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두산갤러리에서 9월 2일부터 10월 3일까지 강동주(1988~)작가의 개인전 『전야(The Night Before)』 가 열렸다. 강동주는 2014년 제 5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 작가로 도시의 풍경을 먹지와 종이 위에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녀는 주로 도시 곳곳을 이동하면서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밤 풍경을 그린다. 모든 것들이 빛에 의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낮을 피해 어두운 밤을 택한 것은 시각적인 것을 유보하고,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감각을 발현시키기 위해서이다. 낮에는 장소가 이미지로 다가오고 그래서 재현에 치우치게 되는데, 적어도 시야가 옅어지는 밤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이렇게 적당히 배제된 시각성은 작가의 움직임을 순간마다 자유롭게 했다. 강동주는 종이 아래에 먹지를 두고 밤의 어렴풋한 빛들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먹지는 밤이라는 시간의 풍경과 감성을 종이에 옮기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종이 드로잉에서는 빛은 검은 연필 선으로 묘사하지만, 반대로 종이 아래 먹지에 빛을 그려나간 선들은 밝아진다. 빛이 부재한 어두운 밤에는 적은 양의 빛으로만 주변을 인지할 수 있는 것처럼, 그녀의 먹지 드로잉은 한 눈에 그 모습을 파악할 수 없이 어렴풋하게 남겨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강동주는 자신의 집에서부터 출발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주변을 이동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를 담은 드로잉을 선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 풍경들을 촬영하고, 100걸음마다 한 번씩 멈춰 서서 바닥의 표면을 종이에 담았다. 출발지와 종착지는 같지만 총 세 번의 다른 경로를 이동하면서 <빛 드로잉>과 <땅바닥 드로잉>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종이 위에 겹겹이 쌓여 중첩되어 보인다. 세 번의 다른 이동과 시간을 각각 18, 36, 38장의 먹지를 통해 만들어진 3개의 드로잉은 다른 농도의 밤 풍경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18, 36, 38번 멈춰선 순간 땅바닥의 질감이 옮겨진 종이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연필로 채운 <땅바닥 드로잉>은 멈춰 섰지만 정지되지 않은 시간의 풍경을 기록한 것이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길게 이어지는 강동주의 드로잉은 관람자에게도 경험의 시간을 요구한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인식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듯이, 그녀의 드로잉은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공간을 내포한 시간의 변화를 서서히 드러낸다.
강동주 작가의 작업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누구의 손으로 그릴 것인가?” 라는 동시대 공통의 질문을 마주한 채, ‘그리기’ 라는 행위를 재정의 혹은 재발명 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작가가 어떤 물질(matter)을 찾았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도 평생에 걸쳐 진행될 작업의 대(大) 주제를 구체적 주제로 포착했다는 것과 함께 그것을 표현할 최적의 질료와 형식을 찾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동주의 경우 그 최종 형식이 어두운 도시 공간이자 도시공간의 어두운 접면(interface)인 셈이다. 작가는 눈으로 바라보고, 흡수하고, 또 다시 되새김질한다. 완전함 보다는 불완전함이 가진 흡인력이 그녀를 끌어당긴 것 같다. 강동주는 작가 노트에서 모호한 광경들을 주섬주섬 주워 가다보면, 자신과 대상과의 관계성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또한 상실된 내면의 공백을 채워나가는 탐구적 행위를 따라 이어지는 교차점 위에서 자연스럽게 그 사이의 의미는 짙어진다고 덧붙였다. 강동주의 작업은 관람자로 하여금 장소성이 희미해진,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곳을 다시 본다는 것은 어떤 기분 일까? 라는 다소 감정이 달뜬 상념에 빠지게 한다.
강동주의 작업에는 이상하리만치 시간과 공간이 뒤엉켜 있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계속되는 이동의 기록을 보고 있자면, 시간의 더해짐(+)이 읽히고, 합해진 시간의 사이사이를 꿰뚫고 있자면 도리어 공간의 선명함이 눈에 차오른다. 지속되는 밤과 수집하는 밤의 빛과 함께 디뎌나가는 땅이 작업에 한데 담기는 탓이다. 강동주는 이번 작업을 “밤을 보는 내 시야와 기록(이라는 것)을 대하는 내 태도” 라고 이야기한다. 마치 안내서와도 같은 드로잉 작업은 후일을 위한 기록보다는 현재를 위한 기록, 남기기 위함보다는 그저 감각을 위한 구축에 의한 것이다. 관람자가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먹지는 그 켜켜이 쌓인 시간을 면으로 떠낸, 시각을 넘어선 ‘촉각’의 흔적이다. 실제로 여름에 끝난 작업이 가을에 열리고 있는 상황을 두고 봤을 때, 작가와 당신(관람자)의 시간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오늘 본 풍경은 내일의 전야 일 뿐이다” 라는 작가의 말 속에서 ‘오늘’을 보여주려는 것도, 자신이 ‘오늘 본 풍경을 이제 와’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라는 다부진 목소리를 듣는다. 단지 ‘지금’ 이 전시장에 와 있는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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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58분 3초의 밤의 단면들(2015.3) [사진제공=두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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