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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이드 아웃 포스터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 매거진=어한빛] 우리는, 평생을 기억과 함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작은 초(second)의 순간으로도 남을 수 있는 기억은, 나를 형성하는 기초적이자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내가 겪은 기억이, 기억으로 인한 다른 무수한 것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사물·음식·사람들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은 제각기 다르게 남는다. 그리고 기억한 방법, 기억 된 형태에 따라 느낀 여러 가지들이 최종적으로 성격을 형성한다. 이 모든 것이 ‘나에 의해’, ‘나의 것’ 그리고 ‘나’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기억은 나를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은 이 기억과 감정에 대해 아주 독특하고 기발하게 접근했다. 이미,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Inc, 2001)>와 <업(Up, 2009)>으로 우리에게 따뜻함을 선사한 피트 닥터(Pete Docter)감독은, 이번 작을 통해 여느 성장드라마 못지않은 진한 여운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업>의 풍선 같이 예쁜 색감과, <몬스터 주식회사>처럼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한 데 어우러진 감동을 무심한 듯 진하게 전한다.)
주인공 라일리가 눈을 뜸과 동시에 ‘기쁨’이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그리고 (영화에 따르면) 정확히 33초 뒤에 슬픔이 생겨나고, 그 이후로 까칠, 버럭, 소심이 생겨난다. 이 다섯의 감정들이 라일리의 머릿속에 살고 있다. 기쁨으로 남는 순간은 노란색으로, 슬픔은 파랑, 까칠은 초록, 버럭은 빨강, 소심은 보라의 구슬들이 머릿속 ‘감정본부’로 들어와 기억으로 저장된다. 라일리는 ‘주요기억’이 기쁜 노란색으로 저장되어있다. 밝고 긍정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다른 감정들이 끼어들어 라일리가 다른 감정을 보일 때도 있지만 주로 기쁨의 주도 하에 라일리는 행복하다. 이러한 설정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내 감정들이 정말 저 귀여운 캐릭터들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영화의 몰입도는 뛰어나다. (실제로 극장을 떠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감정, 다 조종되고 있는 거 아니야?’하는 표정으로 일어선다. 몇몇 사람들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아마, 68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도 이렇게 이입하며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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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일리 머릿속의 감정들. 왼쪽부터 버럭,까칠,기쁨,소심,슬픔. [ⓒ네이버 영화] | ||
라일리가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면서 감정들은 혼란을 겪고 영화는 풍부해 진다. 기억과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1살의 소녀에게 이 일이 쉽게 받아들여질리 없었다. 설상가상, 이미 저장된 기쁜 기억에 끼어드는 슬픔을 막던 기쁨이 주요기억구슬들과 어디론가 빨려들어가 사라져 버린다. 기쁨을 붙잡던 슬픔도 함께 말이다. 이 둘은, ‘장기기억 저장소’라는 본부와 한참 떨어진 곳에 도착한다. 주요기억이 비어있기에, 라일리의 일명 ‘성격 섬(하키 섬, 우정 섬, 엉뚱 섬, 가족 섬)’에는 불이 꺼져버린다. 불 꺼진 머릿속, 라일리는 혼란스럽다. 더군다나 까칠, 버럭, 소심만 남다보니 모든 일에 까칠하거나 버럭 화를 낸다. (소심은 소심하다보니 감정판에 손도 제대로 못 대고 있는 덕.) 그러는 사이, 기쁨과 슬픔은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 고군분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많은 것들을 담아냈다. 장기기억 저장소, 잠재의식, 추상적 의식, 오랫동안 떠올리지 않아 버려지는 기억, 상상 등 우리 감정의 세세함과 기억의 사소함들을 기분 좋게 그려낸 것이다. 그려내는 과정에 희생, 존중, 이해, 협동이 적절히 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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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기억 저장소에 떨어진 기쁨과 슬픔 [ⓒ네이버 영화] | ||
최악의 상황으로, 성격 섬들 중 ‘가족 섬의 일부’만 남고 다른 섬들이 모두 ‘무너지고’, 기쁨마저 버려지는 기억 공간으로 떨어진다. 정말 동떨어진 기쁨은, 이 곳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된다. ‘하나의 기억에 기쁨이 존재하기 전, 슬픔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기쁨은, 한 기억을 이야기 할 때 자꾸 슬프게만 말하는 슬픔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기쁜 기억을 슬프게 바꾸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쁨과 슬픔은 본부로 돌아오지만, 라일리는 행복했던 기억이 가득 있는 미네소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가출을 해, 미네소타 행 버스에 올라 타 있었다. ‘아무 감정이 없는’상태로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라일리를 버스에서 내리도록 해야하는 상황, 모두들 기쁨만 바라보고 있다. 이 때, 기쁨이 슬픔에게 말한다. “슬픔, 네가 필요 해.” 그리고 기쁨이 끝까지 쥐고 있던 노란색의 주요기억들을 슬픔에게 넘기며 “네 차례야.” 라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온 라일리는, 부모님 앞에서 즐겁기만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같은 기억, 다른 감정이 터져나온 것이다.
우리가 따뜻함을 느끼면서 눈물이 맺히는 순간이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한 가지 기억에 많은 감정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는 순간에 차오르는 눈물이라 하겠다. 라일리를 보며, 우리자신 스스로 ‘나도 그렇지’하고 나의 기억들을,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그러할 것이다.
<토이스토리 2>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이렇게 마음이 미어지는 감동을 받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영화는, 어린 학생들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귀여운 에피소드들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할 것이며, 그 안에 담겨있는 무겁고 깊은 감동은 우리를 정말 따뜻하게 안아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느낀 모든 감정들을 ‘숨김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라는 진정한 인격체라 형성된다는 것을 두 눈 가득 마음속에 간직하게 될 것이다. 라일리의 감정본부에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의 색들이 함께 섞인 기억구슬들이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많은 감정 중, 어느 감정을 앞세워 기억할지는 우리(나)의 선택이겠지만, 본래는 다른 것들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것과 함께 있어 하나의 온전한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새삼스러운 계기를 만들어준다. 기억하자, 한 가지에 치우치면 균형이 조금만 안 맞아도 균열이 일어나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