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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숭고, Gravity.

   
▲ 그래비티 (Gravity), 광활한 우주 속에 버려진 두려움이 포스터에 잘 나타나 있다.

[디아티스트매거진=이상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우주를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과 탄탄한 스토리 라인, 그리고 모든 걸 받쳐주는 산드라 블록의 열연까지.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였다. 이듬해인 2014년에 개봉한 인터스텔라와는 달리 우주를 개척의 대상이나 신비함의 대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무한한 두려움의 공간과 무(無)로 표현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 우주의 숭고함,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 영화 그래비티 (Gravity)의 공식 트레일러.

우주를 사유하는 존재 : 인간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몰아치는 우주 폭풍은 보는 이도 숨 막히게 만든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었다. 원테이크씬의 끝자락 우주의 한 점으로 사라지는 산드라 블록의 모습은 곧 바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올릴 것처럼 절망적이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시작한다. 큰 공포와 패닉 속에서도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가는 인간의 이성을 그려내면서 두려움과 숭고를 표현한다.

 인간은 자신을 덮쳐오는 거대한 공포에 맞설 방법이 없다. 자연의 분노라고 볼 수 있는 태풍이나 홍수, 지진이 그러하다. 이겨낼 수 없는 막연하고 절대적인 거대함은 인간을 한없이 작은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그러한 공포를 이겨낸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절대적이고 막연한 공포를 추억으로 그려낼 수 있다. “이대로 우주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술집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할 거리를 하나 더 만들거나”라는 대사에서 볼 수 있듯, 생사의 기로에 섰던 인간은 그런 공포에서 빠져 나온 후 그 경험을 자신의 추억으로 미화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것을 ‘숭고’라고 불렀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그토록 지독했던 공포를 미화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우주를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공포도 우리의 사유 속에 포함할 수 있는 경험이 되며 사유는 그 경험을 추억거리로 만들 수 있게 한다.

우주에서 태어나는 존재 : 인간

 영화는 은유적으로 상처 입은 스톤 박사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작 중 스톤 박사는 어린 딸을 잃은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공허함과 슬픔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여정은 그녀가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영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우주선에서 홀로 남겨진 그녀가 웅크려 잠이 든 모습은 자궁 속에 있는 태아를 연상시키고 대기권을 뚫고 지구에 착륙하는 모습은 출산의 장면을 그리고 지구에 도착해서 육지에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아기의 걸음마를 은유하는 듯하다. 생사의 기로에서 느낀 고통은 모성애를 더욱 강하게 하였으며 공허함으로만 가득 찼던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더욱 짖게 만들었다. 한 없이 공포로만 가득 차 보였던 우주는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우주를 밝히는 존재 : 인간

 우주에서 인간은 극히 작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는 우주와 그 이상을 사유할 수 있다. 그리고 차갑고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우주는 생각보다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하나의 품이다. 아직 우주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력과 우주의 따뜻함을 믿으며 인간은 묵묵히 더 많은 부분을 밝혀갈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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