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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나도 이야기로 기억되는 사람을 꿈꾼다 <빅 피쉬>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빅 피쉬>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빅 피쉬>(팀 버튼, 200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빅 피쉬>의 오프닝. 한 남성이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과거는 그의 아들이 태어나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아주 큰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 아들이 태어나던 그 날,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는 애쉬톤 강에서 가장 똑똑하고 강한 메기가 반지를 미끼로 한 자신의 낚싯대에 잡혀버렸다는 이야기. 누가 봐도 허풍스런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스스로 발설하는 과거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있다. 그러므로 그는 수십 년째 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마치 이 이야기가 자신의 인생 전부인냥.

늙어버린 한 인물의 인생을 조망할 때에 언제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조금은 신비한 압도감에 휩싸인다. 그것은 과거라는 것이 지닌 추상성 탓일 수도, 언젠간 늙어버릴 내 모습과 언젠간 과거가 되어버릴 현재에 대한 아쉬움 탓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이걸 ‘판타지’라고 하기도, ‘추억 팔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확실한건, 누군가에 의해서 조망되는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은 빗물처럼 잡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젊고 싱싱했던 육체의 흔적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것과 그에 따라 찬란했던 내 과거가 타인들에게 무시 받고 거짓으로 매도되어 버리는 일상적 흐름. 그리고 그에 따른 안타까움의 한숨이다.

   
▲ 이미비 출처: 네이버 영화

<빅 피쉬>의 에드워드 블룸은 이미 늙어버린, 죽어가는 남자다. 그는 특유의 사교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그의 아들 윌은 수십 년째 끊임없이 들어오는 그의 모험에 관한 허풍에 지쳐버렸다. 그러므로 에드워드가 자랑스레 발설하는 과거에 대해 윌은 “거짓말 하지 마세요!”하며 늙은 에드워드의 인생에 대해 총체적인 부정을 시도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여졌던 것처럼,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지속했던 에드워드에게 이러한 윌의 외침은 가족의 결속에 균열을 불러왔으며, 더 이상 아버지의 위엄에 귀속되지 않는 다 커버린 아들의 모습을 소묘한다.

이 과정에서 에드워드의 과거 모험은 그가 가족들에게 전달해주는 이야기에서 스크린 속의 재현으로 탈바꿈하여 보여진다. 이렇게 관객들 눈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광경에도 불구하고, 윌은 그 이야기들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집 안 한 구석에 자리한 창고에서 발견한 과거의 증거를 쫓아, 에드워드의 과거에서 진실과 과거를 가려내는 추적을 시작한다.

사실 윌은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의 바깥으로 돌기만 했던 과거에 대해 늘 의심해왔다. 그 의심은 소위 말하는 ‘두 집 살림’, 어머니 산드라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변질을 향한다. 이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가장에게 느끼는 배신감이었기에, 윌은 에드워드의 인생을 부정할 수밖엔 없었으며 그의 허풍을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의심되는 과거에 대한 증거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행위의 기반이 되는 심리는 어느 쪽의 진실이든 확신을 갖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그 황당한 허풍이 진실이든, 치부를 감추기 위한 과장이든.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마녀의 유리 눈을 통해 자신이 죽는 모습을 보았다는 그는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자신은 때가 되기 전엔 죽지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험을 꿈꾼다. ‘성장병’에 걸려서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하던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너무 작다는 생각에 마을에 숨어 살던 거대한 거인과 모험을 떠난다. 그 모험의 과정은 행복한 ‘유령 마을’에 정착할 뻔한 이야기,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산드라와 사랑에 빠지고 만 송이의 황수선화로 프로포즈한 이야기부터, 한국 전쟁에 참전해서 군사 작전을 수행한 일, 샴 쌍둥이 가수와 함께 전쟁 지역을 빠져나와 미국으로 돌아온 일 등의 황당한 일들뿐이다. 어찌보면 아들 윌이 이 이야기들을 믿지 못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이 이야기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아버지의 허풍일 것이라 확신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게 윌은 에드워드의 흔적을 따라 그의 기억이 서려있는 ‘유령 마을’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아버지의 불륜 상대로 예상되는 ‘제니’를 만나 과거의 진실을 듣는다. 그 진실은 윌이 생각했던 형태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 진실 속에는 바깥으로 나돌면서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한 마을을 구한 영웅과도 같은 에드워드의 모습이 있었고,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신의를 지킨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굉장히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그 남자는 이 사실이 쑥스러웠는지 아니면 굳이 자랑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 허풍스러운 이야기로 자신의 본모습을 감췄다. 따라서 그는 자랑스러움보단 유쾌한 남자로 기억되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모든 오해가 풀린 윌은 아버지 에드워드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후였고, 윌은 아버지의 곁에 남아 마지막을 지킨다. 말없이 침대 맡에 앉아있는 그에게 주치의 ‘베넷’이 다가와 에드워드가 자랑스레 말하고 다니던 영화 오프닝의 ‘빅 피쉬’를 낚은 이야기에 대한 진실을 들려준다. ‘출산과정을 출장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아버지의 미안함이 만든 환상적인 이야기’, 이는 일에 치여 살면서 가족에게 무심했던 아버지로 기억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 에드워드의 신념과 소망이 담겨있는 이야기였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모든 오해와 미움들이 해소된 윌은 에드워드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이내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아버지가 마녀의 눈에서 보았던 죽음의 모습을 일러준다. 그 죽음의 모습은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숨을 헐떡이는 노인의 현실 속 마지막 모습과는 다른, 에드워드가 수십 년 동안 말해왔던 환상적인 이야기의 결말처럼 아름답고 흐뭇했다. 슬픔과 애통함 따위는 존재치 않는 환영받는 마지막, 그렇게 그는 빅 피쉬를 따라 영원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에 옛 세대와 현 세대가 화해하고 맞잡은 손은 역사의 시작 순간부터 갈등이 존재했던 세대 간의 인정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모습의 전제는 무겁고 강압적인 전 세대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자상하고 유쾌한 어른의 모습이었고, 현 세대의 젊은이는 그러한 어른의 모습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존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엔딩 씬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로 영원히 남을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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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내 곁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과 언젠간 아버지가 될 내 모습, 노년에 죽어가는 내 모습까지 생각해봤다. 젊은 내 시선으론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조금은 천천히 늙고 싶다는 옛 희망이 보람차게 늙고 싶다는 소원으로 변해버렸다. <빅 피쉬>의 감독 팀 버튼은 이 영화를 통해 ‘영원히 이야기로 남고 싶은’ 스스로의 모습을 ‘빅 피쉬’에 이입해 구현해 낸 것은 아닐까? 언젠간 나도 남들에게 이야기로 기억되는 사람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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