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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포토 | ||
[디아티스트매거진=권오경] 제목만 봐서는 적당히 지루한 노부부의 멜로영화일 것 같은 느낌이지만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을 하나라도 보았다면, 사랑을 어떻게 파헤치고 그 안에서 관객, 즉 나에게 사랑에 관한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영화감독의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영화라면 사실 보는 내내 따분할 수 있겠지만 미카엘 하네케는 영화를 매개로 우리가 직접 생각해보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영화가 단지 시각적인 요소들의 나열과 배치로 의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영화가 품고 있는 의문점을 표면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전해지는 충격들로, 우리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들ㅡ혹은 생각이 종종 튀어나와도 외면하고 있었던 주제들ㅡ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는 관객에게 열려있는 영화다. <아무르>를 제대로 보았다면 누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이 도대체 무엇일지. 조르주가 안느를 끝내 죽인 것도 사랑의 한 종류일지에 대해서 우리는 어쩔수없이 생각하게 된다.
명성있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안느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조르주는 견딜 수 없어한다. 그가 견딜 수 없어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에게는 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안느가 더이상 그런 모습은 간직하지 않은 채 한쪽이 마비된 상태로 용변조차 가리지 못하고, 바지도 조르주가 대신 올려주어야 하며, 제대로된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이었을까 아니면 갈수록 비참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그녀의 심리적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
분명 그들에게 사랑은 존재해왔고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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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포토 | ||
젊었을 적에는 열정으로 가득한, 맹목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했다면 그들의 사랑위에 엄청난 시간이 중첩되고 그들만의 기억이 쌓이면서 사랑은 점점 그 양태를 바꾸어간다. 어떤 때는 이해와 인내로 혹은 신뢰와 의지로, 어떤 때는 무한한 애정과 보살핌으로 또 어떤 때는 괴로움과 존중으로 드러난다.
조르주는 아내를 죽였다. 영화는 이에 대해 일말의 윤리적 메시지도 담고 있지 않다. 이리한 조르주의 행위역시 사랑의 또 다른 형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을 우리는 배제할 수 없다. 판단은 오직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분명한 점은 그들의 본질적인 사랑은 변함이 없을테지만, 사랑의 형상이 변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모습을 과연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문점들로부터 이 영화의 제목이 <아무르>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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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포토 | ||
<아무르>는 죽음과 맞닿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일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주제를 관객이 스스로의 입장에서 느껴보도록 한다.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들의 사랑을 그저 영화속 인물들에게만 처한 상황이 아닌 현실로 이끌어와 되묻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보다도 직접적으로 화두를 던지고 이것이 그들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점은 미카엘 하네케의 다른 영화들이 뒷받침해준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늑대의 시간>에서는 이자벨 위페르가 안나역을, <퍼니 게임>에서는 나오미 왓츠가 안느 역을 맡은 동시에 팀 로스가 조지역을 맡았고 <미지의 코드>에서는 줄리엣 비노쉬가 안 역을, 티에리 누빅이 조르쥬 역을 맡았다. 또한 <히든>에서는 다니엘 오떼유가 조르쥬역을, 줄리엣 비노쉬가 그의 아내 안느역을 맡았으며 마찬가지로 <아무르>에서는 엠마뉘엘 리바가 안느역을, 장 루이 트린티냥이 조르주역을 맡았다. 이러한 동일한 이름의 반복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에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어두운 측면 ( 아무르에서는 죽음을 마주한 사랑이 그것이다.)ㅡ폭력, 권력에 의한 강압, 자살, 죽음, 사고 등ㅡ 이 갖는 보편성을 보여준다. 특정인물, 즉 영화 아무르의 등장인물인 조르주와 안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일임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네케가 그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유일한 메시지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