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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집 나가면 개고생

   
▲ ⓒ 9/7 김명진

한참 소설을 창작하던 시절, 나는 김영하 작가를 ‘작가와의 만남’에서 만났다. 교수님 덕분에 어렵지 않게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그때 세상에 물들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랬던 그의 SNS에 갑자기 세상의 물이 스며든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연희동 개나리언덕 살리기’이었다. 간단하게 사건을 설명하자면, 주민들이 개나리언덕이라 부르는 궁동산이 연립주택을 짓기 위해 파헤쳐 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절대 보전 지역인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되어 있던 개나리언덕이 2013년 3등급으로 완화되어 개발이 가능해졌고 개발 허가까지 떨어지자 그 일대를 갈아엎고 공사에 착수 중이었다. 작가의 집은 공사장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의 SNS글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나도 어느새 서명을 하고 기사를 읽는 등 ‘연희동 개나리언덕’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연희동이 우리 집에서 버스로 겨우 1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당장 그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연희동 개나리언덕으로 향하는 길목, 고즈넉하면서 평화로운 동네가 펼쳐졌다. 내가 생각했던 ‘투쟁’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치 부산으로 따지자면 옛날에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던 서대신동의 모습 같았다. 아, 서대신동을 한번 가본 것밖에 없지만 말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연희동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 불린다고 했다. 서연중학교 뒤로 보이는 좁은 오르막길이 공사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맴돌았다. 전봇대에 묶인 ‘이곳으로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다.’라고 쓰인 플랜카드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숨을 조금 헥헥거리며 올라가면 황폐해진 그곳이 나타났다. 더불어 김영하 작가와 그를 만나기 위해 온 독자들, 연희동 개나리언덕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어 달려온 여러 사람들이 보였다. 작가가 안내해준 곳은 아마 그의 집 앞마당인 거 같았다. 어떤 기사에서 ‘절벽 위에 있는 집 같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정말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언덕은 보였지만 과거 사람들이 울창한 나무가 있어 자주 찾았다던 ‘개나리언덕’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포크레인과 트럭들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해가 스멀스멀 내려가는 시간에도 이곳은 분주했다. 건물을 쌓아올리기 위한 자재 옮기기가 한창이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대여섯 명의 사람이 보였다. 모두 작가의 팬이면서 동시에 공통 관심사는 공사현장이었다. 다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는 이 광경에 당황한 나에게 ‘적응을 하려면 잠시 이곳을 둘러봐야 한다.’며 이야기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 ⓒ 김명진

그곳을 설명하는 건 여기서 그만하겠다. 어쩌면 그곳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장소들이 수도 없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떨결에 인터뷰에도 응했다. 나는 이곳의 부당함을 듣고 응원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물건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서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정말이었다. 나는 선목격 후설명을 듣고서야 개나리언덕의 억울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문득문득 보이는 개나리언덕의 흔적은 이전의 이곳이 얼마나 평화로웠을지 알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그날 그곳에서 목격한 김영하 작가는 정치적이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았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람다운’이었다. 자신의 물건을 지키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다운 모습. 이 말이 어떤 이의 귀에는 그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으로 분개하고 항의하고 있다는 뜻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기 위한 옳지 못한 이들에 맞서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지키지 못한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더한 불이익을 받을까봐 참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가 봐도 그게 틀린 거고 이게 옳은 것인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 점에서 나는 김영하 작가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는 게, 처음에는 참으려 했는데 무분별하게 자연이 파괴되는 이곳을 보며 이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부산보다 비싼 서울 물가를 체감한 나는 현실에 치여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를 놓고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잠시 고향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고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때 이곳을 들린 것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를 느끼고 있을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그와 큰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이 사건에 무지했으며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고 가는 것은 개나리언덕만큼 넓어진 마음이었다. 내려가는 길, 공사현장 바로 밑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이곳에서 꽃피울 수 있길 응원해본다.

* 현재 서명운동이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또 관심있으신 분들은 김영하작가의 SNS를 방문하거나 기사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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