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성희] 지금은 하나의 작품이 여러 형태로 만들어지는 ‘One Source Multi Use’의 시대다.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 웹툰 등 다양한 장르간의 이동이 일어나고있다. 하나의 괜찮은 오리지널 작품에서 파생되는 효과는 점점 더 커지는 셈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 <시카고>, <원스>,<금발이 너무해> 등 영화가 뮤지컬로, 혹은 뮤지컬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화와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직사각형의 프레임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자유자재로 편집이 가능하고, 필요하면 클로즈업 등으로 인물의 감정을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화에 비해 ,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있는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무대는 모두 열려있다. 따라서 무대 안에 의상, 배경, 춤, 음악 등을 통해 모든 걸 압축해서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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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포스터 | ||
탄광촌 소년 빌리가 우연히 접한 발레를 향한 꿈을 키워나가는 내용의 <빌리 엘리어트>역시 영화로 먼저 만들어진 후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연출을 맡은 ‘스티븐 달드리’가 뮤지컬의 연출 역시 맡았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뮤지컬 곳곳에서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다. 뮤지컬은 영국, 미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선보이고 있고, 2010년엔 한국에서 초연하며 여러번 반복해서 관람한다는 ‘회전문 관객’이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엘튼 존’의 음악과 ‘스티븐 달드리’의 환상적인 연출이 만나 금세기 최고의 뮤지컬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을 작품이 탄생했다. 또 연기와 노래에서부터 발레, 아크로바틱, 탭댄스 등을 모두 소화해내는 어린 빌리 배우들의 모습은 빌리 보다도 더 빌리 같아 관객들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같지만 다른 두 작품, 영화 <빌리 엘리어트>, 그리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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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친 탄광촌에서 발레의 꿈을 키워가는 빌리- 영화 <빌리 엘리어트> 中 | ||
‘꿈을 향해 달려가는 어떤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라고 하면 매우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이고, 건조하며, 담담하게 얘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파업중인 영국의 작은 탄광촌의 배경에 현실감을 더했기 때문일 것이다. 광부인 아빠와 형,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빌리 역시 살갑지 못한 성격이다.
가장 먼저 빌리가 된 배우 ‘제이미 벨’은 너무나도 완벽한 빌리였다. 다소 상기된 붉은 얼굴과 늘 불만있어 보이는 찡그린 표정, 그리고 거친 말투는 탄광촌 소년 그대로다. 스스로 아침을 준비하고 사라진 할머니를 찾으러 다니는 빌리의 모습은 제 나이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 보인다. 투정부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빌리의 모습에서 그아이에게 지어진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빌리에게 발레는 정말 ‘계집애들이나 하는’ 못할 것이었다는 게 너무나 잘 이해 될 정도다. 엄마의 편지를 보고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다는 윌킨슨 선생님의 말에 , “그냥 우리 엄마였어요”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모습에서 거칠지만 순수함이 있는 아이의 모습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다.
반면 뮤지컬은 좀 더 화려하고 극적이다. 음악이나 춤으로 표현되는 넘버들은 때론 관객들을 주인공들의 환상속으로 데려가준다. ‘Expressing Yourself’, ‘Shine’ 등의 넘버는 화려하면서도 극적인 느낌의 연출들이 나타난다. 또 뮤지컬에서 빌리는 조금 더 ‘어린아이’같다. 아무래도 연극톤의 대사를 해야해서일수도 있고, “가만히 날안아줘요” 라고 하며 ‘Take me up’을 부르는 빌리의 모습은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영화에서의 빌리는 그런 주위 상황에 모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라면 뮤지컬의 빌리는 파업 때문에 바깥에 깔린 경찰을 조금은 무서워하고, 호기심에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빌리가 발레에 빠져드는 것도 영화에선 거부할 수 없는 끌림처럼 느껴진다면, 뮤지컬에선 호기심이 점점 더 커져 자신도 모르게 좋아지는 과정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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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빌리엘리어트>의 넘버 ‘Solidarity’ | ||
이 작품에서 시대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광부들의 파업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빌리라는 소년이 꿈을 이뤄가는 그 과정, ‘빌리’라는 주인공에 좀 더 집중되는 느낌이다. 물론 빌리의 가족들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파업은 빌리의 삶의 일부고,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지만, 시대적 배경은 배제되지도, 강조되지도 않은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들어가있다. 늘 경찰들이 깔려있고 아빠와 형은 파업을 하러 나간다. 당사자들에겐 매우 힘들고 절망스럽지만 어린아이인 빌리의 눈엔 그 모습들이 일상이고, 그런 것들은 배경으로 작용하고있는 느낌이다.
