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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짐 자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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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바닥에 누워 돌아가는 이브 |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오프닝 씬. 하늘 가득 박혀있는 별의 형상이 조금씩 회전하기 시작한다. 별은 잔상을 남기며 끝없이 회전한다. 그리고 뒤이어 별의 형상과 유사하게 끝없이 회전하는 레코드 판, 무언가 쾌락에 빠진 상태로 바닥에 누워 돌아가는 남-녀의 모습이 스쳐간다. 그들의 모습은 모두 원의 형상을 지닌다. 알 수 없는 시작점에서 시작해 다다를 수 없는 끝을 향해 조금씩 이동하는 원의 형상은 마치 영원한 무한을 상징하는 듯이 폐곡선의 끝없는 움직임을 시각화한다. 그러나 이 영원함은 설레기보단 지치고 피곤하다. 영원히 죽지 않는 뱀파이어의 삶이 마치 그렇다는 듯이.
어지러운 화면의 회전이 멈추고, 남자 ‘아담’과 여자 ‘이브’는 어지러운 몸을 서서히 일으켜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이 시작한 하루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게도 밤이다. 그들은 어둡고 한기 도는 밤 공기를 헤치며 먹이 되는 ‘순수한 피’를 찾아 어슬렁인다. 이처럼 뱀파이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담과 이브’는 햇빛을 받지 못해 비타민 D가 부족한 몸을 끌고 영원한 삶을 위해 피를 갈구한다.
아담과 이브, 이 이름이 주는 기시감은 기독교 성서에 나와 있는 세상 최초의 인류를 향한다. 성서 속의 그들처럼, 스크린 속의 그들도 세상에의 다른 관계들을 배제하고 오직 둘만의 사랑이란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처럼 철저히 단편화된 관계는 지극한 외로움을 불러왔으며 또한 동시에 서로에 대한 온전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왔다. 이런 외로움은 그 반발로 영원불멸 존재의 자살 충동을 일으켰고, 그 사랑은 그럼에도 사는 게 낫다는 의지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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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담과 이브. | ||
두 뱀파이어의 관계는 사랑으로 묶였으나, 둘은 분명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아담은 과거에는 활기찬 동네였지만 현재는 폐허가 되어버린 디트로이트, 그 중에서도 후미진 동네에 거주한다. 찾는 사람이라고는 아담의 음악에 매료된 일부 팬에 불과한 그 동네의 모습은 아담이 추구하는 ‘락’이라는 음악 장르가 현재에는 소외받는 모습과 오버랩 된다. 반면 이브는 모로코의 탕헤르에 살고 있다. 분명 활기는 있지만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존재하는 동네. 그곳에는 담배 연기와 놀이가 혼재한 쾌락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진정 디트로이트와 탕헤르는 다분히 과거와 현재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 상징은 그 곳에 거주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으로 전이된다.
1968년도에 제작된 청진기를 매고, 1905년도 기타를 두드리며 아날로그 TV를 바라보는 아담의 모습과 아이폰을 사용하는 이브의 모습은 정확하게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소묘한다. 멈춰있고 흘러가는 시간의 간극만큼 벌어진 차이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둘은 머리 색깔이 드러내듯 검정과 흰색만큼 다르다. 인간에 대한 폐쇄적 태도를 일관하는 아담은 인간을 ‘좀비’라 부르며 경멸하고, 이브는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아담이 실행하는 ‘락 음악’과 중첩되며 그는 예술적 근성으로 무장한 인디 예술가의 은유로 작용하고, 이브는 그를 현실 세상으로 이끄는 현실성으로 자리한다. 이 대목에서 지극한 외로움 탓에 아담이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을 눈치 챈 이브가 그에게 “그 시간에 건설적인 걸 해봐! 자연과 교감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라며 타박하지만 “사랑 하난 잘 했네”라며 힘을 북돋는 것은, 소통이 없는 아담의 예술가로서의 본능과 이브로 상징되는 현실에 대면한 실재적 자아의 밀고 당기기가 실행되며 타협점 위의 예술을 실행함과 같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레코드의 회전에 맞추어 폐곡선의 피곤으로 입장한다. 그러므로 오프닝 시퀀스에 얼핏 보였던 피곤함은 뱀파이어들이 ‘피’를 찾아 어슬렁 돌아다니는 것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감이 아니라, 아담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갈망에 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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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음악에 빠져드는 아담 | ||
