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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이미지 by originaljina | ||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 제목과 그것의 상징에 대해서 심각하리 만치 집착하는 편인데 그것은 원제목과 다른 한국판 영화 제목의 왜곡을 줄이고 싶은 욕심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존 그린의 장편소설 <The Fault in our stars>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안녕, 헤이즐>이라는 한국버전 제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주로 안녕이 들어간 제목은 슬픈이야기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반가웁게 인사할 때 쓰이는 안녕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영화나 노래 제목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Hello의 안녕이 아니라 Good bye의 안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청춘 남녀의 로맨스 장르의 영화였으나 Good bye의 영화겠구나라는 것을 예감 했다. 다만 헤이즐의 주인공 시점으로 모두가 헤이즐에게 안녕을 하며 손을 흔들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누군가가 헤이즐에게 안녕하고 인사하며 가더라는 것이 반전아닌 반전이었다는 것은, 이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다시 내가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이 영화의 원제는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여기에서 한참을 생각하게 하더라는 것인데… 이들이 말하는 우리별이라는 것이 지구인으로 지구에 살고 있는 지구란 별인지 아니면 저들이 떠나온 다른 별이라는 것인지 나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고심을 하고 보니 그런 결론이(어쩌면 책을 읽으면 알아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왔다. 이들은 지구별에서는 영원히 사랑할 수 없는-애초에 그러한 상태로 만났기 때문에- 존재였기 때문에 그들을 그런 존재로 만든 지구라는 별에 잘못이 있고 나중에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헤이즐이 어거스터스에게 가는 날이 되면 -잘못이 없는 그 별-영원히 사랑할 수 있게 되니, 결국 잘못은 지구별에 있는 것이라는 결론말이다. (모두들 처음부터 그럴 것이라 생각하였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천재임. 나만 혼자 고민한거임 하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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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영화는 환타지를 꿈꾸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첫 장면의 헤이즐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지 않다. 이것은 영화가 끝나고 장면들을 수집하면서 발견한 것인데 그러면서 그녀의 첫 나레이션은 자신도 슬픔을 감동으로 포장하고 아름다웠노라 말하고 싶어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하고 싶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그녀가 어거스터스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현실이고 그 이상의 것들은 환상과 비현실의 세계라고 믿고 살고 있었다. 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그녀가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지 않는 것도 그것이 그렇게 될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자신은 평생 산소호흡기 줄이 달린채 살아야 하는 비극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의 요약본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매우 짧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그럼에도 그녀가 어거스터스를 만나 사랑하는 동안을 비교해보면 앞머리의 그부분과 다른것은 산소호흡기가 없다는 것 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실과 환타지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도구는 산소호흡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거스터스와의 만남이나 사랑에 빠지거나의 행동적인 도구가 아니라 단지 그녀는 그 줄을 이용해서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인생의 한계를 구분지어 그 선을 넘는 것에 대해서는 비현실이라고 믿고 건너가지 않으려 애쓰는, 그것은 자신에게는 갑갑함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도구였을지 모르지만 보는이에게는 그녀 스스로 경계지어버린 답답한 구분선으로 보이는 장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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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경계를 하니 나도 처음에는 이 남자 어거스터스의 접근이 의심스러워지더라
물론 영화는 로맨스이고 아픈 이에게 사기치는 사기꾼을 그리는 비열 범죄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의심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어느새 그녀 못지 않게 나도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저리 밝고 명랑한 웃음과 활기로 세상에 흥미와 관심도 없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어거스터스의 진심은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에게는 다만 귀찮은 동정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진심은 서로의 공감대와 동감대를 통해서 전해진다고 했던가?(누가 그랬지?) 어거스터스의 상처와 아픔을 보고 나니 간사하게도 그럴만 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상처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처있는 상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서로 이해하고 이해 받을 수 있는 상대를 선택 하는 것은 저들이 관계에 한계를 두고 대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비트는 핵심일 것이다. 이렇게 조금의 의심을(나또한) 품고 만난 저들의 사랑이 어마어마하게 아플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나는 그 결말을 제목처럼 안녕 헤이즐, 헤이즐을 보내는 저 어거스터스의 슬픔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여기부터 이다. 헤이즐에게 첫눈에 반한 어거스터스, 그녀를 맹렬히, 열렬히, 지순히 사랑하는 어거스터스에게 단번에 슬픔의 관점을 이입해 버렸다. 그래서 나에게 이 영화는 놀랍고도 놀라운 반전영화가 되었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놀라 버린 것은 처음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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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자이니 헤이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내가 헤이즐 처럼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여지는 크나큰 아픔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헤이즐이 왜 저 산소호흡기의 선같은 선을 긋고 어거스터스를 대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거 있잖나. 