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디아티스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디아티스트매거진=강수환]

본 기사는 스포일러성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네이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포스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옳고, 남이 틀리다는 오류를 쉽게 범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알다시피 진실이 아니다. 그 사람 기준에선 그 사람이 맞은 것이며, 내가 틀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무언가를 ‘옳고, 그르다’로 나눌 수 있는 명제는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명제는 개인이나 사회, 혹은 역사가 부여한 가치나 규정, 특정 개념 안에서, 즉 어떤 ‘테두리’ 안에서 ‘맞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사회의 문제일 수 있지만 개인 내부의 문제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개인 내부의 여러 생각들이 충돌하여 어떤 것은 이것이 맞다 주장하지만, 또 다른 생각은 저것이 맞다 주장하고 있다. 시간의 개념과 접목시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맞다고 생각한 것이 현재의 나에게는 틀렸던 것일 수 있고, 반대로 과거에는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 현재 기준으로는 맞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테두리’를 정한 명제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상대적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되어지는 것들은 ‘맞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라고 표현을 한다. 우리가 정한 ‘테두리’는 언젠가는 결국 어떠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다른 ‘테두리’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처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사회적, 과학적 혹은 규범적과 같이 다수의 동의하에 만들어진 명제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흔히 발견되어지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그 영화 안에 존재하는 주인공들의 차원. 내부의 차원에서 정해진 ‘테두리’는 보다 작은 규모의 것이다. 사람들은 개인 각자만의 패러다임을 알게 모르게 계속 바꾸어 나간다. 그 테두리는 어떤 시간이 조금씩, 겹겹이 쌓이며 확장되거나 축소될 수 있는 것이고, 혹은 엄청난 사건을 맞이하여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

   
▲ ⓒ네이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인간은 시간에 묶여있는 존재이다. 시간이라는 차원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의 생각, 가치관, 그 뿌리마저도 그 영향 밖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항상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이다. 혹은 ‘지금은틀리고그때는맞다’가 될 수도 있겠다.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같은 시공간과 주인공,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세부 내용은 미묘하게 다른 형태를 취한다.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야기. 함춘수(정재영)는 영화감독인데 수원에 내려오게 된다. 수원성에서 윤희정(김민희)을 만나게 되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여차저차 그녀의 작업실까지 가게 된다. 작업실에서 그녀의 미술작품들을 보고 칭찬을 하고, 둘은 술집으로 향한다. 술집에서 둘은 취하게 되고, 그 다음 장소로 윤희정의 지인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희정의 지인들은 함춘수의 여성편력 소문에 대한 진실을 캐묻고, 함춘수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희정은 차갑게 그 자리를 떠나고, 함춘수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두 번째 이야기. 함춘수는 수원성에서 희정을 만난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그녀의 작업실로 향해 그녀의 미술작품들을 감상한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들을 솔직하게 비평한다. ‘본인 만족을 위한 작품이다’라고. 윤희정은 기분이 상한다. 둘은 술집으로 향하게 되고, 함춘수는 본인이 기혼했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정은 그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둘은 더 친밀하게 된다. 희정의 지인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 둘은 그곳을 나오고, 함춘수는 희정을 집까지 바래다주게 된다. 다음 날 희정은 함춘수의 영화가 상영되는 곳에 나타나고, 함춘수가 수원을 떠나는 길을 배웅한다.

   
▲ ⓒ네이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틸컷

 

 ‘지금과 그때’라는 표현은 대부분 ‘현재와 과거’를 지칭한다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1부와 2부는 현재와 과거가 아닌 ‘다른 차원’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평행우주’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독이 그 두 가지를 ‘평행우주’에 입각하여 표현한 것인지, 그냥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라는 대비만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세부적인’ 것들이 달라지자 그 사건의 ‘결과’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것들. 함춘수는 1부에서는 희정에게 본인의 사생활을 숨기고, 희정의 마음을 얻고자 칭찬만을 늘어놓는다. 본인의 결혼 사실, 여성 편력이 희정의 지인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드러나고, 이는 그를 희정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다. 반면에 2부의 함춘수는 솔직하고 대담하다. 솔직함이 무기였을까. 윤희정은 그런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마지막엔 먼저 그에게 다가간다. 물론 그들을 잡아내는 카메라의 시선도 달라진다.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 해도 바뀌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함춘수는 동일인물이라고 설정했을 뿐, 실은 1부와 2부의 함춘수는 어떤 사람들 기준에선 ‘참 다르다’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일인물로 이름이 같고, 의상도 같고, 같은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지만 만약 시각적인 비쥬얼을 바꾸고 이름이 다르다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2부의 함춘수가 조금 더 적극적이고,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조금 더’를 강조해도, 그런 조그만 변화가 생기기 위해선 용기라던가, 연습의 결과, 수많은 우연 요소들의 결합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 수많은 복합적 요소들의 우연적인 결합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제목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인 것일까. 일단 지금과 그때를 시간의 굴레에서 배제시켜보자. 이 영화자체에서도 시간의 변화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그저 같은 차원의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룰 뿐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도 1부와 2부, 어느 것이 맞고 틀린지 전혀 알 수 없다. 해피엔딩이라고 해서 ‘맞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항상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인간의 취약성. 매 시간 달라지는 인간 자체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1부와 2부의 차이에는 주인공의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 혹은 ‘조그만 성격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어떠한 현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우연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다. 그것들이 어떻게 조합되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경험과 추측을 통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결과물의 확률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확률의 문제. 어느 영화에 나왔던 ‘운명은 우연이 놓아주는 다리’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이는 우리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수도 있는’ 해피엔딩에 주목한 것이다. 인간의 노력을 북돋아 주고, 그 가치를 높이 사며 숭고하게 표현한 것. 물론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던 작던간에 확률의 싸움에 흙탕물 튀기며 고군분투하는 일 아닐까. 어느 누군가에겐 주어지는 것들에 만족하며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맞은, 올바른’ 일이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 ⓒ네이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아트 포스터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