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앞선 칼럼에서 살펴본 초기 인상주의 작품들을 잠시 기억해보자. 무너진 윤곽선으로 그려진 형태와 그로 인해 대상 간 모호해진 경계, 그것을 대기처럼 감싸는 아득한 배경 묘사가 떠오른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마디로 ‘무정형적’이었다.
인상주의와는 또다른 신인상주의
1886년 제 8회를 마지막으로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서는 초기 작가들의 무질서한 형상을 비판하고, 인상주의를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 몇몇 화가들이 등장한다. 일명 ‘신인상주의’로 구분되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와 폴 시냑(Paul Signac)이다.
쇠라와 시냑은 모네 등의 초기 인상주의 작가들이 활용했던 색채분할법에 좀 더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기존의 인상주의자들은 화면에 생동감을 유지하기 위해 채도가 떨어지는 ‘중간색’을 최대한 피하려했으나, 색점을 후다닥 찍어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겹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중간색이 묘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신인상주의자들은 중간색을 자아내는 색들의 겹침을 완전히 피하고자 했고, 그러한 안정감 있는 색채 배열을 위해 ‘점묘법’을 고안해낸다. 이는 캔버스 자체를 과학적으로 분할한 뒤 그 공간을 정돈된 색점으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신인상주의의는 기존의 인상주의와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앞선 시기의 화가들이 빠른 붓터치로 혼란스레 색점을 찍어냈다면, 신인상주의자들은 색점 하나에 논리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작품 한 점을 완성하는 데에만 몇 년씩 소비하기도 했다.
나아가, 신인상주의 화가들은 초기 인상주의 특유의 무질서한 구도를 정비하기도 한다. 예컨대, 쇠라의 경우, 안정된 수직선과 수평선을 기준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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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주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86 | ||
제 8회 인상주의 전에 출품된 쇠라의 대표작이다. 우선, 주제적으로는 일상생활의 일면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적이다. 이것은 노동자와 부르주아가 한 장소에 모여 여가생활을 지내는, 계층의 평등화가 이루어진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광선에 대한 관심과 민감한 반응 역시 쇠라가 명백한 인상주의 화가임을 드러낸다. 작가는, 전기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맑은 빛을 묘사하기 위해 중간색을 기피하고 순색을 선호했다. 다만, 그 빛의 색점들을 1센치 내의 점으로써 겹치지 않도록 칠함으로써 보다 순수하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방식으로 적용했다는 것이 쇠라의 특징이다. 그는 불규칙했던 패턴의 색점들을 규칙화 한 것이다.
나아가, 인상에만 너무 치우진 탓에 비정형성과 비조형성을 띄었던 인상주의자들 기법을 극복하고자 다시 형태를 복원하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구상의 볼륨감과 양감이 강조되었고, 인상주의에서는 대체로 무시되었던 입체감과 원근법이 되살아난다. 구도적으로도 삼각형이나 수직, 수평선 등의 안정적인 구도가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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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시냑, <1980년에 박자와 각도, 음색, 색채의 운율감 있는 배경의 에나멜 앞에 있는 펠릭스 페네온씨>, 1890 | ||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의 대표작가인 시냑은 광선과 색채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진행한다. 그는 쇠라의 세밀한 점묘법을 넓게 확대하여 모자이크식 사각형으로 색점을 재창조하고, 전혀 겹치지 않도록 정갈히 찍어낸다.
신인상주의의 의의와 한계
이처럼, 인상주의의 무질서함과 비논리성을 지적하며, 색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상주의 기법을 영속화하고자한 것이 신인상주의이다.
그러나, 지나친 과학성으로 인해 작가 개인의 감수성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 했다는 한계를 띄기도 한다. 그러한 냉철한 신인상주의로부터 서정성을 회복시키고자 한 세 명의 대표적인 화가들이 있다. 바로, ‘후기 인상주의’ 라고 불리는 세잔, 고갱, 그리고 고흐이다. ■ [디아티스트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