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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아이젠버그, 차가움에서 따뜻함까지

   
▲ ⓒ cdn.indiewire.com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필자가 처음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를 본 것은 데이빗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연기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그의 연기력이나 그만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표정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흥미로운 소재와 실제 인물에 대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영화임에도 배우에 대한 이목보다는 ‘마크 주커버그’라는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더욱 강하게 와닿았었다. 그 이전과 이후에도 그의 여러 작품이 있었으나, 필자는 오늘 딱 3편의 영화만으로 배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 ⓒ indiewire.com

 어느 누구나 배우에게 푹 빠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는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에서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기한 사이먼 제임스와 제임스 사이먼, 2명의 상극된 캐릭터의 매력이 그 계기가 되어주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분신>이 원작인 이 영화는 절제된 듯한 구도 속에 색감만으로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준다. 존재의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어두운 배경과 하나가 되도록 경계를 흐려버려 고전적이지만 동시에 세련된 미장센을 연출한다. 또한,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마주한 분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귀에 파고드는 소음을 극대화시키던 음향 효과들은 곧 부서질 듯 나약하고 소심한 사이먼 제임스의 내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충실한 표현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영상의 매 순간마다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장면 하나하나를 캡쳐해 놓아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을 느낄 정도였으니 뇌리에 박힐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 ⓒ twitchfilm.com

 하지만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 미장센과 배우의 얼굴에 드리우는 그림자, 표정 속 섬세한 근육 움직임마저 심장을 울리는 연기력의 조화였다. 정반대 성향의 두 캐릭터를 연기할 때의 제시 아이젠버그는 상반되는 모습을 표현해내기 위해 말 더듬는 것이나 빠른 말투뿐만이 아닌 눈동자의 동공 크기마저 달라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걸음걸이의 보폭과 손짓의 속도 만으로도 분위기가 180도 변하는 장면들은 잔잔하지만 동시에 빠른 변화들을 보여준다. 그 변화들 속 가장 강렬히 다가온 부분은 바로 ‘사랑하는 여자’의 존재로부터였다. 사랑하는 그녀, 한나(미아 와시코브스카)를 주시하는 사이먼과 행동하는 제임스, 그 사이의 간극은 오묘하게 그려진다. 사이먼의 외로움과 닮아있는 한나는 자해를 한 혈로 그린 그림들을 찢어 버리는 여자였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라 사이먼이 그 그림들을 주워 모아 책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내는 부분이 가장 큰 간극이었다. 외로움은 이를 겪어본 사람만이 그 감정의 조각들을 그림으로 간직한다, 그 상처마저도 안아주고 싶어지기 때문일까. 제임스만이 상황을 휘두르고 컨트롤하는 듯 보이지만 뒤에 가려진 사이먼의 마음이, 그 작은 행동이 더욱 강하게 마음을 움직인다는 그 간극은 의미가 크다. 자신의 존재가 마치 투명인간이어서 손을 뻗으면 그냥 그렇게 뚫려버릴 것만 같다던 사이먼의 말처럼, 자신의 존재가 특별한 것처럼 과시해 보여주던 분신인 제임스마저도 그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도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싶었어.” 마지막 사이먼의 대사가 주는 오묘한 감정은 원작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부재를 느끼는 사람만이 그 존재의 의미를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이해할 수 있음을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는 깊이 있게 보여주었다.

   
▲ ⓒ americanultrathemovie.com

 최근 B급 분위기의 일명 ‘병맛’ 액션영화로 소개된 <아메리칸 울트라> 또한 제시 아이젠버그만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액션영화가 아닌 ‘병맛 로맨틱 코미디’로 표현하고 싶다. 시놉시스에 의존하자면 이 영화는 액션영화가 되어야겠지만, 주인공 마이크를 연기한제시 아이젠버그와 그리고 여주인 피비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 두 배우의 감정연기를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로맨스이며 동시에 코미디일 수 밖에 없다. 특히나 대망의 마트씬으로 클라이막스를 지나 영화가 끝나갈 무렵, 피투성이의 연인이 밖으로 걸어 나와 경찰차들의 스팟라이트를 받으며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장르를 로코(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해야 한다는 확신을 줄 정도였다. 다소 진부하고 알 법한 스토리임에도 필자가 이 영화를 눈여겨본 이유는 오로지 제시 아이젠버그가 캐릭터를 표현하는 연기력이었다. 사랑에 빠져있지만 자신의 자아를 알지 못해 겁에 질려 있는 그의 모습은 영화 <더블:달콤한 악몽>에서처럼 순수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나무는 아닐까?’ 사랑하는 연인이 나아가지 못하게 자신이 멈추게 한 것은 아닌지 죄책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나약함은 익숙하지만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나 이 영화에서도 캐릭터의 양면은 존재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그 이중성을 드러내며 두 자아가 공존하는 모습을 괴리감 없이 잘 흡수해내는 연기력을 또 입증한 것이다.

   
▲ ⓒ cinemablend.com

 감정 내면의 두 가지 면모,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드물다. 혹자는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만이 성숙한 연기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캐릭터의 무표정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 내면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 혼동이 오거나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이 얽힌 얼굴 속의 강렬함이 필자는 높은 경지의 연기라 생각한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의 다양한 면모들을 거침없이 표현해내는 배우 제시 아이젠버그에 대한 기대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 ⓒ 네이버 영화

 오는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월드시네마 부문의 상영작인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2015)가 기다려지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비극적이고 시끄러운 사건들이 범람하는 세상 속에서, 가족을 잃어 경험할 슬픔은 정말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슬픔은 폭탄보다 거대한 존재일 수 있다는 의미의 제목에서부터 그의 내면연기가 기대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가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에는 칸이 주목하는 북유럽 신예 감독 요아킴이 있다. 전작 <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31일>을 통해 캐릭터의 미묘한 감정선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힘을 보여준 요아킴 트리에와 여러 감정선을 한 얼굴로 표현해낼 수 있는 연기력의 소유자 제시 아이젠버그가 함께 작품을 만드니 그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는 어마어마하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 속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여러 감정들을 복합적인 내러티브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옮긴 영화 속 제시 아이젠버그의 모습을 내심 10월까지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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