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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천만관객 한국영화 Choice 5

  [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2015년 여름 두 편의 한국영화, ‘암살’과 ‘베테랑’이 천만관객을 동원했다. 분명 천만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은 한국영화계에나 문화산업계에나 반가운 일이다. 이에 더해, 해가 거듭될수록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한국영화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영화를 원하는 대중들의 수요,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이 늘어난다는 것도 의미한다. 여러모로 ‘천만관객’이라는 네 글자에는 참 긍정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있다. 2015년 9월도 절반 이상 지나간 이 시점에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는 총 13편이다. 이 중에서 5편의 한국영화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맞닿아 있는 시기까지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는 그만큼 격동적이었기에 영화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고 대중들의 관심 또한 다른 영화들에 비해 더 주목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하여 대중들의 확고한 지지 표시, 천만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 그 다섯 작품을 되짚어보자.

   
▲ ‘암살’ 스틸컷

  암살

  한반도 근현대사 중 가장 비극적인 역사는 너무나도 길었던 경술국치 이후 8.15 해방까지의 기간, 일제강점기다. 명칭 그대로 일본의 강제적인 점령 기간에 우리 민족은 나라를 빼앗겼다. 하지만 그 비극에 안주하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실질적인 효용이 있었는가에 대한 논란은 배제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한민족 열사들은 일제에 온몸으로 항거했다. 무력투쟁, 교육발전 등 여러 방면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했다. 이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혼을 과거 한국영화계는 여러 차례 표현하려 힘썼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완성도를 가진 영화는 탄생하지 않았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은 7월의 여름, 최동훈 감독의 지휘 아래 ‘암살’이라는 한국영화 역사 상 가장 한민족 독립운동의 혼을 잘 표현한 영화가 등장했다. 상업적 영화였기에 흥행을 고려한 요소들은 영화 곳곳에 보였다. 하지만 그 요소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역사에 흠을 내는 수준은 아니었다. 분명히 ‘암살’에서는 상업적 흥행을 바라는 고려보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 일제강점기라는 무에서 독립이라는 유를 이뤄내고야 마려는 의지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이 점이 결정적으로 우세했기에 대한민국의 대중들은 ‘암살’에 천만관객이란 수식어를 수여해준 것이다.

   
▲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컷

  태극기 휘날리며

  일제강점기를 바로 이어 한반도는 다시 비극적인 역사를 맞게 된다. 비록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투쟁했던 한민족이었지만 투쟁의 과정 속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극단의 사상으로 갈려 6.25 전쟁이라는 동일민족 간 비극의 역사가 발발했다. 사실 사상의 갈등은 당시 독립 후 나라를 재건하려는 상위계층, 지식인들의 과제였다. 막 독립을 맞이한 보통 사람들은 그저 일제의 몰락에 기뻐했을 것이며 다시 한민족의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상 갈등의 실상도 모른 채 갑자기 발발한 6.25 전쟁에 갑작스레 휘말렸다. 이 단상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과 원빈이 맡은 이진태, 이진석 형제로써 간접적으로나마 확인 가능하다. 진태와 진석 형제는 사상이란 건 모른 채 그저 전쟁에 참가하게 됐으며 자신의 목숨, 형과 동생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에 맞섰을 뿐이었다. 비단 진태, 진석 형제뿐만이 아니었다. 진태, 진석의 전우들도 같은 이유로 전쟁을 치렀으며, 진석, 진태의 가족들도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일 뿐이지 살기 위해 그저 전쟁에서 살기 위해 갖은 몸부림을 다해야했다. 그들에게 사상 갈등은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문제였다. 전쟁이 낳은 이 모든 폐해, 이 모든 과정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여실히 담겨있었다. 2004년 대중들이 ‘태극기 휘날리며’에게 천만관객 영화라는 영광을 안겨준 이유는, 당시 보통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전쟁의 참혹함,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 이런 깨달음을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얻었기 때문이다.

