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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 <스틸 앨리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지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기억을 얻는다. 사소한 버릇과 취향부터 치열하게 성취한 지식,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추억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존재한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 2014)>는 이런 기억이, 주인공의 대사를 빌리자면 “깜빡하는 것과는 다르게 빠져나가며” 흘러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앨리스(줄리안 무어)의 환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성공한 자식들의 다정하고 행복한 아내이자 엄마이며, 동시에 언어학자로서의 명예를 성취한 유능하고 똑똑한 여성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전히 너무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런 앨리스가 가진 유일한 바램이라면 연극에 빠진 막내딸이 안정적인 길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부러운 자기소개를 본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제시되는 일련의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의아함을 던져준다. 발표를 하다가 사소한 단어를 까먹거나, 캠퍼스 안에서 길을 잃거나, 그래서 병원까지 찾아가지만 그녀답지 않게 테스트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들과 의사의 의미심장한 대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이 맑혀진다. 동시에 관객들은 알츠하이머라는 소재적 특성상 이 이야기의 길이 하나밖에 없으며, 슬픔과 안타까움을 극대화하며 진행된 이야기의 결말에서 앨리스가 결국 많은 것을 잃은 상태일 것이란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이 상실의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앨리스’로 남았다. 무엇이 앨리스를 앨리스답게 하는가?

   
▲ 기억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당황스러워 하는 앨리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이 영화 속에는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은 설정들이 많이 녹아있다. 너무나 똑똑한 데다 심지어 언어학자인 앨리스가 말을 잃어가는 가혹한 설정이나, 잘 쓰지 않는 단어는 기억해내지만 일상처럼 쓰던 단어는 왠지 생소하게 느껴하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앨리스와 막내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와의 관계의 변화다. 결정적으로 이 ‘관계’는 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어줄 것이다.

초반에 리디아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엄마의 생일파티에 참석을 못 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못 미더워하는 엄마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여 가벼운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아픈 엄마의 곁을 지키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자신의 꿈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나, 언니 애나(케이트 보스워스)의 핀잔을 듣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다.

   
▲ 진로에 대한 의견 차이를 보이는 리디아와 앨리스 (이미지 출처: 네이버)

하지만 리디아의 역할은 앨리스의 병이 깊어지면서, 앨리스의 묵묵한 조력자로 조금씩 떠오른다. 엄마의 곁을 챙기던 애나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앨리스에게 안겨주기 탐탁지 않아하고, 앨리스가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일깨워주며 황당한 배려를 베풀던 것과는 다른 배려이다. 리디아는 기억을 붙잡는 앨리스의 단순한 방식을 조용히 지지하며, 그런 앨리스의 노력을 왠지 부끄러워하는 언니 애나에게 심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앨리스의 절실했을 마음을 공감해주고 앨리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은,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무대 위 리디아의 간곡한 호소이다. 이에 앨리스 역시 리디아의 꿈을 인정하고 또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리디아의 연극배우라는 꿈보다, 다른 자식들의 안정적인 진로를 좀 더 지지하던 예전에는 보여지지 않은 모습이다. 학구적인 연설에 익숙하던 앨리스가 리디아의 조언에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같은 환자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연설은 리디아와의 관계가 앨리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 기억을 많이 잃어버린 앨리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끝에서 앨리스는 결국 자기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게 되었지만,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 앨리스의 아이스크림 취향을 기억하고 그녀의 예전 모습과 일하던 직장을 말해주는 따듯한 남편과,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도 접고 엄마의 곁으로 돌아온 딸 리디아 말이다.

리디아가 해준 이야기에 앨리스가 입술을 달싹이며 열심히 뱉어낸 단어, ‘사랑’은 어쩌면 그녀가 지금까지 습득한 많은 단어들 중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건강했을 때 했던 연설에서 그녀가 말했던 ‘본능적인 중얼거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그녀가 ‘앨리스’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앨리스가 자존(自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억이 그녀 스스로에게 남아있지 않아도, 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들의 기억이 앨리스를 존재하게 하는 것,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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