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염하거나 청순하거나, 모란圖의 색다른 美
-동·서양 그림 속 모란의 상징성, 모란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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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ouard Manet, <peonies in a vase> ,1864, (출처: 구글이미지) | ||
[디아디스트매거진=양효주] 늦은 귀가 길에 떨이로 파는 꽃을 한 아름 샀다. 나는 얼마 되지 않는 호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 산 이 ‘여린 생명’이 행여나 부서질까 꺾일까 염려하며 간난 아기 안듯 조심스레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불꽃같은 색감과 날카로운 자태를 뽐내며 한껏 교태를 떠는 장미보다도 어쩐지 더 묘한 끌림이 있던, 순백의 자태가 아름다운 이 꽃의 이름은 모란이다.
실은 모란인줄 모르고 모란을 사왔기에 놀라움이 컸다. 꽃가게에서 봤던 네임텍에 peony라 적혀있던 것을 기억해 사전을 찾아본 후에야 peony(혹은 peonia)가 우리말로 ‘모란’이라는 것을 알았다.
[참고]
모란(牡丹, Paeonia suffruticosa)은 작약과의 잎지는 떨기나무이다. 그 꽃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중국 서부 원산이다.
(출처: 구글 위키피아)
무엇이 좋아지면 이래저래 관심이 많아지는 법, 나의 무지에 대한 경악은 잠시 유보하고 동·서양 그림 속 모란에 대해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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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석모란도 4폭병풍>,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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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석모란도 (부분)8풍병풍>, 19세기, 서울역사박물관 | ||
동양의 모란
모란꽃은 중국 수나라 왕실에서 ‘꽃 중의 왕’으로 불렸다. 설총의 《화왕계》에서 ‘화왕’ 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모란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9세기에 들어 시인 이백의 시에서도 모란이 화왕으로 묘사되어있다.
名花傾國兩相歡 명화경국양상환
常得君王帶笑看 상득군왕대소간
解釋春風無限恨 해석춘풍무한한
沈香亭北倚欄干 침향정북의란간
모란꽃과 경국지색 서로 반기니
왕은 웃음 띄우고 바라보네.
봄바람에 끝없는 한을 풀어 녹일 때
미인은 침향정 북쪽 난간잡고 기대네.
이백, <청평조사 3>
중국 원산인 모란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때는 선덕여왕(신라 제27대 왕(?~647)시기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수이전>에는 모란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특히 선덕여왕의 모란일화가 흥미롭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태종이 선덕여왕에서 붉은색, 자주색, 흰색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를 보내왔다. 선덕여왕이 그 그림을 보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 꽃은 비록 화왕이라고 불리나,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 황제가 이것을 보낸 것은 짐이 여자로서 왕이 된 것을 빗댄 것이 아니겠는가?” 이내 신하들이 씨를 뜰에 심어 꽃이 피기를 기다려보니 정말 향기가 없었다.’
사실 모란꽃은 처음에 약재로 쓰였다. 그러나 무측천(武則天,624~705)에 의하여 모란의 심미적 가치가 대두되어 이후로는 약재가 아닌 관상용으로써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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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석모란도 (부분) 8풍병풍>,지본재색, 경산시립박물관 | ||
모란도의 종류는 모란꽃과 더해지는 대상에 따라 다양하며 그 의미도 풍성해진다. 조선시대에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뜻해 왕실과 고관대작들 사이에 귀한 선물용으로 많이 그려졌다. 특히 조선궁궐에서 모란을 가장 아끼고 좋아하여 왕실 화원들은 모란을 그리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임무였다. 또한 새해나 명절이 되면 일반 서민백성들도 복을 염원하는 뜻에서 집에 모란도를 걸어놨다고 한다.
[참고]
모란꽃만 그리면 부귀도(富貴圖)라 하고
모란꽃을 크게 그리는 것은 대부귀도(大富貴圖 – 크게 부귀를 누리다)가 된다.
모란꽃과 바위를 함께 그리면 부귀장수(富貴長壽)이며(동양화에서는 바위가 장수를 뜻함)
모란꽃과 장닭을 함께 그리면 부귀공명도(富貴功名圖 –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 부귀를 누린다)
모란꽃과 병(甁)을 함께 그리면 부귀평안(富貴平安 – 평안하게 살면서 부귀를 누리다)
모란꽃과 백두조를 그리면 부귀백두도(富貴白頭圖 –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부귀하다) 이때 백두조는 반드시 두 마리를 그린다. 한 마리나 세 마리는 부부해로(夫婦偕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모란꽃과 목련(玉), 해당화(堂)를 함께 그리면 부귀옥당(富貴玉堂 – 귀댁에 부귀가 깃들기를 기원하다)의 뜻이 담겨있다.