왠지 모르게 오래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답지않게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어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의 역효과로 쉬이 헤어지게 되는 그런 경우들.. 헤이즐은 그녀의 부모님과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이 떠난 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유난히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자신보다 더 힘들어 하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봐온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런 마음을 아는 헤이즐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한명 더 추가되면 그녀는 자신이 떠났을때 슬퍼해야할 사람이 한명 더 추가되는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 나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는 늘 그런 생각으로 살았을 것이다.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자신은 죽고 없어지고 말면 슬픔, 기쁨 등 어떠한 감정도 남아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존재, 그래서 자신이 누군가의 부재로 슬퍼할 일은 없을거라고 단정하며 살았을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건강히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이 있을 것 같으니까. 영화는 어쩌면 헤이즐에게 이별을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그녀에게 단순한 이별이 아닌 심장이 찢어지는(어거스터스는 헤이즐과 함께 있으면 심장이 찢어져도 좋다고 말했다) 아픔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헤이즐은 경계를 풀고 어거스터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녀가 언제 자신을 이토록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겠는가?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오래 살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또 언제 마음의 문을 열까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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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키스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키스신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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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어거스터스와 조금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산소호흡기를 잠시 뗀다. 영화의 앞머리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는 (단지 옷을 벗기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잠시나마 평범한 다른 여자의 모습을 하게 된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어거스터스는 그녀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봐준다. 여기에서 둘은 그저 건강히 사랑하는 청춘 남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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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도 놀라운 반전으로 이끈 어거스터스의 아픔. 그리고 헤이즐의 아픔
그녀와 같은 시기에 아팠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어거스터스의 아픔은 그녀의 경계가 풀리고 나서 시작된다. 이것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이 건강하고 강인했던 남자가 헤이즐을 편하게 보내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나타나 버린다. 이제 헤이즐은 점차 영화의 의도에 휘말리고 말 것이다. 그녀도 누군가를 떠나 보낼 수도 있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얼마나 아플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말이다. 이별은 복선을 어쩌면 소소하게 몇차례 등장했는지도 모른다. 이삭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얼웨이즈를 외치며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했지만 그가 시력을 잃어가자 그는 그녀와 헤어진다. 그리고 그는 점점 시력도 잃어가고 어쩌면 비참한 모습이 되어버렸을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비웃으면서도 이들은 자신들만의 영원의 언어인 오케이를 사용한다. 이 오케이라는 말, 좋아. 괜찮아. 등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안괜찮지만 괜찮았고 안좋았지만 좋았을지도 모른다. 이삭의 얼웨이즈가 무너진것을 다시 복선으로 두고 본다면 그건은 안언제나였기 때문에.. 마치 그들의 사랑이 순간이었던 것처럼…
이제 어거스터스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처음으로 한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지켜주었던 어거스터스와의 이별, 첫 이별, 헤이즐이 살았던, 그가 없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상태의 (마치 다른 별에서 어거스터스를 만난것 같은 괴리감)모습으로 그를 보내야 한다. 이것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는가? 영화가 끝난 후 많은 이들이 먹먹함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안녕, 어거스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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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이미지 by originalji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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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이미지 by originaljina | ||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크다
헤이즐은 자신이 이제껏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다. 어거스터스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를 얼마나 또 그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 시작과 마지막의 그녀의 클로즈업은 같다. 다만 그때의 그녀가 산소호흡기를 부정하고 그것이 현실과는 아주 멀리 있는 이야기라며 동경하고 자신의 삶을 비극적으로 바라봤다면 수미상관으로 보여지는 마지막에 그녀는 현실과 환타지를 공유했다. 산소호흡기를 부정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그녀가 바라는 일이 일어났고 자신도 평범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먼저 보내고 아파하고 그리워 하는 일을 경험했다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그녀는 앞머리보다 훨씬 아름답다. 그리고 앞서 말한 아닌 것은 오케이(안오케이)가 비로서 진정한 오케이가 되었다. 어거스터스가 잘못이 없는 별에 미리 가서 헤이즐에게 묻는다. 오케이? 그러면 잘못이 있는 별에 아직 남아 있는 헤이즐은 대답한다. 오케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