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디아티스트

슬로우 웨스트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이한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영화 슬로우 웨스트(Slow West, 2015)는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서부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제이는 로즈라는 사랑하는 소녀를 찾기 위해 서부를 향해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이다. 제이가 좇는 이상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영화로 보이지만, 사랑영화 역시 아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좇다보면 간결한 편이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의미는 치열하다. 그래, 영화는 순수한 소년이 서부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와 그가 바꾼 것들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상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런 힘 없는 이 소년이 어떻게 험악한 서부를 변화시키고, 어떻게 꿈을 이루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1. 서부를 향해 가는 소년.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해서 서부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이. 아직 소년의 티를 벗어내지 못한 제이가 안내자인 사일러스를 만나기 전까지, 그 늑대굴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그래서 제이의 시점에서는 사일러스가 시야 밖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처럼 앵글에 잡히지만, 현실의 사일러스에게는 총알조차 장전하지 않은 채 말 한 마리와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서부에 나타난 제이야말로 뜬금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마치 불시착한 사막 한 가운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어린왕자처럼. 별을 헤아리는 소년의 영상으로 영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가 만나는 인물들이 너무나 이상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이유로, 이 영화가 어린왕자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의 순수함으로는 이해 못할 군상들과 세계를 접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동화 같은 이야기. 그래서 되려 삭막하고 외로운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인 ‘나’를 변화시키는 어린왕자의 이야기. 제이와 사일러스라는 영화의 두 주인공에 정확하게 대입되지 않는가. 사실 감독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주인공의 이름이 로즈인 것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는 폭력이 난무하고, 죽음이 대수롭지 않은 서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일러스에게 서부는 저 바위 뒤에서 언제 나쁜놈들이 뛰어 나와 제 목숨을 앗아갈지 모르는, 의심해야 할 길이다. 하지만 제이에게는 사랑하는 로즈에게 가는 길이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길이다.

제이가 서부를 향해 가면서 만난 사람들을 곱씹어보자면 맨 처음 인디언을 사냥하던 가짜 장교, 현상금 사냥꾼인 사일러스, 들판에서 노래하던 흑인들, 혼자 다니는 현상금 사냥꾼, 식료품점의 주인, 식료품점을 털기 위해 온 부부, 부부의 남겨진 아이들, 학자, 현상금 사냥꾼 두목인 페인, 페인의 무리들, 인디언, 제이가 찾던 여인 로사가 되겠다. 이 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상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여기서 나열하듯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부로 가는 소년의 여정 그 자체이기 때문에.

중요한 스포를 말하자면, 이 위에 언급한 사람들 중에 들판에서 노래하던 흑인과 제이를 버리고 떠난 학자,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사랑노래를 부르던 흑인, 사라져가는 인디언의 문화를 기록하기 위해 홀로 서부에 온 학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서부로 가고 있는 제이와 동일하다. 이상을 좇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죽은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영화가 말하고 있는 지점은 분명하다고 보는데, 슬로우 웨스트는 서부 영화도, 사랑 영화도 아닌, 결국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제이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서부로 가고 있다. 제이를 안내하는 사일러스의 목적도 같은 여자이다. 하지만 그는 여자의 목에 걸린 2000달러를 위해 서부로 가고 있다. 허무맹랑한 소리만 쓰여 있는 서부 안내서 한 권을 들고 온 제이와, 어린시절부터 현상금 사냥꾼들 밑에서 일하며 서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일러스. 순수한 제이와, 현실적인 사일러스. 영화는 이상을 꿈꾸는 자와 현실을 추구하는 자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2. 이상을 좇는 자와, 현실에 쫓기는 자.

 이상론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추상적인 이상만을 주장하는 말이나 논설을 말한다. 그러니 이상론자는, 이상론을 주장하는 사람이되겠다. 그렇다면 제이는 이상론자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제이의 이상은 로즈를 만나는 것이다. 로즈와 행복하게 사는 삶을 스코틀랜드에서만 꿈꿨다면 제이는 이상론자겠지만, 그는 미국으로 와서, 서부를 향해 가고 있다. 가만히 앉아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는 힘이 있다. 어떤 참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어도, 꿈을 이루게 만드는 힘이.

 그리고 그 힘에는 주변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도 포함 될 것이다. 제이와의 여행을 통해 사일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변화해간다. 그가 제이의 면도를 해 주는 장면에서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로즈를 찾는 것을 왜 도와주는지 알고 있어요.” 사일러스는 흠칫 긴장한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제이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다시 면도를 계속한다. “외롭기 때문이죠.” 로즈에게는 2000달러의 현상금이 붙어있고, 그것을 모르는 건 제이 한 사람 뿐이다. 사일러스는 그 말을 웃으며 넘긴다. 하지만 그 순간이 나는 사일러스가 제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지점이라고 느꼈다. 사일러스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실 제이의 그 말이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사실 사일러스는 외로웠고, 다만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제이는 어떻게 사일러스의 외로움을 알았을까. 그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 속해있었지만, 결국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일러스는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쫓기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의 뒤를 쫓고 있는 현상금 사냥꾼 무리는 돈과 힘이 우선시되는 냉정한 현실을 대표한다. 현실적이다, 라는 말은 현실에 순응한다는 것과 같다. 그들은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비웃으며, 현실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결국 그들은 현실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자신을 변화시키며, 그렇기에 현실에 쫓기는 자들이다.

