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운 웹서비스나 앱, 혹은 스마트 기기 따위의 홍보 문구에 UX 라는 단어가 눈에 띄곤 한다. 혹은 ‘최상의 사용자 경험’ 이라든가, ‘편리한 UX’ 같은 문구도 본적이 있는것 같다. 과거에 그 본래의 가치와 상관 없이 그저 싸구려 수식어처럼 쓰였던 ‘웰빙’이나 ‘로하스’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필자가 이 분야로 일을 새로 시작했던 10년 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한참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하던 기억이 겹쳐지며 조금 생경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미 잘 아는 독자들도 적지 않으리라 싶지만, 필자는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 본인의 직업을 소개할때 공을 들여야 하는걸 보면 이 흥미롭고 놀라운 분야에 대해 좀더 알기 쉽게 소개 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 User eXperience Design 은 어디선가 불쑥 솟아난 분야는 아니다. 말하자면 디자인의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어떤 관점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어떤 장식적이거나 곁들이는 부가가치로써 고정되어 있다 보니 오해 하기도 십상이고 특히 ‘경험’을 디자인 한다니 뭔가 뜬 구름 잡는 소리 같다.
디자인은 애초에 그 정의를 따지자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문제를 해결 한다는 것은 그 문제를 먼저 파악하는것이 첫번째이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과 상황, 그리고 해소된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해결하는 방법은 그 다음이며 엔지니어나 예술가, 혹은 그래픽 디자이너 또 적지않은 경우 행정관료나 정치인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넓은 맥락에서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디자인을 사람의 경험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가치와 결합한 영역이다. 여기서 ‘경험’의 정의에 대해서도 가급적 짧게 부연 하자면, 경험은 사용자의 심리적 모습을 구성하는 내면화된 기억들이다. 그저 회상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들을 통해 구축된 취향이나 가치관, 혹은 무의식적 편향성이나 행동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경험 디자인이 추구하는 목표는 사용자에게 어떤 멋진 인상을 주는것 뿐만 아니라 긍극적이며 참신하고 멋진 경험을 선사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고 어쩌면 너무 큰 기대감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디자인.’ 처럼 과장광고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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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 당시, 폭격기 조종사들의 임무환경을 개선한 알폰소 채파니스의 디자인은 오늘날 경험디자인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노력은 임무 성공률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고 승무원들의 생환율에도 기여해 종전 이후 민간 여객기의 디자인에도 참여하게 된다. 출처: wikipedia |
경험 디자인은 이를테면 인류가 지금에 이르기 까지 이미 수 많은 영역에서 이룩해 놓은 ‘좋은 것들’을 체계화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경험 디자인은 완벽하게 새롭거나 혁신적인 무엇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과거에 긴 시간을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듬어 왔던 것들을 좀더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도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어떤 ‘관점’이다. 그 구체적 모습은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통해 형성 되었지만 그 특유의 ‘관점’ 이라는 특성 덕분에 급격히 다른 분야에도 접목되고 있다. 그 관점이란 앞서 경험의 정의에서 시사했듯이 바로 사용자의 관점이다. 문학에서 인칭개념을 가져온다면 사용자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것이다. 즉 ‘나’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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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n Norman은 인지 심리학자로 경험 디자인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애플에서 근무할 때 User experience Architect 라는 직함을 사용했으며 이와 같은 맥락에서 UX 디자인의 개념을 정립했다. 출처: reloade.com |
한편, 사용자라는 단어가 어쩌면 스마트폰 사용자 처럼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하는 대상을 전제하는것 처럼 들릴수 있는데, 경험 디자인에서의 ‘사용’의 개념은 훨씬 포괄적인 것이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예를 들면, 어떤 필요에 따라 은행의 상담원과 통화를 하는것,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의 동선이나 도슨트 서비스, 운전할 때 접하는 교통신호체계 따위도 이 개념에 포함된다. 즉 사용자가 직간접적으로, 그리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맺는 어떤 관계 조차도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대상들과 모든 종류의 상호작용들이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인식하고 상호작용 하는 모든 종류의 대상’이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대상이 되고 그것의 결과는 사용자 개인의 경험의 질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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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영어권 회사들이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인도나 방글라데시에 콜센터를 아웃소싱하고 있지만 ‘소통’의 질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제로 전화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통계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출처: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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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그래픽 기반의 데스크탑 인터페이스는 추상적이고 어려웠던 컴퓨터를 현실세계와 비슷한 인식체계로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 혁명적인 전환이었다. 제록스사의 스타시스템이 그 첫 제품이었다. 출처: wikiped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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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폰의 버튼식 키패드에서 스마트폰의 풀터치 스크린으로의 전환은 디자인 관점에서 ‘정해진 기능’ 으로부터 ‘맥락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써의 경험 디자인은 컴퓨터 시스템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으로 부터 시작했지만 이제는 컴퓨터 스크린을 벗어나 건축, 서비스, 마케팅, 브랜딩, 정치 캠페인에 이르기 까지 그 대상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더우기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정보통신기술이 접목되면서 보다 유기적이고 통찰력 있는 실행이 가능해지고 있어 이런 추세를 가속시키고 있다.
