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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아직 끝나지 않은 임무

   
▲영화 암살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손정호][기사 내 모든 사진의 출처는 NAVER 영화입니다]

<암살>(2015, 최동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광복 70주년. 특별한 2015년이지만 우리는 또 한 번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난 7월 ‘하시마 섬’이 일본 근대화의 산물이라는 명목하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인 강제 징역으로 한(恨)이 서린 곳으로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올 11월 1일에 한일정상회담이 잡혔지만, 한일문제는 회의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만행을 피하기 급급할 뿐이다. 국가의 3요소 영토, 주권, 국민. 우리는 70년 전에 영토와 주권은 되찾았지만 국민은 되찾지 못했다. 우리 조부의 동생, 친구, 부모님이 원통함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때, 이를 더욱 고조시켜줄 영화 <암살>이 떠오른다.

암살을 보기 전, 연일 영화의 흥행을 전하는 소식에 우려됐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로 연출력을 인정받았지만 <도둑들>은 초호화 캐스팅으로 흥행몰이 하는 데 그쳤다. 암살 또한 초호화 캐스팅과 우리의 한(恨)을 흥행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암살은 초호화 캐스팅보다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의 흡입력이 돋보인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이라 할 수 없다. 영화가 역사 왜곡의 논란에 선 이유다. 이 글은 암살의 역사적 사실이 아닌 애국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안옥윤(전지현)

최동훈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늘 여자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말한 바 있다. 보기 드물게 여자 주인공을 선두에 내세운 것도 이와 관련이 있으리라. 암살에 등장하는 다수의 남자 캐릭터는 염세주의와 기회주의에 흔들린다. 하지만 여자 캐릭터는 모두 강직한 인물이다. 애국심에 남녀의 차이가 없음을 뜻한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개개인의 애국심과 신념, 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가 큰 볼거리다. 특히 안옥윤(전지현)이란 캐릭터는 정말 흥미롭다. 대개 저항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여자가 맡는 임무는 뻔하다. <색,계>의 막부인(탕웨이)이나 <블랙북>의 레이첼(캐리스 밴 허슨)처럼 미인계를 활용한 스파이가 전부였다. 안옥윤은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명사수로 남자들도 우러러보는 인물이다. 여성보다 독립투사의 면모가 더 돋보인다.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안옥윤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지닌 캐릭터다. 이를 증명하는 장치가 스카프와 안경, 장총이다. 하와이 피스톨의 스카프를 늘 착용하는 것은 사랑에 설레는 감성을 대변한다. 한쪽 알이 깨진 안경과 장총은 독립투사의 모습을 나타낸다. 안옥윤에게 안경은 장총의 조준경과 같다. 덤덤하게 안경을 쓰는 모습은 일본군을 처단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처럼 겸허하게까지 느껴진다. 한쪽 알이 깨진 안경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전투에 참여했고 역경을 헤쳐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개인적으로 가장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가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다. 친일파인 서로의 아버지를 죽이는 자발적 모임 ‘살부계’의 일원이었던 하와이 피스톨. 그의 가슴 속에 애국심이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안옥윤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서로의 아버지를 죽이고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무력감과 현실의 암울함이 그를 염세주의에 빠트렸다. 나약한 그는 청부살인업자가 됐다. 염석진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굴복하고 이상(理想)을 접은 또 다른 캐릭터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모두에게 등 돌린 염석진과 다르게 하와이 피스톨은 어린 소녀의 죽음에 분노한다. 아직 그의 가슴 속에 정의감과 연민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김구와 김원봉(조승우)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익명의 독립자금을 제공하는 인물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누군지 의견이 분분하나 개인적으로 하와이 피스톨이길 바란다. 안옥윤의 애국심을 보고 그녀를 통해 독립을 꿈을 꾸게 됐으면 한다. 하와이에 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지인에게 매달 익명으로 독립자금을 보내달라고 유언을 남기는 것이다. 자신은 포기했지만 누군가는 꼭 해방이란 꿈을 대신 이뤄주길 간절히 원했으리라. 청부살인으로 모은 자금은 하와이라는 유토피아를 위한 것이다. 독립자금을 보낸 이가 하와이 피스톨이라면, 그의 유토피아는 하와이가 아닌 독립된 대한민국이 된다.

   
▲염석진(이정재)

염석진(이정재)이 강인국(이경영)을 급습하기 위해 등장하는 시퀀스는 한국판 히어로물을 보는 것 같았다.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잠입해 얼굴을 가리고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적을 처단한다. 안중근 의사는 왼손 약지를 스스로 자르며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염석진은 오른손 약지와 함께 애국심도 잃었다. 그 자리는 체온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금속 손가락이 대신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독립에 대한 막연함은 히어로를 악랄한 악당으로 변질시켰다. 왜 배신했느냐는 말에 염석진은 말한다. “통일이 될 줄 몰랐으니까”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다. 뻔뻔한 대답이지만 실제 조국을 배신한 수많은 변절자가 가진 생각일 것이다. 애국자마저도 변절하는 시대에 독립투사의 강직함에 다시 한 번 숙연해진다.

모두가 독립으로 기뻐할 때, 홀로 방 안에 있는 김원봉은 침울해 보인다. 여러 개의 술잔을 보며 함께한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되뇐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겠죠?” 라는 말에 김구는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연거푸 사과한다. 어찌 김구의 잘못이겠는가. 만약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우리의 잘못일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독립투사를 기리는 정책이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야 하지만 너무 무심했는지도 모른다. 애국심이 거창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수많은 희생과 염원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지금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열정이 곧 애국심이다.

영화 암살은 관객들에게 임무를 줬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영화 막바지에 염석진을 처단하며 안옥윤이 수화를 대신 전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해방을 선물 받은 우리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 이면에 숨겨진 우리의 한과 선조의 희생을 새기는 일. 약 36년이란 시간 동안 잃은 우리의 국민을 되찾는 일.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 영화에서처럼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완수해야 할 우리의 임무다. 임무에 투입되면서 속사포의 애국심은 커졌다. 속사포처럼 영화 암살이 우리의 애국심을 고무시키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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