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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소년, 파리 쿠튀르의 황태자가 되다

[디아티스트매거진=이해나] 불멸의 패션 아이콘 이브 생 로랑의 삶, 사랑,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이브 생 로랑>. 우리에겐 화장품 브랜드 ‘입생로랑’으로 더 익숙할 법도 하다. 자신의 이름을 본떠 ‘입생로랑’ 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전기 영화를 소개한다.

   
▲ ⓒ 영화 <이브 생 로랑> 포스터

여성에게 최초로 바지 정장을 입히고, 패션쇼 무대에서 최초로 음악을 사용한 사람. 바로 그가 이브 생 로랑이다. 그는 ‘최초’ 타이틀을 가장 많이 소유한 패션 혁명가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이브 생 로랑>은 2014년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진작에 영화 작품성과 재미에 극찬을 받았다.

또한, 실제 이브의 동반자였던 피에르 베르제가 유일하게 인정한 이브의 공식 일대기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피에르 베르제의 동의하에 세상에 발표된 영화 <이브 생 로랑>은 일생의 동반자로서 그만이 줄 수 있는 정보가 있었고, 피에르 베르제와 이브 생 로랑 재단의 긴밀한 협조로 영화의 작품적 가치는 더욱 높게 측정된다.

피에르 베르제는 영화 <이브 생 로랑>을 위해 여성 패션의 혁명을 일으킨 이브의 오리지널 의상들을 그대로 대여해주는 이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세기의 패션쇼들이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되었고, 관객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볼거리를 만나게 됐다.

   
▲ ⓒ 영화 <이브 생 로랑> 스틸컷
   
▲ ⓒ 영화 <이브 생 로랑> 스틸컷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이브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언론의 관심받기를 내심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관심을 극도로 꺼려하는 심리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때문에 겪게 되는 예술적 창작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발표하는 컬렉션마다 따라오는 언론의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그는 굉장한 심리적 압박을 느껴왔다.

이브 생 로랑이 이런저런 이유로 흔들릴 때마다 연인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의 마음을 다잡아주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결국 방황하던 이브도 다시 베르제에게 의지하면서 입생로랑 브랜드를 패션계의 전설로 입지시킬 수 있었다.

   
▲ ⓒ 영화 <이브 생 로랑> 스틸컷

이브 생 로랑은 2008년 사망했다. 평생을 우울증,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연약한 사람이었으나, 2002년 65세의 나이로 패션계를 은퇴할 때까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20세기 후반 패션을 이끌었다.

영화 <이브 생 로랑>은 이런 대단한 사람의 전기를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이브를 대단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정신적인 고통으로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담아내는 등 방탕하고 문란했던 그의 사생활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이는 이브가 컬렉션마다 선보이는 아름다운 작품들과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어 놀라운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또한 이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이브 생 로랑 곁에서 그림자처럼 자리를 지켰던 피에르 베르제의 존재감을 두각 시켰다. 제아무리 이브가 많은 남성들과 스캔들을 벌이고 일탈을 하더라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기다려주는 피에르 베르제 덕분에, 끝까지 디자이너로 살 수 있었던 이브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 ⓒ 영화 <이브 생 로랑> 스틸컷

수줍은 소년이 파리 쿠튀르의 황태자가 되기까지. 혜성같이 패션계에 등장해, 20세기 패션 디자이너 중 가장 탁월한 색채 감각을 가졌다고 평가 받았던 이브 생 로랑. 해외 유수 영화제가 극찬하고, 그의 반려자가 유일하게 인정한 전기 영화라는 점에서 <이브 생 로랑>은 한 번쯤 볼 만한 영화가 아닐지. 단, ‘동성연애 극혐’주의자는 안 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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