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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홍상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제목에서부터 ‘그때’, ‘지금’의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제시한다. 한 가지 서사의 다른 두 가지 변주로 구성된 영화는 동행하는 두 인물을 조명하며, 그들이 경험하는 1박2일간 행적의 과정과 변수, 결과의 이유를 고민한다. 물론 언제가 맞고 언제는 틀리다란 기준은 확실히 결과론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에, 영화는 1부와 2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맞다고 여겨지는 그때와 지금에 대한 명징한 밝힘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같은 행적, 다른 결과의 두 이야기는 아주 인접한, 그러나 평행한 두 개의 선(線)과 같은 형상이다. 두 인물이 직면한 두 선의 간극과 그 결과의 상이함은 상황에 대한 인물의 태도에서 촉발된다. 정말이지 그 차이는 얼핏 보면 다르지 않아 보이는 아주 미묘한 사소함에서 발생한다. 마치 함수에서 숫자 하나가 바뀌면 결과가 바뀌듯 그들의 말과 행동, 어투와 눈빛의 미묘한 차이는 상이한 결과로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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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희정의 그림을 평가하는 춘수 | ||
오프닝은 한적한 수원 행궁이 스크린에 비친다. 햇살 가득한 배경, 그 앞을 가로지르는 여인과 동그마니 서있는 한 남자.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는 1부의 제목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영화 제목에 투사되어, 과연 지금 비치는 화면이 ‘맞는’ 그때 인지, ‘틀린’ 지금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다만 잠시 하늘로 향하는 카메라에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화면 전체에 걸려, 부서진 유리와 같은 형상을 보이는 것으로 어찌됐건 오프닝에 얼핏 비친 두 남녀의 무언가 어긋날 일상을 암시한다.
행궁의 바깥에서 멀뚱히 서있던 남자, 영화감독 함춘수는 갑작스런 일정 변경으로 수원에 하루 일찍 도착했다. 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의 수원행이 어긋난 위치에서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때워야하는 그는 수원 행궁을 서성인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예쁜 곳’이란 나름의 이유로 복내당에서 한참을 쉬다가 바나나 우유를 먹는 여자 윤희정을 만난다. 그녀는 모델 일을 하다가 지금은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두 남녀는 영화를 만드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의 미묘한 동질감으로 하루를 동행한다. 함께 화실에 가서 춘수는 희정의 그림에 ‘알 수 없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가 보인다며 칭찬하고, 뒤이어 스시집에서 술을 마시며 춘수와 희정은 서로를 ‘진짜 남자, 진짜 여자’라며 치켜세운다. 자신을 향한 칭찬에 희정은 춘수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이윽고 희정의 아는 언니, 수정의 파티에 동석하면서 희정의 그림에 대한 춘수의 발언이 자신이 평소 영화 인터뷰 가운데 하던 발언의 반복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여성편력이 있는 유부남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자연스레 희정의 호감은 실망으로 점철된다. 이에 춘수는 찌질하게 카페를 나선다. 당연히 다음 날 진행된 특강도 좋지 않은 기분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다시 하늘로 향하는 카메라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비춘다. 그 형상대로 그의 1박2일은 부서진 유리, 앙상한 나뭇가지마냥 어긋난 기억으로 남는다.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도 역시 앞선 1부와 동일한 행적이 진행된다. 춘수는 역시 하루 일찍 수원에 도착했고, 희정도 하루 종일 행궁을 서성인다. 둘은 또 복내당에서 조우하고, 하루를 동행한다. 마치 악보 위의 Da capo(다카포)처럼 큰 틀에서 보면 같은 행위의 반복과 같지만, 그들이 점점 끝을 향해 갈수록 펼쳐지는 서사는 사뭇 다르다. 1부에서의 함춘수의 행위가 자신의 여성편력에 따른 진부한 작업과 같았다면, 2부에서 그의 행위는 좀 더 강렬한 감정에 따른 진실로 보인다. 그 차이는 윤희정의 그림을 습관적인 말로 칭찬하는 1부의 함춘수와는 반대로 보다 직설적이고 진실한 비판을 던지는 2부의 함춘수의 모습을 통해 가식을 버린 그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난다. ‘자기 위안적’이란 비판, 예술가에게 관객과의 소통이 없다는 최악의 비판을 던진 그는 진실 된 충고 이후에 희정에게서 원망의 일갈을 듣지만, 이내 ‘감독님은 참 진실하시네요’하는 평가를 듣는다. 그리고 그 진실은 스시집에서 1부완 다르게 스스로 유부남임을 밝히며 눈물짓는 모습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진실 된 모습을 통한 신뢰감의 구축은 둘의 관계가 1부에서처럼 찌질하고, 실망스럽게 마무리 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춘수의 사랑한다는 고백 뒤에 딸려온 “난 결혼을 했거든요”라는 고백은 이어서 희정으로 하여금 “섭섭하다”고 말하게 한다. 하지만 이 섭섭함은 1부에서 둘 사이의 완전한 단절과 이별을 불러왔던 그 섭섭함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이다. 1부에서 실망에 따라 일어났던 호감의 상실이 2부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길바닥에서 주운 반지를 건네주며 “결혼했다”고 외치는 춘수의 모습은 얼핏 애틋함을 환기하고 둘의 진심을 공고히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희정은 처음으로 춘수의 영화를 보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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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는 언니의 파티에 참석한 희정과 춘수 | ||