 사일러스가 변화하려는 시점에서 다시 조우하게 된 과거, 현상금 사냥꾼의 우두머리인 페인과의 만남은 사일러스에게 다시금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그 접점에서 사일러스는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바라고 있던 안락한 삶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아침 나절, 제이가 했던 실없는 소리가 사실은 사일러스의 진심을 내보이게 만든 것이다. 제이의 시점으로 시작된 꿈은, 사실 사일러스의 꿈이었다. 이것이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압축한 복선이다.

 이 꿈에서 깨어나며 제이와 사일러스는 거대한 시련을 맞게 된다. 술에 취해 두 사람이 정신 없이 잠든 사이 폭우가 쏟아졌고, 그 비 대문에 총기류를 비롯하여 옷가지까지 다 젖어버린 것. 모든 상황이 변했다. 현실이 냉정한 이유는, 거기에 어떤 가치판단도, 어떤 동정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와 사일러스가 함께 여행하고 있는 이 폭력의 세계에서는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것은 총알이고, 총알에는 눈이 없다. 영화 중간에 제이가 밤 중에 만난 현상금 사냥꾼 무리의 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 속에서나, 영화 마지막 총격전에서 페인 무리가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죽이게 된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단적으로 제이가 식료품 가게에서 사일러스에 총을 겨눈 여자를 쏘았을 때, 그리고 가게에서 나와 굶주린 아이를 보았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지점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인디언을 통해서, 죽고 죽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고 제이, 그 자신을 통해서. 폭력과 죽음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거기에는 어떤 도덕을 부여하는 것도 책임을 부과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다만 남겨진 아이들처럼, 슬픔만이 남는다.

   
▲  이미지 출처 : 텀블러

 영화는 ‘이상은 영원히 이상으로 남고, 현실은 영원히 현실로 남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제이와 사일러스가 로즈를 볼 때 각각 사랑하는 여인과, 수배 대상자로 보았던 것처럼 그 둘은 결국 하나의 대상을 다르게 보고 있는 것뿐이다. 그들은 다른 세상에 속해 있지만, 언제든지 자리를 옮겨 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제이와 사일러스의 말과 말에 줄을 이어 젖은 옷가지를 함께 말리는 이미지를 가장 중요한 이미지로 꼽고 싶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결코 가볍지 않은 장면이다. 그 이전까지 뚜렷하게 대비되었던 제이와 사일러스의 경계가 저 줄 하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사일러스는 제이를 위해 로즈의 목에 걸린 현상금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제이를 위해 로즈를 구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사일러스가 그가 서 있던 세상에서, 제이가 서 있는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서부가 단순히 폭력배들의 세상이 아닌, 로즈라는 소녀로 인해 아름다운 세상으로.

3. 영화가 남긴 것

 영화의 큰 줄기를 좇다 보니 영화의 다른 한 축인 로즈에 대한 이야기가 짧아 아쉬움이 남는다. 로즈는 제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제이를 사랑하는, 그리고 지켜줘야 하는 소녀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한 축으로 등장한다. 이 지점이 아마 제이의 한계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한 번 가장 중요한 스포일러를 언급해야 하겠다. 영화의 중간에 나온 자신이 베던 나무에 깔려 죽은 인디언의 이미지는 제이 자신을 뜻한다. 로즈를 찾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 결국 자신이 찾던 것에 의해 죽고 마는. 이것이 현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가치판단도 있을 수 없다. 이상을 좇던 순진한 소년의 죽음. 하지만 이것으로 영화가 끝나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사일러스를 바꿨고, 로즈가 죽는 게 당연했던 현실을 바꿨다. 그리고 사일러스에게 그 서부 여행서의 한 문장을 남겼다. “HO- HO, 가자 서부로!” 그에게 서부는 더 이상 두려운 세상이 아니다. 서부는 이제 언제 맞닥뜨려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현실이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두 영화가 유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유사성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공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와 제이의 역할의 유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잔혹한 세상에도 희망은 존재하지.” 그것은 제이의 삶이 구스타브의 대사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이상을 꿈꾸는 두 주인공이라는 점이 그러하고, 마지막으로 그 주인공들이 폭력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현실의 육체를 잃은 것에 불과하고 그들이 대변했던 고귀한 정신으로 각각 제로(토리 레벨로리)와 사일러스에게 남게 된다. 이것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가치를 마음속에 간직해달라는 간곡한 호소인 것 같아, 슬로우 웨스트는 좋은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