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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고 말하면, 삶은 당신을 배반한다.

<아름답다고 말하면, 삶은 당신을 배반한다.>

– 이창동 감독의 리얼리즘 영화들

 진실이 누추하다는 것쯤이야 한번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사실이다. 홍역 같던 사랑의 들뜬 열이 사그라들고 연인의 해진 옷깃이 눈에 띄는 시기를 지나고 나면, 사랑은 어느새 텅 빈 집안에서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를 낸다. 웅웅. 사랑은 아름다운가, 사랑은 아름다웠던가, 아름답지 않은 것도 사랑이던가.

   
▲ 영화 <오아시스> 포스터

 이창동감독 영화들은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사랑은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그것과 너무 달라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이래도? 이래도 내가 예뻐? 라며 화장을 지우고, 가발을 던지고, 옷을 벗어버리는 여자처럼 영화는 오월의 볕 아래 민낯의 사랑을 턱 밑에 들이대며 묻는다.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해보시지.

   
▲ 영화 <오아시스> 스틸컷

<오아시스>가 특히 그런 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전과3범의 사회부적응자 홍종두와 뇌성마비장애인 한공주는 둘 다 만만치 않은 포스로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홍종두는 출소하자마자 자신이 죽인 사람의 가족들을 찾아가 웃으며 사과를 하거나 식당에 가서 돈을 안 내고 도망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관객의 낯을 붉히게 한다. 한공주는 그냥 보는 것 자체만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데 그녀가 딱히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몸을 곧게 펴지 못하는 뇌성마비에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 영화 <오아시스> 스틸컷

 <밀양>의 이신애를 사랑하는 카센터사장 이종찬은 그녀의 피아노학원에 가짜 상장을 달아줄 줄 알고, 다방 아가씨에게 농을 던질 줄도 아는 세속적인 인물이다. <시>에서 양미자의 손자 종욱은 집단강간의 가해자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 영화 <밀양> 스틸컷

   
▲ 영화 <시> 스틸컷

 이창동감독의 영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름다움은 아니다. 전과자와 뇌성마비환자의 사랑이기도 하고, 중소도시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세속적인 중년의 사랑(밀양)이기도 하며, 강간 가해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시)이기도 하다. 실은 진실에 더 가까운 것, 옆집 아주머니의 이야기이기도하고 삼촌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을 그린다. 우리와 너무 가까운 이 영화들은 스크린 밖을 나와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 영화 <오아시스> 스틸컷
   
▲ 영화 <밀양> 스틸컷

 이 감독 영화 속 인물들은 주연부터 엑스트라까지 무작정 착한 사람도 무작정 나쁜 사람도 없다. 한 없이 미워할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다. 모두들 적당히 나쁘며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평범하다. 한공주 명의를 도용해 장애인 아파트에 사는 가족이 경찰서에서 흘리는 눈물은 진짜다. 또한 그들이 가해자와 적당히 합의를 봐 합의금을 챙기려는 이기심 또한 진짜다. <시>의 양미자에게 상냥한 기범아버지의 친절은 진심이다. 양미자가 오백만원만 빌려달라고 했을 때 그가 보이는 적개심 또한 진짜다. 우리는 적당히 정의롭고 적당히 세속적이다. 그렇지만 이런 평범한 우리의 삶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사랑이 비루하다고해서 아름답지 조차 않은가.

   
▲ 영화 <오아시스> 스틸컷

삶에, 사랑에 판타지는 필요하다. 판타지가 연인의 비쭉나온 코털, 목늘어난 티셔츠를 가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와 사랑할 일도 결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30년을 함께 살지도 않았을테고 그랬다면 그가 속이 좁고 치사한 사람이지만 동정심이 많고 여린 사람이기도 하다는 점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판타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진흙 속에 처박힌 삶도 아름답다.

   
▲ 영화 <시> 스틸컷

이창동감독은 밀양을 찍은 후 한 인터뷰에서 “삶은 아름답죠. 이러이러하기에 아름답다고 설명하기 이전에,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워야만 하구요. 아름다움이 무엇이냐는 게 문제일텐데, 그 아름다움이 모든 이가 쉽게 받아들이고 동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아닐 것 같습니다. 누구든 삶이 아름답다는 믿음 그 자체가 없으면 살기 어렵죠. 삶이 이러저러해서 아름답다고 말하면 바로 배반당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다워요.” 라고 말했다.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기 앞서, 우리는 그 믿음 없이는 살기 어렵다.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기대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에 기대어 민낯의 삶을 사랑하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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