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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 영화 셀마는 1965년 흑인 참정권을 정상화 하기 위한 셀마-몽고메리 평화행진을 다룬 영화이다. 출처: 씨네21
 
솔직히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해 잘 아는 한국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I have a dream’ 으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아웅산 수치, 달라이 라마, 넬슨 만델라와 같이 오랜동안 자신을 희생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 중 하나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날이 제정되어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 인물이다. 흑인 인권을 위해 모든것을 바친 존경받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 더해 브래드 피트와 오프라 윈프리(영화에 직접 출현도 한다)가 제작에 참여해 처음부터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의 스토리를 살피기 전에 무엇보다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마틴 루터 킹’이 아니라 ‘셀마’일까? 예컨데 이 영화에도 잠깐 등장하는 또 다른 흑인인권 활동가인 말콤 X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위대한 인물의 이름이 아닌 사건의 배경을 제목으로 정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주요 내용 뿐만 아니라 한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동시에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보통 실존인물을 다루는 영화들은 예의 전기적 네러티브를 통해 인물을 그려낸다. 이야기의 중심은 한 인물이고 그 인물이 그런 면모를 갖추게된 배경이나 신념과 행동에 따른 인과적 사건을 통해 그 인물의 인생과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보여주곤 한다. 일련의 사건은 그 인물의 본질을 드러네는 장치이자 증언들로써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셀마는 이런 관점에서 조금은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영화이다. 제목이 명확히 드러내듯이 이 영화는 마틴 루터 킹이라는 인물 보다 그가 셀마에서 시작해 몽고메리까지 행진했던 역사적 사건에 집중한다. 이 영화에서 킹 목사는 이미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노벨상 수상자로써, 비폭력주의 흑인인권 운동가로써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어떤 인물의 인생역정 스토리를 보여주곤 하는 여타 전기영화와 괘를 달리한다. 이 영화는 오직 셀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조명하고 그 승리의 순간에 막을 내린다. 어쩌면 이런 전개는 이미 킹 목사에 대해 많이 알고있는 미국 관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쟁취한 승리의 의미와 그 아래 깔린 정신을 보다 소중하게 다루는 관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영화는 그가 쟁취한 위대한 승리를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흑인들의 실질적 참정권을 연방법으로 보장받게 된다). 만약 다른 영화들 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일대기를 풀어 낸 이야기라면 셀마에서의 승리는 조금은 다른 인상으로 관객에게 남겨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는 이 승리 이후에도 비폭력 인권투쟁을 계속했고 3년뒤 어느날 아침 암살 당할 뿐만 아니라, 그가 쟁취한 ‘투표권법’은 2013년 보수적인 대법원에 의해 핵심조항이 무력화 되어버렸다. 그리고 미국 사회는 흑인이 대통령이 된 오늘날까지도 인종갈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미학적 성취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아름다움 보다는 메세지에 집중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적 미장센이나 편집은 어찌보면 TV용 드라마를 떠올릴 정도로 평범해 보인다. 영화의 스타일 보다는 어떤 증언으로써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쪽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에서 인물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드러내고 흑인 인권투쟁의 역사를 각 인물들이 경험담으로 증언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제는 활자화된 역사로써 그 생동감을 느끼기 어려운 투쟁의 날들을 인터뷰를 통해 듣는 것처럼 전달한다. 비교적 담담해 보이는 연출은 영화속에 표현된 당시 미국사회의 만연된 부조리를 역으로 생경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 인간으로 그려진다. 킹 목사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은 이 사건에서 각자의 역할에 매우 충실해 보일 정도로 전형적이다. 대통령, 정치인, 관료, 백인 인종주의자들, 오랜 실패에 피로를 느끼는 인권 운동가, 판사, 변호사, 연민을 느끼는 백인, 종교인, 희생자와 가해자… 이런 전형성은 드라마를 다소 평면적으로 만들긴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의 거대하고 단순한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도록 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자명한 주제 말이다.
 
   
▲ 1965년 당시 1차 평화행진을 무력 진압하는 경찰. 출처:thenation.com
 
일반적으로 영화의 뛰어난 매력중 하나라면 마치 사진작품 처럼 즉각적으로 실체를 공감케 하는 감성적 반향일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에 대해 논할때 사진예술이 실존의 증거로써 강력하게 관람자와 감성적 공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영화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도 그 시각적 생동감을 통해 이야기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내면화하여 화자와 일체화 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개성 넘치고 입체적으로 그린 인물은 더욱 실감나고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며 동시에 실존하는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일례로 전쟁영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모순덩어리의 캐릭터 설정은 그가 악인일 지라도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그 주제에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가능할때 매력적이고 의미있는 것이다. 히틀러의 예술가의 꿈이 좌절된 아픔을 대량학살을 희석하는데 활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영화, 셀마가 보여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으로써 누려야할 존엄성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다른 해석과 평가는 무의미하고 반인류적이다. 그래서 이영화는 매우 직관적이고 저돌적이며 단순명료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가치에 반하는 인물들은 그 역할에 충실하게 평면화되는 효과를 보인다. 예컨데, 오랫동안 빈민을 위해 헌신했던 알라바마 주지사는 인종주의자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어 오히려 그 편견과 인종증오의 깊이를 더 진하게 드러내는 식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중 무엇보다 이 영화의 메세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가슴을 울리는 것은 킹 목사의 연설이다. 영화가 담고 있고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세지가 그의 연설을 통해 그대로 쏟아져 나온다. 비약하자면 연설 장면을 넣기위해 내러티브를 구성한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전혀 구태하거나 간지럽거나 지루하지 않다. 킹 목사 역의 데이빗 오예로워의 연설 씬은 그 메세지가 담고있는 정신을 부족함 없이 보여준다. 에너지가 넘치는 연설 장면들 만으로도 이 영화의 카타르시스를 성취할 정도로 훌륭하다.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위에서 벌어졌던 폭력과 핍박은 오히려 킹 목사의 메세지를 부연하는 인과관계의 한 고리에 지나지 않아 보일 정도이다. 
비폭력 흑인 인권운동가로 한정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에게 다소 멀리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그가 쟁취 하고자 했던것, 그리고 오늘날까지 큰 여음을 남기는 것은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호소라는 것을 뜨겁게 느낄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역사책의 기록으로만 남지 않고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어떤 임무가 이 영화에 담겨져 있슴을 느낄 수 있다.
셀마는 최근 우리사회 처럼 기계적 가치중립을 강요 받거나 자기 위로를 위해 세상에 눈을 감는 일이 만연한 현실에 극히 단순하고 명료한 메세지를 던진다. 이 영화는 우리가 지켜야할, 의심할수 없는 자명한 가치가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쟁취할때 까지 계속 싸우라 말한다. 이 영화가 마틴 루터 킹의 전기영화가 아니고 하나의 위대한 승리를 기록한 영화인 이유이다.
 
   
▲ 올해 셀마-몽고메리 행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Edmund Pettus 다리를 당시 생존자들과 걷고 있다. 출처: c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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