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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베테랑>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베테랑>(2015, 류승완)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그랬어요.”
영화 <베를린>에 나오는 수많은 대사, 수많은 문장 가운데에서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한 게 어떤 거냐 묻는다면 난 주저 않고 이 대사를 꼽겠다. ‘문제’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나오는 이 대사에서 문제를 삼지 않으려는 남자와 문제를 삼는 남자 간의 자존심 대결. 더불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건네주는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뭐든지 돈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현상 고발이 이 영화의 정체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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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베테랑>은 사회 시스템 내에서 완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돈’에 의해 지극히도 찌그러져버린 ‘인간’을 소묘한다. 재벌 3세 조태오에게 ‘돈’이란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이며, 그와 같은 위치의 돈을 보고 허리를 숙이는 ‘인간’들은 그에게 있어서 하찮은 아래 계급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서 그를 찾아온 ‘배 기사’는 단순한 회사 이미지를 방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맥락으로 “450만원? 어이가 없어요.”하는 그의 대사는 역시 450만원이란 돈에 한 사람의 삶이 걸린 어마어마한 무게가 무색하게도 그 정도의 금액은 단순한 폭력 게임의 코인만도 못한 정도로 여겨진다.
반면 조태오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형사 서도철은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돈’에 찌그러지지 않는다. 올라간 전세 값에도 의연하고, 최상무에게서 건네지는 돈의 유혹에도 좀처럼 넘어가질 않는다. 물론 ‘승진’에 목을 매는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조차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여겨진다. 그런 그에게 더욱 중요한 건 바로 ‘가오’다. 경찰의 가오는 몇천 만원이나 명품 백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는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공고한 위치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 가오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정의’로 자리한다.
이러한 두 남자는 각자의 선(善)을 가지고 있다. 조태오가 가지고 있는 선은 관념적으로는 거부되지만 실질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선이고, 서도철이 가지고 있는 선은 관념적 선이다. 이 둘의 충돌은 스크린 밖에서 활발히 작동하는 사회 행태에 대한 총체적인 재고를 환기한다.
조태오에게 비(非)재벌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조태오는 그들을 찌그러진 인간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돈 앞에서 언제나 한 없이 비굴해지고 작아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태오에게 스스로의 선을 완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함께 격투기 연습을 하다가 경호원의 다리를 서슴없이 부러뜨리는 것과 애완견을 골프채로 내리찍어 죽이는 것은 그에게 있어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사람이 개, 장난감과 같아진 형국. 그리고 이 형국은 현실 사회에서도 ‘악(惡)’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자본주의 권력의 꼭대기에 위치하며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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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경찰서에서 조사 받는 최상무 | ||
<베테랑>에서는 위와 같은 현실을 두 집단, 경찰 집단과 재벌 집단의 공존을 통해서 밝힌다. 재벌의 행태가 합법적이고 사회 공헌적이기만 하다면 그 둘의 공존이 당연하게 보이겠지만, 시각화 되어있는 그들의 비합법적 행태가 사회 곳곳에 국지적으로 발생하고 있기에 경찰과의 공생은 아이러니하다. 법을 지키고, 합리성을 지키는 민중의 지팡이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협력관계. 이들의 모습은 삼각형의 권력 구조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이 구조는 권력의 꼭짓점으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은 구성원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고 유기적으로 조율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배타적이어야 할 이 재벌과 경찰의 삼각형이 ‘자본’이라는 매개로 겹쳐지면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자본을 소유한 재벌은 언제나 상위 계급을 구성하고, 법을 지키는 경찰은 자본의 아래에서 ‘개’가 된다.
모든 집단주의, 국가주의는 효율적인 작동이 가능하지만, 그 집단의 의사에 반하는 인물이 등장하면 언제나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베테랑>에서는 서도철 형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러므로 재벌 조태오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는 그를 경찰 집단은 수뇌부에서부터 압력을 행사한다. 집단주의의 단점은 집단의 이득과 개인의 이득을 중첩시키는 것에 있다. 즉 집단이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라는 인식, 그것은 언제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이기적인 행태는 욕을 먹고, 자기희생적인 행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구조. 물론 자기희생은 숭고하지만, 합리적인 선에서 어긋나는 것도 지탄 받지 않고 칭찬받는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조태오의 죄를 모조리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최상무가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건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이, 그 집단의 불합리한 선에 따라 흔들릴 필요는 없다. 그냥 올곧은 자신의 선을 따라 가는 것이 맞다. 영화 속에서 관객들이 서도철 형사와 그의 팀원들을 ‘선(善)’으로 보는 까닭도 경찰로서 그들만의 신념을 가지고 올곧은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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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선-악, 인간중심주의-자본만능주의의 싸움. 이것은 현실 사회 내에서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가 되고 마는 대결이지만, 스크린 속의 세계에서는 그 사회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점철된다. 주고받는 주먹에 치고받는 난타전. 둥글게 모여서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 결국 그 서도철은 조태오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는 데에 성공하지만, 주먹다툼의 승자는 조태오라는 사실과 온몸에 피칠갑을 한 서도철의 모습을 통해서 정의가 승리를 하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을 통한 정의의 공론화가 필요하고 그 과정 가운데에 상처와 상흔이 동반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재판에 넘겨진 조태오와 최상무의 말로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한 만화 캐릭터의 외침과도 같은 합리성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기분 좋게 극장 문을 나오는 관객들의 마음 한 켠에는 왠지 모를 찝찝함이 공존한다. 극장 밖의 현실 속에서 결국 감옥에 간 악(惡)이 온갖 명분을 다 들어가며 금방 사회로 돌아오고, 다시금 권력 구조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이런 영화의 통쾌에 들뜬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그 동안 ‘문제 삼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베테랑>을 액션 영화로 규정하는 건 그 안에 등장하는 폭력성에 의함이기도 하지만, 왠지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행동이 보였기 때문인 것만 같다. 그리고 극장에서 나서는 나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 사회에 ‘액션’이 넘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