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주희] 이 작품들을 교과서와 문제집에 자주 등장하는, 수능 대비용 문학 작품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요즘은 문학 작품의 ‘감상과 이해’보다는 ‘핵심 암기’ 위주의 학습방식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래서 친근한 제목들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명대사 몇 개를 제외한 상세 줄거리를 떠올리기란 여간 쉽지 않다. 반면 누군가는 곧바로 소설 본문의 아름다운 묘사와 분위기를 떠올릴 것이며 이 작품들의 영상화가 몹시 반가워질 것이다. 어찌 되었든 교과서 속 활자들이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을 통해 생생한 영상으로 살아나면서, 이제 읽는 이가 아닌 ‘보는 이’에게 우리 문학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정서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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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포스터 | ||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문학’이라고 칭해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세 문학작품은 한국단편소설 최초로 애니메이션화 된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소설을 영상으로 재현했을 때에는 대체로 흡족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상 속에서 창조하는 세계의 정교함에 비해 시각적 재현이 그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에서는 소설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산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얗다.” 라는 대목을 관객에게 온전한 영상으로 선물한다. 수천 개는 넘어 보이는 꽃송이들은 충실한 재현을 위해 하나하나 손 그림으로 그려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의 배열과 달리 실제 순서는 <메밀꽃 필 무렵>, <봄봄>, 마지막으로 <운수 좋은 날>이다. 여름 봉평의 흐드러진 메밀꽃이 눈을 사로잡고, 장인에게 성례를 시켜 달라 조르는 데릴사위의 순박한 모습에 함께 웃다가 곧이어 1920년 일제강점기의 경성에서 김첨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김첨지의 명대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과 상처이다. 주인공들 뒤로 우울한 경성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재현한 배경과, 그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중들의 디테일한 모습이 감상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신작 영화도 극장에서 나온 순간부터 잊히기 시작한다고 하는 것이 과언은 아니다. 작년에 봤던 영화도 떠올려보면 가물가물한 현실이다. 우리 민족이 가장 힘든 시기에 쓰였기에 더 애틋한 이 문학 작품들이 영상을 통해 더 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이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올 하반기에 ‘소나기, 무녀도’ 또한 개봉 예정에 있다니 더욱 더 많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