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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박민서]
기쁨의 순간은 짧고 슬픔은 영원할 것만 같다.
영화는 아주 담백하고 간결하다. 자극적이고 구질구질한 가족사를 다룬 식상한 소재라는 것이 느껴지기 힘들만큼, 그 몫을 각 장면들의 구성과 반복되는 3번의 되감기로 이 영화만의 특별함을 이끌어냈다.
영화의 제목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는 아일랜드식 ‘건배’에서 따온 문구이다. 제대로된 그들의 ‘건배’는 ‘May You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아마도 당신은 30분간 천국에 있을 것이다. 악마가 당신의 죽음을 알기 전에)’이다. 훗날이 악마가 데려가는 지옥일지라도 술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천국에 온 듯 즐기자. 라는 의미이지만 시드니 루멧의 영화는 조금 다른의미로 제목을 선정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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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와 사랑을 나눈 앤디 | ||
격렬한 베드신으로 영화는 처음을 알린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맡은 역할인 앤디는 아내 지나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 이런 말을 한다. ‘아,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어’ 환희와 행복에 가득찬 듯한 앤디의 핑크빛 얼굴은 영화가 끝난 지금도 생각이 날 만큼 생생하다. 영화의 처음. 앤디는 지나와 함께 천국에 있었다. 행복으로 가득했던 앤디의 미소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우스운 콧수염과 어색한 가발. 보기 힘든 선글라스로 변장을 한 행크(에단 호크)의 어설픈 강도질 장면이 뒤를 잇는다. 행크와 강도질을 하기로한 덱스는 보석가게를 여는 나이든 여주인을 뒤따라 들어가서는 어설프게 여주인을 위협하다가 결국 여주인의 힘 없는 총질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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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스운 분장의 행크(우)와 덱스(좌) | ||
여기서부터 영화는 시작이었다.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행크와 덱스의 강도질 장면을 중심에 두고 4번의 되감기로 그 흐름을 연출했다. 4번의 되감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각각의 되감기별로 ‘강도질’이라는 사건과 연관된 각각의 인물들의 관점에서 사건을 다시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 번째 되감기는 강도질을 행하게 된 행크의 입장에서 사건 3일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강도질을 하는 날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되감기가 끝나는데, 또 한번 이 영화가 간결했던 것은 카메라의 움직임이었다. 사건 속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표정을 주-욱 끌어당기는 듯한 줌인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심리를 전달해준다. 영화의 시작에서 보여주었던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행복으로 가득 차 있던 얼굴은 첫 번째 되감기에서 줌인되는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차 버린 얼굴로 탈바꿈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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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디(좌)와 행크(우) | ||
두 번째 되감기는 강도질을 계획하여 동생 행크를 동참하게 한 앤디의 관점에서 강도질 4일전으로 감겨진다. 강도질 하려는 대상이 부모님의 보석상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계획을 세운 앤디가 돈 없고 무시당하는 동생 행크에게 강도질 동참을 권하고, 동생 행크는 이를 받아들인 후 친구 덱스에게 이를 함께하자 말한다. 하지만 이는 엉망이 되어버리고만다. 때 마침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간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고 어머니 혼자 보석상을 열었던 날이었고, 덱스는 어설픈 강도질로 어머니가 감춰둔 총을 꺼내 자신을 쏘도록 허락했으며, 그에 맞서 어머니를 총으로 쏴버린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았고, 앤디와 행크의 어머니는 치명적인 총상에 병원으로 실려간다. 마냥 애처가인 줄만 알았던 영화의 첫 장면 속 앤디와는 다르게, 두 번째 되감기에서는 앤디의 잘못된 면모들을 많이 보여준다. 돈 때문에 부모님의 보석상을 훔치려하고 주기적으로 가는 듯한 어떤 오피스텔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약을 맞는다. 각 되감기들은 인물들의 상황 뿐만 아니라 성격과 성향과 머릿 속 생각까지 적나라하게 들춰준다. 놀란 감독의 ‘메멘토’가 얼핏 떠오르긴 했지만 그보다는 보다 더 담백한 느낌이다. 이 영화는 더 직설적이고 담담하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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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보석상에 일이 생긴것을 알게 된 찰스 | ||
세 번째 되감기는 아버지 찰스의 입장으로, 행크의 강도질 하루 전날로 돌아간다.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이 자리를 비웠던 사이 아내는 이미 심각한 총상으로 병원에 실려가야했고, 언제 깨어날지 불분명하다는 의사에 말에 머리를 감싸는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범인을 잡고싶다는 생각으로 24시간을 가득 채워도 모자랐지만, 사건을 맡았던 형사들은 하나 둘 사건을 종결시키기 바쁘고, 지접 범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알게된다. 자신의 아들들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들들이 그들의 어머니를 총으로 쏴 의식불명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 쓰여진 되감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각각의 되감이게서 보여주는 앤디와 행크와 찰스의 입장들을 관객들에게 이해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담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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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장례식 후 대화하는 앤디(좌)와 찰스(우) | ||
마지막 되감기는 영화의 도입부. 강도질을 하는 날로 다시 돌아간다. 앞서 보여줬던 3번의 되감기를 정리하는 듯 어느 누구의 입장에서도 서지 않은채 판단을 관객들에게 맡긴다. 엉망이 되어버린 행크와 앤디의 용납될 수 없는 강도질 계획에 두 형제는 지옥의 끝을 맛보기라도 하려는듯, 최선을 다해 그 끝자락으로 달려간다. 아버지 또한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의 계획을 세우게 되고 총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미련한 아들을 찾아가, 지옥의 문턱 앞에 선 아들을 망설임 없이 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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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찰스 | ||
영화 속 인물들이 자처했던 그 두서없던 일들의 막은 내려졌다. 그들이 벌인 그 미련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누구를 위한 일들이었는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다. 두 형제가 계획했던 강도질의 대상이 꼭 부모님의 보석상이여만 했는지, 일이 틀어진 후에 두 형제는 꼭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가며 악마의 품 속으로 뛰어들어가야만 했는지, 미련한 아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반드시 아들을 죽여야만 했는지. 이 모든 일들의 앞과 뒤는 관객들의 몫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죽이고 눈부신 빛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 아버지가 30분의 천국 속으로 간 것인지, 그 30분을 지나 빛의 끝자락. 악마의 품 속으로 간 것인지 조차 알기 힘들다. 거기에 더해 영화가 선사한 4번의 되감기 또한 무엇을 위해서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 속 4번의 되감기는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무언가’를 담담하게 뱉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수도, 찰스의 난장판이 되어버린 가정이 결국 도달하게 된 지옥에 가기 전, 30분만큼은 천국에 있었을 것이라는 묵직한 암시일 수도 있다. 그 의도가 어찌되었든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담담한 4번의 되감기는 직설적인 영화의 화법에 그 만의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미 제목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의미를 전달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영화를 이루고 있는 4번의 되감기가 안고있는 미학이 그를 조금 더 빛내주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