   
▲ ‘실미도’ 스틸컷

  실미도

  6.25 전쟁 이후 한반도는 절반으로 나뉘어져 휴전선 아래로는 강한 반공주의 정서가 전국적으로 짙게 깔렸다. 격하고도 극단적인 반공정서의 산물로, 범죄를 지은 사내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모여 684 특수부대가 실미도에 결성됐다. 그들은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존재였다. 하지만 “평양에 침투하여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실미도의 684 특수부대 대원들은 없었던 목표가 생겼다. 이후 그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684 특수부대는 어느 군부대보다도 더 강한 정예부대로 거듭났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목표를 실행해보지도 못 한 채 국가에게 버림받고 도심 한 가운데서 산화되고 만다. 국가적 대립 정서로 인해 산화되고 숨겨지게 된 그들의 역사를 영화 ‘실미도’가 그대로 담아냈다. ‘실미도’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기라성 같은 한국영화계 대표 남성 배우들이 등장한다. 설경구, 안성기, 정재영이 주연을 맡았지만 이외에도 허준호, 강성진, 엄태웅, 임원희, 김강우, 강신일 등 한국영화계를 굳건히 지탱하고 있던 이들이 ‘실미도’를 위해 실미도에 모여 직접 684 특수부대가 된 것이다. 영화 ‘실미도’의 가장 기념비적인 기록은 2003년 당시 꿈으로만 여겨졌던 천만관객 동원 영화의 첫 번 째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실미도’가 첫 번 째로 천만관객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좋은 배우들이 한 데 모여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비극적 역사, 684 특수부대의 존재를 정중하게 연기해내어 재조명시켰다는 점에 있다. 대중들은 ‘실미도’를 접하며 단순히 영화를 즐기는 선을 넘어 숨겨져 있는 비극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 한 일종의 자성의 뜻으로 ‘실미도’에 첫 천만관객 영화라는 길이 남을 기록을 전달했다. ‘실미도’는 단순히 최초의 천만관객 영화라는 형용만으로 꾸미기 힘든 우리나라 근현대사 영화다.

   
▲ ‘변호인’ 스틸컷

  변호인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그리고 군부독재까지. 21세기 현대사회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회현상들이 1980년대에 들어서 수도 없이 발생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명목 아래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문을 당해야 했다. 이 절망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가 성숙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대의식을 정면으로 저항한 인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은 부당한 현실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그 저항의 방법도 법을 지키는 합법의 내에서 논리적으로 저항하는 인물 변호사 송우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그저 돈 버는 데만 삶의 초점을 두던 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일말의 사건을 계기로 세법 변호사가 아닌 인권 변호사로 탈바꿈하는 과정, 이것이 곧 영화 ‘변호인’의 전부다. 단순히 한 인물이 부당한 국가의 처사에 저항했다고 하여 ‘변호인’을 관람한 관객의 수가 천만을 넘을까? ‘변호인’은 한국영화가 가질 수 있는 모든 힘을 가진 한국영화의 총아다. 앞서 줄곧 얘기했듯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영화 안에 그대로 표현했다. 이 뿐만이 ‘변호인’의 매력이 아니다. 현대사의 비극을 다른 매체가 아닌 영화로써 표현했다는 영화 정체성을 가진 미적 시도마저도 돋보였다. 3분 노컷 롱-테이크 장면은 다분히 ‘변호인’의 백미가 아니라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예술적 표현이었다. 이렇듯 ‘변호인’은 영화의 예술적 미까지 놓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헌법 조항을 대사로 그대로 인용하여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가 헌법 조항을 말하며 격노하는 장면은 ‘변호인’을 관람한 모든 대중들에게 뜨거운 시민의식을 깊숙이 심어주었다. ‘변호인’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소재로 하여 시작된다. 그 시작에 뒤이어 영화 ‘변호인’이 보인 한국영화의 힘은 당연히 천만관객 동원을 이뤄내게끔 했다.

   
▲ ‘국제시장’ 스틸컷

  국제시장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주로 비극의 연속으로 흘렀지만 비극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전후 이례적인 성장을 거둔 국가이며, 이 성장을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모범사례로 따를 만큼 영광스런 근현대사를 겪은 국가다. 전쟁으로 낙후된 국가에 급격한 발전을 가져다 준 제1등공신은 당시 근로역군으로 일생을 바쳤던 우리네 어버이들이다. 어버이들이 국가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과정을 영화 ‘국제시장’을 본다면 확인할 수 있다. ‘국제시장’의 주연 황정민은 영화 내내 아주 격동적인 삶을 산다. 유년 시절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야했고, 살기 위해 미군에게 구걸도 해야 했으며, 어른이 된 뒤에는 돈을 벌기 위해 독일과 베트남까지 가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동생도 찾아야 했다. 즉, 우리네 아버지들께선 이런 고난의 삶을 살아오셨던 것이다. 또 다른 ‘국제시장’의 주연 김윤진도 격동의 삶을 보여준다.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돼 근무해야 했으며, 자신의 짝인 황정민을 타국으로 보내 외기러기 생활을 해야 했다. 즉, 우리네 어머니들께서도 이런 고난의 삶을 살아오셨던 것이다. 우리네 어버이들이 이렇게 사셨으니 우리네 어버이들 주변 분들도 얼마나 고난이었겠는가. 역사는 과거다.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간접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역사에 기록된 것이 시대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당시의 삶을 짐작 가능하게 한다. 이점을 ‘국제시장’이 영화라는 방법으로 기능한 것이다. ‘국제시장’이 천만관객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 우리네 어버이들이 온몸으로 일궈낸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로 비교적 과거보다는 나은 현재를 살고 있는 아들딸들이 우리네 어버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감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만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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