이러한 1부와 2부의 차이는 무엇일까? 1부의 거짓과 2부의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함은 어느 것이 옳다는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춘수의 거짓과 진실 속에 숨은 공통의 진심은 젊고 예쁜 미인 화가에게 접근해서 어떻게 한번 같이 자보려는 속셈이다. 다만 1부에만 등장하다가 2부에선 사라지는 그의 보이스 오버 독백을 통해서 관객들이 춘수의 진심을 알고, 모르는 차이로 인해 표면이 규정될 뿐이다. 명백히 춘수의 진심을 알 수 있던 1부에서의 그는 음험해보였고, 진심이 감춰진 2부에서의 그는 순수해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속셈에 대한 이런 표면의 차이는 확연히 다른 결말을 환기한다. 춘수가 땅바닥에서 주워준 반지를 자랑하듯 드러내며 영화를 관람하는 희정의 모습은 1부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상징하는 어긋난 일상과는 달리 안정된 감정의 얼개를 상징한다. 그녀의 얼굴엔 계속 옅은 미소가 감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1부와 2부의 사소함이 건네주는 판이한 결말을 통해 한 가지 사건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다양한 결말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자연히 관객들에게 교훈적으로 다가온다. ‘3부가 있었다면 춘수는 희정과 잘 수 있었을까?’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자는 약간은 뜬구름 같은 교훈은 사실 인생에 대한 세이브 파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이상일 뿐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은 맞고 틀리다는 판단을 할 수 없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란 제목의 다중성처럼 잡을 수 없는 순간의 지금에 대한 맞다는 확신이 있어도 뒤돌아보면 결국 언젠간 그때가 틀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희정이 “지키지 않으면 무너질까봐” 지키는 루틴(routine)처럼 반복적으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언제나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 하루를 끝내는 모든 이들의 반복성에 대한 은유이다. 이러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판단에 싸여있지만 이게 옳은지 알 길은 그 루틴을 조금씩의 변주로 파괴해보는 방법밖엔 없다. 마치 1부의 루틴을 조금 파괴함으로 더욱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 2부의 모습처럼 말이다. 춘수와 희정의 사랑이 실패한 1부에서는 엔딩 후 다음날 아침에 그들은 다시 과거의 ‘지키지 않으면 무너질’ 루틴으로 회귀할 것임이 분명하다. 희정의 인생에서 춘수는 퇴장하고, 춘수의 인생에서 희정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서로는 잊혀진다. 그러나 2부에서는 희정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처럼 반짝이는 1박2일 간의 강렬한 감정이 앞으로 계속 남아서, 그들이 펼쳐낼 화려한 작품 속에서 만개할 것이다. 2부 가운데, 진실 된 춘수가 말했던 “마음의 위안이 작품을 풍성하게 해줄 거”란 이야기처럼, 아마 엔딩 씬에 쌓이는 하얀 눈처럼 보다 더 풍성한 감정의 자취를 남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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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헤어지는 남과 여 | ||
그러므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교훈은 순간 순간 주어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을 잘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교훈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루틴’에 대해서, 조금 더 풍성하게 잘 살고 싶기에 형성한 그 루틴에 대한 총체적 재고를 해보자는 교훈이다. 보다 옳은 가치를 향한 발걸음. 춘수는 그 발걸음으로 한 여인과 사랑의 기억을 공유했고, 희정은 불안했던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이러한 기억과 위안은 곧 옳은 가치의 정초가 된다. 이건 1부의 공기를 지배하는 루틴, 춘수의 유부남임을 감추는 루틴 위에선 도무지 세워질 수 없는 정초였다. 따라서 춘수가 가진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식의 루틴과 희정이 가진 과시적이고 자기 위로적인 루틴이 파괴 된 2부의 결말은 일단 ‘지금은 맞아’ 보인다. 앞으로 언제 또 다시 그것이 되돌아봐졌을 때에 그때는 틀리다고 부정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희정의 집에 들었다는 도둑은 넓은 집 안의 텅 비어버린 금고를 보고 단지 발자국만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금고마냥 텅 비어버린 우리 마음속에 깊고 넓은 발자국 하나 남겨 놓는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비어버린 금고를 한 번 정직한 눈으로 바라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흩날리는 눈발 아래 소복이 쌓이는 눈밭에 과거완 다른 새로운 루틴을 찍어보자. 그것은 새로운 방향의 정초가 될 수 있다. 물론 틀릴 수도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