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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산 “숨은 조각 찾기”

[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허산의 작품은 얼핏 보면 평범한 일상 공간처럼 보인다. 텅 빈 공간에 바닥이 기울어져 있거나, 벽 주변에 부서진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 그 자체가 작품이 된다. 또한 공간 벽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공구를 놓는다거나, 기둥 속에서 유물이 발굴된 것처럼 도자기가 반쯤 드러나 있는 작품을 통해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일상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게 한다.

“전시장 앞에 특이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공사 현장처럼 벽도 부분 무너져 있고, 주변에 공구들도 널려 있고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때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어요. 그러더니 헬멧을 쓴 사람이 제게 다가와서 비키라고 하더군요. 작품이 아니라 정말 공사 현장이었던 거예요.”

작가는 자신이 조각가로서 작품과 비작품을 구별하지 못한 당황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건물과 건물의 건축과정, 그리고 그 구조에 개입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곧 작가가 경험한 에피소드는 작품 속에 반영된 셈인데, 작가다운 관찰력과 그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에 미소가 지어졌다. 허산의 작품은 일상 속에서 찾아야 하는 ‘찾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눈앞에 있어도 작품인 줄 모르다가 이것이 작품이라고 깨닫는 순간 주변이 달리 보인다. 일상이 특별해지는 찰나, 그 변화의 지점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조각’이라고 부르는 범주에 적합하지 않다. 공간을 점유하는 조각이 아닌, 공간에 섞여 들어가는 조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조각 같지 않은 조각’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 특히 건물에 대한 지각의 인식을 전환시킨다. 다시 말해 허산의 작업은 일상의 관습에 묻힌 공간 구조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며, 이는 궁극적으로 관람자의 지각에 대한 미적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필자가 주목한 것은 허산의 작업이 공간적 사건을 통한 상상의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서진 벽과 구멍 난 기둥, 무너진 잔해와 파편들은 언캐니(uncanny)한 느낌을 주는데, 묘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밀려오는 것에서 출발하게 되는 관람자의 상상적 개입은 바로 작가가 구축한 연출된 공간에 대한 추리 과정과도 같다. 그것은 우선 기존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어 그것에 대한 의문과 숨겨진 것에 대한 상상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위장 사건(pseudo-event)을 통해 그것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인지, 작가의 기억인지, 그렇다면 이 공간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던 공간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면서 관람자는 몸을 움직여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여기서 벽이나 기둥에 박힌 오브제들은 내러티브의 플롯을 위한 구체적 증거물이 되고, 마치 고고학의 발굴 작업처럼 그 지점에 연관된 역사적 스토리 혹은 탐정 소설에서 읽는 개인적 사연을 연상케 한다. 이처럼 허산의 언어, 혹은 미적 전략은 적게 말하고 크게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최소한의 개입으로 전체 구조를 읽게 함으로써 미스 반 데어 로에의 ‘Less is More’를 연상시킨다.

필자는 허산의 작업을 관통하는 예술의 근본이념에 관해 되묻고 싶다. 예술에서 미(美)의 기준은 무엇인가? 남성용 소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이란 제목을 붙인 뒤샹의 작품 이후 예술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이상하고 낯선 것이 미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미와 추의 명확한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습적인가를 실감한다. 허산이 조각가로서 미에 대해 제시한 새로운 점은 부서진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완벽하고 우아한 화이트 큐브의 공간을 아름답게 보지 않고, 오히려 적막하고 숨 막히는 공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곳에 의도적으로 잡음을 일으키고 흐트러뜨린다. 작가의 표현대로, ‘적막 속의 울림’ 이자, ‘숨 막히는 공간에 숨을 뚫는’ 작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허산의 작품은 계획과 우연이 교차하는, 혹은 ‘계획된 우연’이 난무하는 삶의 임의적 방식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전시전경 [사진제공=일주선화갤러리]
   
▲ 전시전경 [사진제공=일주선화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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