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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픽셀>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 신동혁] <픽셀>(2015, 크리스 콜럼버스)
1990년대에 고향인 일본을 너머 대한민국 젊은이,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렸던 만화, [슬램덩크]. 그 속에서 전 일본 최고의 농구 감독이자, 이제는 한/일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신 ‘안 선생님’에게 주인공 ‘강백호’(본명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질문한다. “영감님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국가대표였을 때인가요?…….” 그리고 그는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지금입니다.” 이 기막힌 고백에 대해 ‘영감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말없이 최고의 순간을 살고 있는 강백호에게 농구공을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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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캐스트 | ||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현실에서도 혹시나 강백호처럼 ‘지금’이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혹시나 있더라도 스스로 긍정성 마인드에 매몰된 가식이리라고 확언할 수 있다. 보통은 스스로 최고의 순간을 설정할 때에,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왠지 “지금”이라고 외치는 강백호가 닮고 싶긴 하다.
통상적인 사람들의 인생(人生) 흐름을 연대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어느 정도 확정된 단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생아기-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 각자 시기들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확실한 건 어느 일정 시기 이후로는 늘 예전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과거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내 현재 가운데에 미화되는 대상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이유는 아마도 현재가 건네주는 피곤의 무게가 지금의 나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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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픽셀>의 주인공 샘 브레너(아담 샌들러) 역시, 30년 전에 비디오 게임으로 세계를 주름 잡던 영광스런 과거에 매몰되어 있다. 그 여파로 현재 별 볼 일없고 무시만 받는 ‘덕후’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권력 ‘미국 대통령’의 삶을 사는 친구 윌 쿠퍼(케빈 제임스)도 언제나 30년 전 그 당시를 회상하고, 여군 중령 바이올렛(미셸 모나한) 역시 전 남편과 행복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는 비단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우연적 그리움이 아니다. 실제로 어른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위치의 사람이건 간에 언제나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고 회상한다. 여하튼 <픽셀> 속의 어른들은 어린 시절과 상이한 이런 고단한 삶에 지쳐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추억으로 남아있던 ‘갤러그’, ‘팩맨’, ‘벽돌 부수기’, ‘동키콩’의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 지구 침공을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샘과 바이올렛, 윌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예전의 즐겁고 행복했던 비디오 게임 속으로 입장한다.
그리고 여기서 잠시, 어린 시절의 비디오 게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모두 어렸을 적에 “게임 좀 그만 해!”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한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나 게임이 좋았던 이유는 아마도 현실은 엄마한테 혼나고 찔찔짜는 울보에 불과했는데, 언제나 게임 속에서의 나는 ‘영웅’이었고, ‘주인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영웅 심리에 취해서 게임 밖의 너무 작은 내가 언젠간 어른이 되어 영웅이 되고, 주인공이 될 날을 항상 그려보곤 했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인생에서 영웅이었던 유일한 때는 아마 어린 시절의 ‘젤다의 전설’이나 ‘마리오’ 안에서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 ‘영광의 시절’은 ‘젤다의 전설’을 플레이 했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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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마찬가지로 <픽셀> 속에서 1982년 어린 샘은 ‘동키콩’을 무찌르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기로부터 30년이 지난 2015년에 그가 살아가는 어른의 삶은 영웅과는 거리가 먼 ‘비디오 설치 기사’이고, ‘덕후’에 불과하다.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요즘 게임(콜오브듀티, 헤일로)에는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요즘 게임은 재미가 없어’하는 꼰대의 면모까지 풍긴다. 이런 샘의 모습은 한심해보이기까지 하고, 순화된 말로는 뒤쳐진 사람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현실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가지고 디지털 시대의 환경을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모습과도, 요즘 문화는 이해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누군가의 모습과도 같다.
그런 꼰대와도 같은, 과거에 매몰된 샘에게 다시금 현실에서 픽셀 게임을 플레이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게임은 지금의 현실 환경과는 다르게 그가 영웅이 되고자 꿈을 품었던 세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과 3D로 둘러싸인 세상에선 이 고전 게임의 복잡한 패턴과 조악함을 당해낼 수 없다. 아니 당해낼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샘은 근육질의 젊은이들은 상대하지 못하는 ‘지네’를 상대하고, ‘팩맨’을 무찌르며 ‘동키콩’에 대면한다. 그렇게 이 과거의 유물들은 오로지 ‘어른’들이 상대해야만 하고, ‘어른’들이 무찔러야만 하는 것으로 실존한다. 이는 과거의 영광에 취한 꼰대들에게 스스로 옛 영광의 헛됨을 격파할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추억으로 남아있는 팩맨은 지워버리고 지금 현재를 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1982년 픽셀 게임의 조잡스런 화면에서 2015년의 디지털 영화의 깔끔한 스크린으로 전이된 영웅의 면모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잃었던, 옛 것으로 치부된 흘러간 것들을 모조리 현실로 환기한다. 그리고 과거에 침잠해 있던 많은 어른들이 영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그 과거를 모조리 깨부수고 나와 현재에 편입되기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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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
<픽셀>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너무나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치 못하고 뒤처지는 어른 세대에 대한 충고였음에 분명하다. ‘당신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하는 질문에 말없이 웃으며 88올림픽 시절의 사진을 꺼내주는 어른들에게는 지금의 스마트 사회가 너무나 어지럽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성이다. 그러면서 ‘5공 때가 좋았지’나 ‘내가 왕년에…….’ 따위의 말들로 자위한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왕년에’ 꿈꿨던 영웅의 면모는 <픽셀> 속 ‘샘’처럼 결연한 의지로 과거의 유물들을 까부수고, 현재로 나와야만 가능하다. 진정 사회에서 바라는 어른들의 영웅적 모습은 현재를 욕하는 꼰대가 아니라,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처럼 자신의 옛 영광이었던 농구공을 다음 세대인 ‘강백호’에게 전달해주고자 하는 ‘멘토’의 모습이다.
‘당신에게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위의 질문에 “한 10년 전?”이라고 대답하며 과거를 그리는 당신은 항상 현재를 고통으로 여긴 채,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지금 현재가 그 행복했던 과거의 결과임을 깨닫고, 지금에 집중한다면 그토록 바라던 ‘영웅’의 면모를 가진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