 날 – 낡아가는 것들의 소중함. 함평 할머니댁과 전주 한옥마을, 그리고 마지막.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씻고, 따뜻한 방바닥에서 잠을 잔 우리는 개운해진 몸과 마음과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본 손주와 손주 친구들 반가우신 듯 만면에 웃음을 띠셨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시골집 마당을 둘러보았다. 지난밤엔 너무 캄캄해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였다. 용규도 신이 난 듯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와 마당의 닭들, 토끼들을 소개시켜주었다. 마당 너머 들은 익어가는 벼들이 노랗게 물결치고 있었고, 비에 젖었던 풀잎들이 화창한 아침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낡은 골목과 담장들이 주름진 할머니의 미소와 같이 정겨웠다.
할머니와 동물 친구들, 작고 낡은 시골마을의 따뜻한 배웅을 뒤로하고 전주로 향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전주는 최근 SNS에서 각광받는 여행지라 아이들도 익히 알고, 그래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전주에 도착한 우리는 주차할 곳을 찾다가 내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갤러리 카페 앞에 주차를 하기로 했다. ‘서학동 사진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갤러리 카페는 한옥마을에서 전주천을 건너오면 있는 서학동 예술마을에 위치해 있는데,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갤러리 카페에서 진행되고 있던 전시는 용담댐 건설로 인한 삶의 터전의 수몰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담은, 김혜원 작가님의 사진전이었다. 지금은 이미 수몰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마을. 누군가 떠나간 빈방과 그 잔해들. 그리고 그 속에 드문드문 매달려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흉터처럼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서학동 예술마을을 빠져나온 우리는 전주 한옥마을로 건너가 팀을 나눴다. 남자팀과 여자팀, 나와 여고생 지선이가 한 팀이었고 꼬마팀장 용규와 선우쌤이 한 팀이었다. 팀별로 나뉘어져 주어진 용돈 안에서 다섯 가지 길거리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어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장소에서 모이는 미션을 즉석에서 만들었다. 나와 지선이는 한옥마을 뒤편 동산으로 올라가 한옥마을의 전경을 감상하기도 했고, 색색의 한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옛 가옥들의 정취를 한껏 즐겼다. 옛날 학자들이 공부했다던 책상에 앉아도 보고, 은행나무의 눈부시도록 노란, 수백 번째 죽음에 잠시 말을 잃기도 했다. 과거가 현재가 만들어내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우리를 압도했으며 동시에 시간이라는 족쇄의 무의미함에 알지 못할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구운 치즈, 치즈 떡갈비, 칵테일 슬러시, 각종 꼬치 등 신세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음식돌도 묘미였다. 그렇게 눈도 입도 한껏 즐거워진 우리는 모여 현실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친구가 추천한 전주천 앞 김치찌개 집이었는데 양도 푸짐하고 간식으로 느끼해진 입을 달래기에 충분히 매콤하니 맛있었다. 마지막 식사를 하며 우리는 우리들의 짧지만 무엇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꼈던 삼 일간의 여행을 추억했다. 아쉬워요, 지선이가 뱉은 그 한 마디에 참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열네 살 꼬마 팀장 용규. 여느 중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 친구들을 좋아하고 장난끼가 많은 아이였다. 용규는 여행의 끝에도 여전히 용규였지만 스마트폰 바깥에 동그란 추억과 동그란 세상이 자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 나도 덩달아 한 뼘 자란 기분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던 열일곱 살 지선이도 여전히 지선이었지만, 조금은 여유를 갖고 이 시간을 즐겨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 나도 덩달아 숨통이 트였다.
사람은 매 순간 변화한다. 다만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내 귀에 들어온 것들의 농도에 따라 변화의 폭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행이야말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가장 뚜렷한 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