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여기 저기 날아다닐 때, 나는 인간인지 몰랐다. 지금 이 순간 꿈을 깨고 보니 나는 다시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인간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다가 한 순간 인간으로 바뀐 것인가?
유명한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의 한 대목이다. 호접지몽은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깨어났는데, 나비가 장자였는지 장자가 나비였는지를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생겨난 말로 주객 또는 몰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 2015년 한 해 동안 “현존하는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한 기억의 흔들림” 이란 주제로 월간 프로젝트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극연구소 마찰은 호접지몽을 각색한 <나비의 꿈>으로 7월 한 달간 관객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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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마찰 6,7월호 <나비의 꿈> | ||
2009년에 김철승 예술 감독이 창단한 극연구소 마찰(이하 마찰)은 기존 공연의 메커니즘을 전복시켜 관객과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모색하는 ‘연구 집단’ 에 가까운 공연 단체이다. 보통 연극의 필수 요소인 무대(극장)과 희곡이 부재하는 이들의 공연은 매 달 특정 테마를 가지고 그 테마와 알맞은 공간을 찾아 이뤄지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형식을 지니며, 연출이 배우들에게 즉흥적으로 디렉션을 줌으로써 예측불허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공연의 특성은 애초부터 무대 위의 ‘현장성’ 이라는 연극의 기원적 문법에 기인하며, 연출가 김철승은 또 다른 극적 공간을 시도함으로써 그 현장성을 극대화 시킨다. 이것은 곧 마찰이 지향하는 연극적 가치이며, 동시에 무대 위의 현장성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관한 방법론의 제고이다.
마찰은 올 초 문래동의 대안공간, ‘정다방’에 둥지를 틀고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연출가와 배우들이 함께 완성한 파편화된 텍스트와 다소 복잡한 플롯들은 매회 즉흥적으로 재편집되어 공연되었다. 간단히 말해 <나비의 꿈>은 네 명의 남녀, 두 커플이 각자의 나비를 찾아가는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다. 1시간 남짓 동안 극을 이끄는 네 명의 배우가 분한 캐릭터는 지엽적으로 느껴졌는데, 여기서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로 존재하기보다 행위로서 존재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 행위는 연출이 (혹은 제 3의 퍼포머) 전달하는 지시사항이 ‘신체 언어’ 로 발화되는 순간이며, 현실과 극이 만나는 경이로운 지점이다. 배우는 연출이 미리 상정한 맥락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인데, 연출은 조심스럽게 들어가 그 맥락을 깨고, 다음 맥락 안에 배우들을 투여시키는 방식인 셈이다. 배우들은 신체 언어를 ‘수행’ 하는 과정에 있어서 놀라운 몰입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혼재되는 두 커플간의 대화와 움직임은 반복되는 레이어를 쌓으면서 일종의 밀도를 만드는데, 가령 극의 초반에 강박적으로 약의 개수를 세는 여자의 움직임은 원형을 그리며 도는 동작으로 치환되는 느낌을 준다. 또한 무대의 부재로 인해 관객과 배우의 물리적 구획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공간의 활용과 조명의 전환은 관객의 시선을 중재하고 감각을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 이처럼 연출의 개입으로 두 커플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극의 흐름은 씨실과 날실로 엮이는 듯 했지만, 끝내 매끈한 매듭은 찾을 수 없었다.
<나비의 꿈>은 어떠한 의미나 해석이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마찰의 이전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즉흥성이 주는 원초적 모호함을 통해 찾아지지 않는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탐구적 자세가 이 집단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연극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집단의 이름으로 붙여진 ‘마찰’은 형이상학적이었던 젊은 시절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 스스로의 철학을 비판하며 내뱉은 말로 이 집단의 비전과 지평을 공유한다. (멤버 전원은 맨발로 공연함으로써 땅의 마찰을 느낀다.) 공연과 공간이 상보적이라면, 그 두 가지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안적인 방향에 대해 꾸준히 연구함으로써 어떤 ‘마찰’ 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이 집단이 극을 만드는 시발점이자 종착점일 것이다.
끝으로 다시 <나비의 꿈>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필자에게 전달된 ‘마찰’ 은 꿈에서 깨어나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장자의 가르침을 환기시켰다. <나비의 꿈>의 네 남녀는 극의 마지막에 “이제 갈게요!” 라는 말과 함께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은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난 것일까? 꿈속의 나비로 탈바꿈을 한 장자도 장자지만, 꿈속의 모든 것을 창조한 이도 장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젯밤에 꾼 꿈에 등장했던 당신도 당신이지만, 그 꿈을 만든 이도 당신인 것이다. 세상 속에 내가 있는지, 내 안에 세상이 있는지. 그윽한 근심은 한바탕 꿈이 되어 나비로 가볍게 날개 짓 한다. 마침 한여름 밤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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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마찰 <나비의 꿈> 7월 24일 공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