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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 “잃어버린 노스탤지어를 찾아서”

   
▲ 전시포스터 [사진제공=일민미술관 블로그]

[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집 한 채가 들어섰다. 단칸방에는 선풍기, 배불뚝이 TV 등이 소품처럼 놓여 있어 드라마 세트장을 연상시킨다. 이 방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 독거노인은 1930~50년대 영화판에서 단역을 전전했던 가상의 주인공이다. 섬세한 회화기법과 가상 및 실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전시 구성으로 대중을 만나온 중견 작가 조덕현(1957~)이 7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제목은 <꿈>.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남자의 인생과 꿈에 대한 서사를 상징한다. 조덕현 작가는 오래된 흑백사진을 화폭에 재현하여 한 가족의 역사를 되살리기도 하고 가상의 역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발굴 프로젝트를 등 실험적인 시도를 진행해왔다. 문학, 역사, 음악 등 타 장르와의 협업을 추구해왔던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소설가 김기창과 1년간의 협업 결과를 ‘하나의 강’이라는 단편으로 만들어냈다. 전시 <꿈>에서 관람자가 마주하는 것은 바로 작가 조덕현이 소설가 김기창, 배우 조덕현과 함께 실제와 가상 사이에서 재구성한 영화배우 ‘조덕현’의 ‘잊혀진’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이야기가 필요할까? 작가 조덕현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은 동명이인 영화배우 ‘조덕현’의 삶에 매료되었다. 1층 전시장 공간은 마치 위대한 영화배우의 화려한 커리어를 보여주는 듯하다.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그가 활동했던, 가장 화려했던 순간들의 기록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기 생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들에서조차 단역만 전전했을 뿐, 끝내 영화배우로서 명성을 얻진 못했다. 노년의 ‘조덕현’의 비참한 현실을 설치와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그가 추억하는 과거, 결코 손에 잡히지 않은 성공은 흑백사진 같은 2차원적 회화로 구현된다. 흑백사진을 정밀 소묘하는 작업을 주로 해온 작가는 추억의 영화의 장면이라는 흡인력 있는 소재에 배우 ‘조덕현’을 슬쩍 끼워 넣었다. 한지에 그린 연필과 콩테의 물성이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그레타 가르보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통해 노년의 망상을 시각화한 작품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그가 평생 갈망하며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던 공간, 그 공간과 대조적으로 방의 반대쪽에는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간신히 엿볼 수 있는 유폐된 작은 공간이 있다. 그 안에는 폐병이 들어 연신 콜록거리는 늙고 병든 노인의 모습을 한 ‘조덕현’이 있다. 그가 간절히 바랐던 삶과 결국 살아내야만 했던 삶. 그러나 누가 감히 그에게 어느 쪽이 진짜 당신 몫의 삶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 1층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일민미술관 블로그]

1충 전시장이 영화배우 ‘조덕현’의 삶을 재구성한 일종의 영화 세트장이라면, 2층 전시장은 마치 박물관 수장고 같다. 전시장 곳곳에 커다란 검은색 컨테이너 박스들이 쌓여 있는데, 이 박스들은 모두 한쪽이 조금씩 열려 있어 관람자가 그 틈새로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수많은 익명의 개인들이 살았던 시간, 삶의 편린들이다. 그동안 ‘잊혀 있던’ 이 기억의 조각들은 검은색 컨테이너 박스에 담겨 바다에 가라앉혀졌다가 다시 ‘발굴’되는 퍼포먼스를 거쳐 ‘전시’되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던 것들에 다시금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역사적 복원’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컨테이너 박스 하나하나에 담긴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시간들은 역사로서 우리에게 다시금 ‘기억’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역사’라고 불러왔던 것은 대개 거대한 것, 힘을 가진 주체들에게 주어진 화려한 무대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은 어떤 모습인가? 오히려 그렇게 ‘역사’라고 불리는 것으로부터 소외된 자잘한 것들의 모습에, 그 여백에 놓여 있지 않은가? 바로 작가 조덕현이 <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은 바로 그 여백의 모습이다. 즉, 그동안 거대한 ‘역사’에 의해 소외되고 잊혀졌던 무수한 익명의 개인들의 시간, ‘조덕현’ 혹은 우리 자신이 살았던 진짜 삶의 시간의 생생한 복원인 것이다.

   
▲ 2층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일민미술관 블로그]

마지막으로 3층 전시장에는 현대음악가 윤이상의 음악을 공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음(音)의 정원” 이 설치되어 있었다. 커다란 흰 천 뒤에 살아있는 덩굴 식물을 배치하고 잎의 그림자들이 수묵화처럼 비치게 했는데, 윤이상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동시에 수평적으로 조우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시각적 충격 대신 음악으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관람자들은 음향의 공간성과 빛과 어두움, 상상적 접근과 멀어짐, 정지 속 움직임을 느긋하고 평화롭게 음미할 수 있다.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감상의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서정(敍情)의 정원을 거닒이 된다. 이로써 문학과 영화가 미술이 되고, 마침내 음악과 조우하여 시각과 청각이 공명하는 풍경 속에서 전시 <꿈>은 대단원의 서사를 마무리 짓는다. 조덕현의 작업은 대상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형식을 지니지만, 보는 이의 심상을 소리 없이 파고드는 정신을 지녔다. 관람자가 나 혼자 뿐이어서 전시의 감흥이 배가 되었을까? 밤사이 소리 없이 내린 눈처럼 다가왔던 무채색의 고요함은 뜻밖의 노스탤지어를 안겨주었다.

   
▲ 3층 전시장 전경 [사진제공=일민미술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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