(출처: http://m.blog.daum.net/jamesan2020/15698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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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걸이 (부분) 8폭병풍>, 지본재색, 프랑스 기메박물관, (출처:조선민화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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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란과 호랑이>,지본재색, 개인소장 (출처:조선민화박물관) | ||
모란이 이렇듯 부귀와 복의 의미가 커서 그런지 동양의 모란도를 보면 -그것을 염원하는 뜻을 담아- 꽃의 크기가 크고 화면 가득 빼곡히 수놓아져있다. 또한 모란꽃은 백색, 황색, 분홍색, 적색이 있으나 유달리 동양의 모란도에는 서양의 모란도에 비해 적색 모란이 많이 그려져 있다. 아무래도 붉은 색감이 주는 기운생동감과 화려함이 부귀·영화의 의미를 잘 표현한다고 여긴 것일까? 간혹 그림에서 흰색 모란꽃도 볼 수 있으나 필자가 감히 넘겨짚어 보건데 이는 적색 모란의 붉은 색감을 보다 더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흰색을 이용한 대조법을 노린 것이 아닐까 한다. 혹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양기가 왕성하고 만물을 생성하는 적색과 음기가 강한 백색을 함께 그려 놓음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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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지연, <목란도>, (출처:구글이미지) | ||
서양의 모란도
서양의 모란도를 해석하려면 먼저 그곳에서 통용되는 모란의 상징성을 살펴봄이 순서일 것이다. 서양의 모란은 어디서 유래되었으며 그것의 상징적 의미는 동양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어느 화가가 모란을 회화의 주제로 삼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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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ncent van Gogh,<bowl with peonies and roses> , 1886, (출처:구글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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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의 어원과 탄생설화
Ⅰ. 영어 n. Peony(peonia) / 그리스 신화
모란의 유래는 그리스신화에서 다양한 설로 등장한다. 한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 의술의신인 파에온Paeon이 아폴로Apollo신의 어머니에게서 올림푸스산에 피어있는 한 꽃을 받아 이것을 약용으로 사용하였는데, 훗날 그 꽃을 파에온의 이름을 딴 피오니peony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모란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달과 연관이 있다. 달의 신이 밤중의 달빛을 반영reflect하는 뜻에서 지상의 달을 창조하였는데 그것이 모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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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ourd Manet,<branch of white peonies with pruning shears> , 1864, (출처:구글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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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nri Fantin- Latour, <peonies in a blue and white vase> , 1872, (출처: 구글이미지) | ||
Ⅱ. 독일어 n. Pfingstrose
= Pfinsgten + Rose
(뜻) 성령강림주일 + 장미
독일에서(혹은 독일어권) 모란Pfingstrose은 ‘성령강림주일’Pfinsgten과 ‘장미’Rose의 단어를 합친 합성어로써 ‘성스러운 꽃’ 이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다.
[참고]
성령강림주일 Pentecost : Christian festival celebrated on the seventh Sunday after Easter 오순절(五旬節, Pentecoste)은 그리스어로 ‘제50’의 뜻을 가진 말로, 원래는 유대인들이 보리농사의 수확을 끝내고, 보리로 만든 두 개의 빵을 바치는 제사날을 말한 것인데, 유월절(逾越節)의 이튿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해당한다. 이 날, 즉 예수의 부활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그의 제자들이 모인 곳에 성령(聖靈)이 강림하자(<사도행전> 제2장), 그들은 성령에 충만하게 되어 전도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이 날을 ‘성령강림일’이라고도 한다. 사실상 기독교의 성립일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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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ouard Manet,<a crystal vase of peonies>, 1864, (출처: 구글이미지) | ||
현대 서구문화 속 모란의 상징: ‘온전한 행복’, ‘완벽한 결혼’
봄철에 만개하는 모란은 행운을 상징한다. 특히 정원에 모란이 가득 핀다면 그 가정에는 복이 지속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잎이 마르고 꽃잎의 색이 바란 모란은 불행과 재앙을 상징하므로 주의해야한다.
모란은 종종 로맨스와 연관이 된다. 모란이 만개했을 때 둥근 모양을 띄기 때문에 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행복하고 원만한 결혼생활이란 의미도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결혼 12주년이 되면 모란꽃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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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ierre Anguste Renoir,<vase of peonies> , 1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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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회화의 대상이자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소재이다. 물론 동·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에 따라 회화의 주제로 선호되는 꽃은 다르다 -그림 주문자(소유자)의 의도와 그림이 걸릴 장소의 성격에 따라 달라- 예컨대 조선시대 군자의 절개와 충성심을 의미하는 사군자, 불교의 석가를 의미하는 연꽃, 성모마리아의 순결을 의미하는 백합과 장미는 그것이 담고 있는 은유와 상징 때문에 특정 목적을 갖고 그려지며 여전히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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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ul Gaugauin,<bouquet of peonies on a musical score> , 1876, (출처:구글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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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패션매거진에서 ‘같은 옷 다른 느낌’ 이라는 기사제목으로 여러 연예인들의 사진을 놓고 비교하는 것을 본다. 같은 옷이라도 누가 입느냐, 옷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이 여간 신기하다.
우연 중 다행으로 모란이 거의 유일무이하게 동·서양 미술사에서 모두 사랑받는 꽃 인지라 패션의 ‘같은 옷 다른 느낌’과 같은 맥락으로 동·서양의 모란도를 비교해 보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때로는 요염하게 때로는 청순하게’ 진정, 모란이 정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