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아티스트매거진=김성희]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할거라는 마야인들의 예언이 있었다. 2012년 지구 멸망설이 대두됨에 따라 2011년 영화 <2012>가 개봉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영화 자체의 흥미도 흥행에 한 몫 했겠지만,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한 것도 컸을 것이다. 그런 미신은 안 믿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다행히 2015년인 지금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지만, 과연 정말로 지구가 멸망할지, 멸망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면서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지구멸망’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과는 또 다르다. 나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인류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공룡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구멸망에 관한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건 바로 행성충돌이다.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시한폭탄 같은 그 행성은 피할 수 없고, 가장 강력한 ‘한 방’이 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 인류의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모든 세계가 무너질 것이 확실해진 그 순간,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여기, 그 위기에 처한 두 영화의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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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세상 끝까지 21일>, <멜랑콜리아> 포스터 | ||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사랑을 : <세상 끝까지 21일>
만약 오늘밤에 외계인들이 쳐들어와서
지구 위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맞는다면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물 심는 대신에
그냥 하루 종일 그대와 사랑 나누다가
하늘이 꺼지고 바다는 성난 고래처럼 우릴 덮쳐와도
다 괜찮아 마지막 입맞춤하며
우리의 영혼은 아메리칸 슈퍼 로켓처럼 날아 올라가서
빛나는 저별을 찾아서 떠날거야
-주효, ‘슈퍼로켓’ 中-
중년의 남자 도지는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21일 후에 행성이 충돌 할 것이고, 지구가 멸망할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 아내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를 떠나고, 그는 홀로 남겨져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구에서의 마지막을 보내려 하지만 도지는 딱히 할 것도,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도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웃집에 사는 페니와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 페니에게로 잘못 배달됐던 우편물들을 받는다. 그 중엔 도지의 첫사랑의 편지도 있었고, 그는 첫사랑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페니가 그 여정에 동행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세상 끝날 때까지 함께 여행을 한다. 그들의 여행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이 끝나기 전, 마지막 여행이자 추억을 함께 나눈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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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지의 첫사랑을 찾아 떠난 도지와 페니 -영화 <세상 끝까지 21일>中 | ||
그렇다. 세상이 무너져도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이 끝날텐데 무얼해도 의미가 있겠냐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참 낭만적이기도 하다. 결국엔 두려울 수 밖에 없는 마지막 그 순간,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면, “너를 알게 되어서 기뻤어”라고 말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참 따뜻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마지막 그 순간에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다. 꼭 사랑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도, 원제인 ‘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 처럼, 마지막날을 함께할 좋은 친구를 찾는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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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도지와 페니 -영화 <세상 끝까지 21일>中 | ||
지구의 끝은 세계의 끝이 아님을 : <멜랑콜리아>
유쾌한 분위기의 <세상 끝까지 21일>과는 달리 <멜랑콜리아> 는 제목만큼이나 우울하고 , 어두운 분위기다. 주인공 저스틴은 우울증 때문에 결혼식까지 망치게 되고,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는 그런 동생을 돌봐준다. 그러던 어느날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위기에 처한다. 보통의 재난영화라면 우왕좌왕하는 전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이 영화속 세상엔 마치 저스틴과 클레어, 그리고 클레어의 가족들 밖에 없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만을 보여준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음울한 행성 멜랑콜리아가 다가올수록, 저스틴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처음엔 두렵지 않은척 했던 클레어 역시 두려움에 떨며 벗어나고자 발버둥친다. 하지만 둘의 차이라면, 저스틴은 멜랑콜리아 행성을 두려워하는것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저스틴은 오히려 그 모든걸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저스틴과 클레어의 상황이 반대가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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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레어와 저스틴 -영화 <멜랑콜리아> 中 | ||
어쩌면 저스틴에겐 지구의 끝이 세계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저스틴의 세계는 이미 그 전에 무너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녀에게 삶은 알 수 없는 깊은 우울의 연속이었다. 잃을 것이 없어 두려울것도 없는 것일까, 아니면 클레어가 나약한, 너무나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인걸까. 클레어와 대비되는 저스틴의 모습은 의연하면서도 담담하게 느껴졌다. 저스틴에겐 행성과의 충돌이, 지구의 멸망이, 오히려 모든걸 내려놓고 편안해질 수 있는 계기인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런 멜랑콜리아와 같은 푸른 빛 우울함이 만연한 느낌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힘들고, 자신의 존재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하루를 버텨내는 삶 보단, 이 세상이 전부 사라진다는 소식이 반가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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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멜랑콜리아> 中 | ||
<세상끝까지 21일>, <멜랑콜리아> 두 영화는 소재로 치자면 행성충돌, 지구멸망이라는 재난영화 스러운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세상 끝까지 21일>은 지구 멸망을 소소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냈고, <멜랑콜리아>는 지구 멸망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울감이 파괴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어떤 걸 하며 보내야 할지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든, 함께할 친구를 찾든, 아니면 그저 모든걸 받아들이며 끝을 맞이하든, 그저 자신이 그 순간 하고 싶은 것, 그 순간의 감성에 충실하며 살아가면 꽤 괜찮은 마지막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