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선우]모리셔스의 수도 포트루이스(Port Louis)에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스쿠터는 반납한지 좀 됐기 때문에 처음으로 나 홀로 버스타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래봐야 모리셔스는 작은 섬이었고, 거의 모든 버스는 으레 포트루이스로 향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도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그랑베이(Grand Baie)에서 포트루이스 까지는 약 한 시간. 현지 버스의 매력은 사람구경에 있다.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은 신사가 타는가 하면 강렬한 색깔의 인도 전통 복장에 이마에 붉은 점까지 찍고 타는 여인들도 있다. 이들은 버스 차장과 이미 잘 아는 사이인지 서로 정겹게 안부 인사를 나눈다. 이 작은 섬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절대로 누군가에게 원한 살 짓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 |
||
지난 번 벤과 세냐와 함께 잠깐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들른 일 이외에 본격적으로 수도를 둘러보겠다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수도치곤 우리나라의 중소도시 같은 느낌이고, 볼 만한 것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이 곳에는 도도새의 뼈가 전시되어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굉장히 아담한 규모의 건물이었고 앞뜰에는 도도새 모형들이 박물관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도난 방지를 위해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었는데, 마치 잡혀온 짐승처럼 처량해 보였다.
![]() |
||
박물관은 모리셔스 고유의 식생들을 소개해고 전시해 놓은 전형적인 자연사 박물관이었는데, 그 수많은 박제된 짐승들의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도도새였다. ‘The world of DODO’라는, 도도새를 위한 특별 전시관을 아예 개설해 놓고 있었는데, 이미 2005년에 도도새 리서치 프로그램을 통해 도도새를 비롯해 멸종된 생물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시도했고, 거기서 찾은 결과물들을 자랑스럽게 전시해 놓았다. 그들은 도도새둘이 대량으로 묻힌 거대한 무덤을 발견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찾아낸 것들은 도도새의 뼈로 추정되는 검게 변한 일련의 뼈다귀들이었다.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1904년에 루이스라는 미용사(!)가 온전한 도도새 유골을 박물관에 기증했고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온전한 도도새의 해골이 그것이라고 한다. 만약 정말로 그가 기증한 도도새의 뼈가 진품이라면 며칠이나 걸려가며 땅을 파냈던 과학자들 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성과는 뼈다귀의 DNA 분석 결과 도도새라는 종(種)은 거대 비둘기과(Giant pigeon)라는 것을 밝혀낸 것뿐이었다. 그 외에 재미있는 것은 도도새의 맛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도도새를 ’Walgh-vogel’ 즉, ‘구역질나는 새’라고 불렀는데 그 정도로 먹기에 질기고 맛이 없었다는 것. 게다가 진귀한 동물로 분류되어 17세기에는 프라하, 암스테르담 심지어 나가사키까지 귀족을 위한 진상품으로 전해졌고 거기에 대한 기록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남아있다니 오히려 박물관의 뼈다귀나 과학자들의 연구보다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
||
이 조각배 같은 섬에 살았던 도도새처럼, 사람들은 결국 어떤 작은 섬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살아갈수록 그렇게 되는 것이다. 길을 잃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까마득히 두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삶은 작은 박물관에 박제되는 것이다.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문장 마따나 삶이란 인간에게 너무나도 거세고 무자비하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어쩌면 그 작은 섬에서 버티어 내는 것조차 힘겨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작은 섬에 박제가 되느니 난파되어 숭고히 산산 조각 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되뇌지만 가끔은, 아니 종종 그럴 용기조차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끼곤 한다.
학부시절 나를 가르쳤던 한 선생님께서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것은 ‘숭고함’이었다. 숭고함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으며, 예술을 넘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내게 있어 ‘숭고’란 아직은 희미한 달무리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 길 위에서 끝없이 떠돌 수만 있다면 언젠가 조금은 가까워 질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 |
||
| ▲ 도도새 드로잉, 종이에 먹, 2015, 김선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