반면 뮤지컬에선 시대적 배경이 좀 더 강조된다. 시작부터 매기대처의 연설이 담긴 영상과 파업을 위해 모이는 광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선 일시적으로 등장했던 경찰, 마을사람들은 직접 그들의 얘기를 노래한다. 특히 ‘Solidarity’는 파업하는 광부들과 경찰들의 대립, 그리고 그 속에서 꿈을이뤄가는 아이들과 빌리의 모습을 한 무대에 담아낸, 뮤지컬 연출의 미학을 그대로 압축해 표현해놓은 넘버라 할 수 있다. 또 아이들의 즐거운 인형극인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는 발랄한 멜로디지만 사실은 매기대처의 죽을 날을 기다린다는 무서운 가사를 담고있기도 하다. 또 ‘Once we were Kings’ 는 파업후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는 광부들의 노래를 담고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싸웠던 그들의 애환이 잘 느껴지는 넘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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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을 위해 ‘배신자’가 된 아빠- 영화 <빌리엘리어트> 中 | ||
성공을 위해선 가족의 희생도 배제할 수 없다. 추운 겨울날 땔감이 없어 엄마의 피아노를 부숴 난방을 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의 악세사리를 전당포에 맡기는 모습들은 파업중인 빌리 가족의 현실적인 부분을 잘 보여준다. 또 오디션을 보러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업중인 동료들과 자신을 배신하고 일터로 나가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는 형 토니의 갈등도 굉장히 현실적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엔딩부분엔 안나오는 걸로 보아 돌아가셨을 것이고, 빌리는 꿈을 찾아 떠났지만 결국 그건 가족, 친구와의 이별을 뜻한다. 단지 시간이 흐른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지만 그동안의 많은 시간들을 짐작 할 수 있다.
특히 뮤지컬에선 가족들의 얘기를 더 많이 알 수 있다. 춤을 추고 싶었다고 말하는 영화에서의 할머니의 모습은 그저 치매로 인한 이상한 말로 치부되고 넘어가지만, 뮤지컬에선 할머니의 과거속으로, 그녀의 환상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망나니 같은 할아버지를 만나 고생을 했지만 함께 춤출 때 만은 행복했다는 할머니, 아마 빌리는 그런 할머니에게서 춤추는 재능을 물려받지 않았을까. 또 태어나서 부터 광부인 아빠와 마을사람들을 보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광부가 된 형 토니. 그에겐 그게 인생이고 꿈이다. 그의 입장에선 허황된 꿈처럼 보이는 발레를 시키기 위해 그 모든걸 포기하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빌리 아빠의 이야기는 ‘Dip into the ground’라는 넘버에서 잘 나타난다. 한 때는 찬란했던 꿈을 가지고,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를 낳고 행복했을 그에게, 너무 일찍 아내를 데려간 세상이 미웠을 것이다. 또 엄마처럼 다정하게 아이들을 대해주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서투른 아빠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결국은 지지해준다.
빌리는 꿈을 찾아 떠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어두운 땅속으로 들어가는 아빠와 형,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희생을 잘 보여주며,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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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넘버 ‘Once we were kings’ | ||
<빌리 엘리어트>엔 단순히 발레에 재능을 타고난 소년 빌리만 있는게 아니다. 다소 표현은 거칠지만 빌리를 누구보다도 지지해준 윌킨슨 선생님, 빌리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이클, 마을 사람들, 그리고 전적으로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빌리는 최고의 발레리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거친 탄광촌 마을에서 키우는 불가능해보이는 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속에 이루어진 그 꿈은 더 빛난다.
영화와 뮤지컬은 각각의 특성에 어울리는 최적의 연출을 보여줬다. 거칠고 담담하지만 은연중에 나타나는 사랑과 꿈에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영화, 무대라는 제약적인 공간에서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때론 화려하게, 때론 극적으로 보여주는 뮤지컬 모두 각각의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도 다른 장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기도 한다. 둘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흥미롭고, 관객의 입장에선 파고들 거리가 더 많아진다. 때론 원작만 못하기도 하지만, 영화와 뮤지컬의 우위를 가릴 수 없는 <빌리 엘리어트>처럼 괜찮은 작품들이 탄생하기만 한다면, 이런 장르의 이동은 너무나 반갑다. 원작의 중요한 포인트를 살리면서도 새로움을 더한 괜찮은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