음악에 대한 집착에 시달리는 아담은 청각이 전달하는 영혼의 소통을 오로지 폐쇄된 공간에서 홀로 사유하길 갈망한다. 소통 없는 소통.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자기표현은 타인의 인정을 지향하기에 그는 또한 역시 인간의 인정을 바란다. 그러므로 그는 과거에 슈베르트와 음악을 교류했고, 수많은 과학자들과 동경적인 시선을 나눴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아담이 가진 수백 년의 예술적 깊이를 이해하기에 대부분의 인간들은 하찮기 그지없다. 아담이 인간들을 ‘좀비’라고 부르는 까닭은 일반인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적 감성에 대한 스스로 고고함의 발현이다. 따라서 좀비와 구별되는 뱀파이어의 형상은 ‘슈베르트’, ‘셰익스피어’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가려는 예술가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뱀파이어가 쫓아가는 ‘피’는 예술가에게 있어 대중의 관심 정도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뱀파이어에게, 예술가에게 쾌락이기도 하고 필수적 요소이기도한 추구로써 다가온다. 따라서 스스로 예술적 성취를 추구하는 아담에게 ‘피’는 단지 생존을 위해 섭취하는 필수 요소에 불과했지만,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이브의 동생 애바에게 피는 생존보다도 쾌락을 위해 섭취되는, 파토스의 영역에 속한 마약과도 같았다. 이러한 피에 대한 관점차이는 아담에게 애바에 대한 근원적 거부를 심었다. 실제로 스크린 속에서 시종일관 섹슈얼리티를 유지하는 애바의 모습은 예술적 깊이보단 비주얼 요소로 승부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 매혹된 ‘팬’들은 온몸의 피를 빼앗겨 예술을 느끼지 못하는 빈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생존과 쾌락을 위한 그녀의 모습과 추구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그녀는 배척되고 거부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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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남성을 유혹하는 ‘에바’ | ||
애바에 의해 팬과의 관계를 차단당하고만 아담은 이제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피’ 조차도 얻지 못한다. 과거의 삶에 매몰되어 있는 아담은 현재를 경멸함으로 바로 앞에 눈을 뜬 미래조차 꿈꾸지 못한다. 정확히도 인디 예술가의 삶을 전유하고 있는 이 모습,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감독 짐 자무시는 모로코로 떠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통해 인디 예술가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한다.
미국 디트로이트로 상징되는 미국의 락 음악은 디트로이트의 상망(喪亡)처럼 뒷골목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정확히 아담의 모습처럼 위대한 과거의 예술가들을 꿈꿨기에 현실의 외면을 불러왔다. 이렇듯 과거에만 집중하여 발전치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 대해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나의 현재라는 것은 한 발을 과거에 두고 있고, 다른 한 발을 미래에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시간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한 덩어리로 구성 되어있으므로 오로지 과거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미래’라는 생존을 꿈꿀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과거의 고장인 디트로이트를 떠나, 현재의 모로코로 떠나는 아담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인디 예술가의 발전적 걸음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모로코에서 그의 삶도 순탄치는 않다. 아직도 피에 대한 갈증이 남아있다. 그곳에 거주하며 아담과 이브에게 의지가 되었던 과거의 예술가 뱀파이어 말로우도 숨을 거두고 만다. 과거에 매몰된 예술가들이 죽어가는 그 공간. 서양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프리카 인들의 문화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갈증어린 아담은 그곳 모로코의 악기를 손에 쥐고, 레바논 출신 가수의 노래에 황홀히 빠져들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타 문화와의 교류를 시도한다. 이렇듯 스스로의 우월성에서 내려옴은 그를 조금은 폐곡선의 피곤에서 벗어나게 한다. 따라서 엔딩 씬에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브가 “저들의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뱀파이어가 될 만큼만 깨물어 주자.”고 말하는 것은 인디 예술가의 대중을 향한 걸음을 의미하며 대중들의 기억 속에 뱀파이어 마냥 영원히 남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접근은 생존의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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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피에 굶주린 아담과 이브 |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사랑이 일방향적이라면 그 관계는 사랑이라 규정되지 못한다. 사랑의 전제는 분명 타인과의 관계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홀로 고고한 예술혼의 발현보다, 대중적 인정과의 타협이 ‘영원 불멸’히 남을 예술의 정초가 될 것이란 ‘인디 영화 감독’ 짐 자무시의 충고로 전달된다. 이 충고가 과연 과거에 매몰되어버린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가닿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충고를 들은 여러 예술인들이 시도하는, ‘예술은 어려워!’라고 외치는 수많은 관객, 관중들 앞에서 시도할 앞으로의 예술은 왠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