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소리
희미하게 울리네
구름이 껴서
비라도 와준다면
당신은 여기 있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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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만난 타카오에게 유키노가 읊어준 시다.
아키즈키 타카오는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고, 유키노는 유카리는 스무여덟의 여인이다.
달달했다. 순간 화면 속 소년의 눈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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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에 둔감해지는 걸까?
또 사랑 이야기구나 싶어 화면 속 비 내리는 정원을 향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입김이 비 내린 정원의 안개처럼 화면에 맺히는 듯 했다. 어쩌면 나는 그 감성을 시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듣기로 이 애니매이션은 어떤 학생이 수업 시간 발표한 소재였다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형은 꼭 한번 감상해볼 것을 권유했고, 나는 그런 계기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2013년도에 발표된 47분짜리 중편 애니메이션으로 ‘초속 5센티미터’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이다.
비록 처음에는 영화도 아닌 애니매이션 속 등장 인물들의 사랑에 질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아! 허어!’하는 감탄사를 연발했고, 결국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47분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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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생과 스물여덟 여선생, 각자의 삶 속에 내상을 입은 둘은 신주쿠 도심 속 어느 정원에서 만나게 된다. 도심 속 정원이라…… 일종의 피난처이고, 그들은 세상의 난민이다. 그들이 입은 상처는 적나라하거나 구체적이지 않고 되도록 은유와 암시 속에 감지된다. 비가 오면 학교를 가지 않는 소년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감정이입이었다. 비가오면 학교나 학원이 가기 싫었던 것 만큼은 서로 같다. 비가 오면 학교 대신 정원을 찾는 소년과 오전부터 정원의 벤치에서 초콜릿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여인. 이 연상 연하의 주인공은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며 상처를 치유받게 된다. 둘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소년과 여선생의 관계는 마치 사랑 같다. 아니, 사랑이 맞다.
하지만 사랑이 맞다면 그들의 관계는 아찔하다. 금기다. 금기라는 함정에 빠지면 자칫 제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더라도 갈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언어의 정원>는 그 함정을 교묘히 피해갔다. 이야기를 비틀고 꼬아내며 슬쩍 피해갔던 것 보다는 그 금기를 지극히 투명하고 순수한 표현을 통해 정면 돌파해 버렸다.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문학적인 구석이 있었다. 바로 문학적 애니메이션 그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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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애니메이션 그리기는 신선했다. 자신있게 ‘언어의 정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답게 빈틈없이 쪼이고 짜여 세심하게 다듬은 대사들은 깊고 담백했으며 언어의 아름다움을 한컷 뽐냈다. 적절한 순간 읊는 시가와 독백처럼 내뱉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어찌보면 단순한 패턴의 사랑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때문에 선생과 학생 간에 교차했던 금기의 감정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인 유대 관계로 승화되었다. 아스라한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나도 모르게 ‘오오!’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 문학에 근접하려고 했다.
‘언어’의 마법을 부려 더 높은 예술성을 추구하려 했고,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껏 멋을 부려 이야기를 한층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더 좋은 사랑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언어의 정원>은 또 한번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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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언어의 정원>은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실제 자연을 담은 영상처럼 신중하고 섬세하며 아름답다. 단순히 좋은 그림,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만히 카메라를 들고 소중한 장면을 한장 한장 찍어낸 느낌이었다. 화면에 잡힌 인물과 풍경 그리고 사물들은 그렸다기보다는 찍어냈다는 느낌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실사 영화 이상의 영상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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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이고 독특한 인물 설정, 절묘한 대사, 실제 배우보다 섬세한 감정 표현, 군더더기 없는 묘사까지 문학이 추구하는 이상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만들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다만, 바로 그 단 한치의 실수와 오차 없는 완벽함이 아이러니하게도 <언어의 정원>의 오점으로 느껴졌다. 쨍한 사진, 너무나도 완벽한 이미지가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와 유사한 모습을 통해 <언어의 정원>은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속했음을 보여주었다. 약간의 인간적인 흐트러짐, 의도적 실수가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아직 애니메이션은 내게 흙으로 빚어낸 인간의 모형, 조금은 다른 숨결을 내뱉는 생명으로 느껴진다. 제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려도, 혹은 사실적일수록 더욱……
어쩌면 <언어의 정원>은 여선생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또 다른 금기에 도전했던 것일지 모른다. 애니메이션 명작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초월한 명작 그 자체가 되는 것 말이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복잡한 해석은 필요없을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주말, <언어의 정원>을 보고 눈이 말끔히 정화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께서도 꼭 한번 만나보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