경험 디자인 이전에도 세상에는 이미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주는 제품과 서비스들이 있어왔다. 현명하고 경험 많은 장인들은 이미 사용하기 편하며 큰 만족감을 주는 도구들을 만들 줄 알았으며, 보험이나 신용카드 처럼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와 경제시스템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서비스로 만든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성공사례는 그 근간에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개인적, 사회적 욕구를 정확하게 보고 이를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조화롭도록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공이 누구나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숱한 실험과 도전, 모험과 실패를 통해 축적된 가치인 것이다. 경험 디자인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보다 체계화 해서 실패확률을 줄이며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뛰어난 직관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 해낼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 디자인 관련 학교나 연구소는 대부분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심리학자, 엔지니어, 제품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마케팅 전문가, 작가, 서비스 기획자, 통계학 전문가, 인류학자, 예술가 등 폭 넓은 분야에서 저마다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협업을 한다. 경험 디자인이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어떤 제품을 쓰기 편하게, 아름답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채워주는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는 이러한 통섭적인 맥락 속에서 꿈꿀 수 있고 실현 가능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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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파크 디자인은 컨셉과 브랜딩, 콘텐츠가 방문객의 경험에 촛점을 맞춘 규모가 큰 경험디자인의 예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역이다.출처: thinkwellgroup.com |
그러면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가져야 할 관점은 무엇일까? 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바로 ‘사용자의 관점’이다. 제품 기획자나 엔지니어, 혹은 제조사 사장의 시점이 아닌 최종 사용자의 시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해결해야할 문제도 역시 사용자 개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해결방법 역시 사용자가 동의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단히 쉬운 일 같지만 실제로는 꽤 어려운 일이다. 만드는 사람도 결국은 한명의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점으로 디자인 하기는 쉽지 않다. 더우기, 쓸만한 물건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상상력 너머에 있는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한다면 더 막막하게 들린다. 경험 디자인은 이를 위해 여러 범주의 방법론을 활용한다. 사용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욕구를 찾아내며 이를 체계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발상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결과물을 평가하는 방법과 이를 반성하고 한층 더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
다소 거칠게 축약해 각 분야를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 사용자 이해 – 사용자의 욕구, 문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영역
- 디자인 전략 – 사용자 맥락과 제품의 궁극적 가치를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영역
- 최적화 – 사용성이나 경험요소의 정량적, 정성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영역
크게 세 영역의 여러 방법론들을 유기적으로 순환, 적용시켜 결과물을 만드는데, 중요한 것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를 한 사이클로 보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노력을 지속 한다는 점이다. 사용자와 제품이 서로 소통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성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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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ffrey Shaw의 T Visionarium :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접목한 미디어아트 역시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다.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창조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기술과 발상이 결합하고 있다.출처: blog.derfunke.net |
다음 글에서는 경험디자인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