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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2015, 로버트 저메키스)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는 제목에서부터 과감히 편견을 거부한다. 일반적인 걸음의 장소인 땅과 성서의 예수가 걸었다는 물도 아니고 ‘하늘’을 걷는 남자라니. 의아한 제목에의 궁금증을 삼키고 마주하는 오프닝 씬. 여기서 주인공 ‘펠리페 페팃’은 또 한 번 영화적 편견을 거부한다. 등장인물은 카메라를 마주보지 말아야 한다는 극 영화의 주요 불문율을 무참히 파괴하고, 그는 스크린 밖 관객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전 죽음이란 말을 참 싫어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말을 더 좋아하죠. 삶, 이것(줄타기)은 제게 삶 그 자체입니다.” 사실 이 말은 아이러니다. 412m 위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는 외줄타기를 기획하면서도 이것은 삶이라고 말하는 남자. 아슬하긴 해도 살아는 있으니 삶이 맞긴 하지만, 단정 지어서 삶이라고 하기엔 너무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삶. 이 의문과 동시에 그는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말없이 한 가지의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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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그리고 펠리페 페팃의 과거로 돌아간 영화는 그의 삶을 조목조목 탐색하기 시작한다. 5살 때 동네에 온 서커스 극단의 줄타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소년의 모습부터 그의 예술 활동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가출을 결심하고, 광장에서 아름다운 음악 예술가 ‘애니’와 사랑에 빠지며 뉴욕에 생길 아주 높은 건물을 향한 영롱한 꿈까지. 이 일련의 삶은 그의 ‘줄타기’란 예술 활동을 아름답게 포장하길 시도한다. 언제나 꿈을 향한 청년의 도전은 숭고하다. 하지만 극단적 삶의 형태에 도전하는, 그의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향한 꿈은 줄타기처럼 아름답고 즐겁지만 위태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페팃의 모습을 쭉 지켜보면서, 그를 향한 강렬한 위태함은 ‘그 높은 곳에서 줄을 타다가 떨어지면 어떡하지?’란 걱정보다 페팃의 아버지가 아들을 보며 했던 걱정처럼 ‘줄타기를 하면 과연 먹고 살 수는 있을까?’란 생각이 앞선 까닭이다. 물론 먹고 사는 게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위에 자리하는 지금의 현실에 내가 깊게 파묻힌 탓이겠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원초적 고민이지 않는가?
누군가 ‘죽기 전에 못 먹은 빵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하고 묻는다면, “굶어 죽는다면 못 먹은 빵이 생각나겠지.”라는 대답이 우선 튀어나오는 게 사실 근래의 현실이다. 취업문은 언제나 바늘 구멍 만큼 작고, 그 바늘 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도 열정을 강요받는 현실에서 ‘꿈’은 언제나 배부른 소리로 다가올 수밖엔 없다. 그러므로 페팃의 모습이 스크린 속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이 아니라 만일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 위에 존재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철없는 놈’하면서 욕을 하고, 무시했을 게 분명하다. <하늘을 걷는 남자>란 영화 제목의 판타지스러움처럼, 꿈을 향한 발걸음도 언제나 판타지이기에. 그러므로 페팃이 그의 꿈에 대해 지속적으로 ‘쿠데타’라 천명함은 자본주의의 논리와 굶어 죽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이 크게 자리한 세상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꿈의 승리를 바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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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실제 펠리페 페핏의 모습 | ||
이러한 판타지스런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하늘을 걷는 남자>는 놀랍게도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존에 이미 수없이 많은 실화 바탕의 영화들이 있었지만, 상당수가 흥미로운 소재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왔음은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실화의 호흡을 조절 하는 영화의 호흡이 너무 지루하게 다가온 까닭이고, 한정된 서사의 재미가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는 이런 실화 배경 영화들의 약점을 서사적 흥미와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극복한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의 줄타기라는 목표를 가진 페팃은 계속해서 줄타기 연습에 매진하지만 계속된 실패와 한계에 부딪히고, ‘파파 루디’라는 세계 최고의 줄타기 장인을 찾아간다. 그로부터 페팃은 그동안 길거리 공연으로 벌었던 모든 돈을 파파 루디의 기술을 배우는 데에 사용한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세상의 쓴 맛을 본 무림 꿈나무가 절대 고수를 찾아가서 사사 받는 모양새다. 이뿐 아니라 ‘줄타기’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능력 있는 동료들을 만나서 여러 가지 계획을 꾸미는 ‘케이퍼 무비’적인 즐거움까지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리고 모든 무협 영화와 케이퍼 무비가 그러하듯이 목표 성취를 향해 가는 가운데 그의 앞에는 끊임없이 위기가 닥쳐온다. 종잡을 수 없는 경비원의 출몰과 412m 위에서 두 건물 사이를 줄로 연결하는 어려움, 겁 많은 동료의 도망과 줄 타는데에 가장 중요한 발 부상까지. 하지만 페팃은 이러한 악재에도 그의 혁명, 쿠데타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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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오전 7시. 그는 412m 위 외줄에 몸을 맡긴다. 구름이 가려주는 눈앞의 시선은 마치 천국의 계단처럼 황홀하였으나, 이내 밝은 태양이 선사하는 뉴욕의 전경은 두려움과 설렘의 압도였다. 하지만 이 압도감에 짓눌리지 않는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힘겹지만 가벼웠다. 이 대목에서 보이는 그의 발밑에 펼쳐진 회색빛 콘크리트 세상은 죽어버린 낭만의 사회를 소묘한다. 하지만 꿈을 실현한 페팃의 걸음은 세상의 회색을 붉은 태양빛으로 물들이기 충분했다. 이제 412m 아래에서 그의 비상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줄타기를 하면 밥은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하는 걱정 따윈 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한 걸음에 실린 평생의 염원을 보았고, 한 인물이 지닌 혁명적 낭만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그는 뉴욕 시의 법을 100여 가지나 어긴 범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를 구속하는 법은 412m 상공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페팃은 진정 그가 바란 쿠데타를 실행했다. 끝까지 그는 ‘감옥에 갈지도 몰라’하는 두려움 없이, 줄타기 꾼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킨 채 모든 쇼를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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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뉴욕 상공을 밟는듯 한 착각과 저려오는 오금을 부여잡고 그의 쇼를 감상한다. 잠시 세상 속에서 현실을 위해 꿈과 낭만을 포기한 채 살았던 자신은 잊고서 잠시나마 그가 꿈꾸는 낭만적 세상으로 폭 빠져든다. 오로지 이 한 사건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영화는 그러나 페팃의 줄타기로 그의 쿠데타가 완성됐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엔딩 시퀀스에서 꿈을 이룬 페팃을 뒤로 한 채 그의 여자 친구 애니가 “네 꿈을 이뤘으니 이젠 내 차례야”라며 파리로 떠나는 것은 아마도 낭만쟁이 예술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세상에 던지는 자신의 메시지는 아닐까? 각자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서 낭만의 쿠데타를 일으켜보라는.
여기까지 미친 생각은 계속 카메라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페팃의 모습이 점점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쿠데타로 뒤집힌 세상을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던 것인 게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