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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mien Hirst, With Dead Head, 1991©Damien Hirst and Science ltd | ||
[디아티스트매거진=이재혁] 1988년, 데미안 허스트는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중인 친구들과 함께 한 공장에서 FreeZe 전을 연다. 당시 이들은 모두 무명이었으나 이 전시회로 찰스 사치는 이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이후 1992년 찰스 사치는 본인의 갤러리에서 ‘Young British Aritist’전을 연다. 영국 미술의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1997년에는 로열 아카데미에서 ‘센세이션’ 전시회가 열린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전시회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는 YBA를 이끈 데미안 허스트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이 전시회는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도 열린다. 전부터 찰스 사치를 등에 없고 미술계에서 종횡무진하며 화제를 몰았던 허스트는 이 전시회와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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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Damien Hirst and Science ltd | ||
데미안 허스트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화가였다.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를 누구보다 잘 사용했다. 본인의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매력적인 광기는 그의 작품과 잘 어울렸다. 그의 작품 또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는 비쥬얼이었고 그는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그의 작품을 묶어낸다. 비쥬얼적인 쇼크를 넘어서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그는 죽음이란 키워드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한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상어를 넣은 ‘The physical impossibilities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다. 이는 비쥬얼적 쇼크와 현학적인 제목을 사용해 미학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를 모두 잡아내는 허스트 특유의 전형적인 매칭이다. 이 외에도 송아지 머리와 파리를 수조에 넣어 파리를 무한히 번식하게 하는 ‘Thousand years’도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는 ‘수조+포름알데히드+동물’이라는 그 고유의 클리셰를 넘어 ‘죽음’이란 키워드로 더욱 더 다양한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여러 마약들의 이름을 붙인 그의 스팟 페인팅 연작들,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 돌아가는 원판에 물감을 던져 그림을 그리는 ‘스핀 페인팅’, 내장을 비치게 만드는 조각상 등 그는 죽음을 키워드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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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mien Hirst, The Virgin Mother, 2005©Damien Hirst and Science ltd | ||
그는 분명 미술사에 획을 그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역시 여러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가 비판받는 지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로 동물학대 논란, 둘째로 예술계를 완전히 자본주의화 시켰다는 점, 셋째로 작품의 신선도가 떨어진 점이다. 우선 그가 동물을 사용한 작품들은 모두 진짜 산 동물을 죽여서 만든 것이다. 상어도 상어잡이 사냥꾼과 계약을 맺고 잡은 것이고 나비 페인팅도 진짜 나비들을 붙인 것이다. 상어와 나비는 그냥 통째로 넣어졌으니 양반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많은 동물들은 반으로 갈라져 있기도 하고 10조각 이상으로 나뉘어지기도 한다. 동물협회는 이러한 지점에서 그에게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한다. 작품을 핑계로 너무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고 동물권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저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비판이 예술계 밖의 비판이라면 두번째 비판은 예술계 안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그는 아티스트이자 마케터이다. 조수들과 함께 본인의 작품을 비싸게 팔기 위해 궁리하고 네이밍도 시장의 취향에 맞추어서 한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그의 속물적 근성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인데 그냥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수없이 박아 가치부여를 한 작품이다. 또한 그는 본인의 작품이 망가지면 AS서비스를 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의 한 갤러리에서 부자들의 자제들에게 집적 스핀 페인팅을 시연하며 작품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그가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있었기에 그가 현재의 지위에 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아방가르드의 탈을 쓴 키치라는 비난을 피해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마지막으론 그의 작품이 예전같지 않다는, ‘작품’ 자체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비판이다. 그의 작품들은 이제 클리셰로 점철됬다는 것이다. ‘수조+포름알데히드+동물’의 클리셰가 동물과 이름만 바꾸어 계속된다.
스팟 페인팅 역시 단순한 점의 조화를 가지고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작업 과정중 그는 거의 작품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 큰 문제는 그의 작품이 이제 더 이상 세련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의 조각상 ‘The Virgin mother’나 우크라이나 전시회에서 공을 천장에 매달고 바닥에 칼을 박아서 만든 ‘the history of pain’은 비쥬얼적으로 세련되지도 않고 혁신적이지도 않아 혹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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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mien Hirst, For the Love of God, 2007©Damien Hirst and Science ltd | ||
어쨌든 그가 현재 현대미술계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화가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아티스트들 중에 가장 재산이 많다고 뽑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후에 미술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영국 미술의 부활을 이끈 혁신적인 아티스트로 남을까? 혹은 쇼킹한 비쥬얼로 부를 얻으려 한 장사치로 남을까? 아마 그 중간 어디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