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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를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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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를 알게 된 것은 인터넷에서 멸종된 동물들에 관한 글을 우연히 읽었을 때였다. 남아프리카 인근 인도양에 점처럼 떠 있는, 모리셔스라는 작고 아름다운 섬에 살던 그들은 원래 날 수 있는 새들이었지만 천적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더 이상 날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결국 날기를 영원히 포기했다. 그런 상황에서 15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 낙원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새임에도 불구하고 날지 못해 너무나도 쉽게 잡혀버리는 그들에게 조롱이라도 하듯 ‘도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도도’는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1681년, 마지막 남은 도도새가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유일하게 증명해주는 것은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된 도도새의 뼈다귀들 뿐 이다.

그 비극을 알게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작업을 해 오며 늘 도도새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줄곧 내가, 우리가 나는 방법을 망각한 도도새와 같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어떤 기준과 프레임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 속에서 안주하도록 유도한다. 심지어는 행복의 기준이나 사랑의 형태와 같은 것들 까지도.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날개를 버린 도도새는 현대인들과 닮았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체적인 자유라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도도새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유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모습들을 날개를 잃고 인간의 몸에 편입된 ‘새 인간’으로 표현해왔다.

   
▲ Modern Junglers, 193.9×130.3cm, 캔버스에 먹, 2015, 김선우
   
▲ 고군분투, 31.5×40.5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5, 김선우

자유에 대한 고민은 나 스스로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본인 또한 아직 제대로 하늘을 날 줄 모르는 한 마리 어린 새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래서 도도새가 존재했던 모리셔스라는 섬은 내게 마치 성지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죽음이 내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이제 나는 그 메시지를 직접 찾으러 떠나는 순례자가 될 것이다. 문득 도도새를 떠올릴 때면 여기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진 그 작은 섬으로부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들을 수 없는 도도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 도도새에 대한 드로잉(21), 종이에 먹, 2015, 김선우

여기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 작은 섬에서, 도도새의 죽음을 추적하는 자로서의 나는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그 답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어쩌면 답이 아닌 어떤 과정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여행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로서의 여정이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언급했던 호모 비아토르란 ‘떠도는 인간’으로, 인간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길 위에서 방황할 때 성장해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인이 작업을 해 나가는 이유이며 목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은 아마 나쁘지 않은 순례이자 방황이 될 것 같다.  [디아티스트 매거진=김선우]

*본 여행은 일현미술관 주관 ‘일현 트래블 그랜트’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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