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감지나] 언제부터 일명 ‘나쁜 남자’가 멋진 남자의 표상이 되었을까. 세련된 도시남녀의 표본인 것 마냥, 종종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이 사랑이라는 결론으로 합리화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것의 반증일터. 솔직함이 도리어 어색해진 우리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좋은 말, 따뜻한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 속고 속이는 얼굴에 익숙해져서인지 스스로에게조차 상처를 내야만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기에 두꺼운 가면을 관통하여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말을 듣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있다면 다정한 말을 아끼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 앞에서도 힘껏 사랑했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되새겨볼까 한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진부한 비극적 로맨스같이 보이지만 아니다, 분명 우리 주변의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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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 영화포스터 | ||
“ <안녕, 헤이즐>의 원제 <The Fault in Our Stars>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시저가 브루투스에게 했던 대사,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not in our stars) 자기 자신의 실수(the fault in ourselves)”라는 말을 거꾸로 패러디하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주인공들이 암에 걸린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도 함께 얘기하고 있다.” [출처: 씨네21, 주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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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틸컷 | ||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두 주인공이 책이라는 매개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된다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를 여러 번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 또한 아름다운 대사 때문이다. 정말 셰익스피어의 화법의 현대판처럼 간단한 영어임에도, 그 간결함이 많은 의미로 와 닿는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배우들뿐만 아니라 대사에 집중해서 가능하다면 꼭 여러 번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헤이즐은 관객들에게 사과부터 건넨다.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여자애들이 좋아할만한 로맨스가 아니라, 그녀는 단지 진실을 보여줄 뿐이라고 전한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암투병 중인 십대소녀 헤이즐(쉐일런 우들리)은 평소 <거대한 아픔>(An Imperial Affliction)이라는 책을 즐겨 읽는다. 담당의사와 부모님의 권유로 그녀는 한 교회의 단체(support group)에서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를 만난다. 그는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 일이 가장 절망적이라고 말하는 열여덟 소년이다. 하지만 헤이즐은 모든 인류가 없어진 후엔 누구도 기억할 사람이 없다고 반박하며, 차라리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다소 심오한 그녀와 유머스러운 그의 첫 만남은 로맨틱하진 않다. 그러나 어거스터스의 자유분방함에 끌린 헤이즐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책을 교환하고, 점차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다.
헤이즐은 <거대한 아픔>의 결말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을 갖고 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어거스터스는 작가의 조수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그들은 암스테르담에 초대를 받는다. 하지만 작가인 피터 반 후텐(윌렘 대포)의 알 수 없는 말을 듣고 그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어쩌면 피터는 원하는 대답을 듣고자 했던 헤이즐의 얼굴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피터는 잔인하게도, 책은 단지 소설일 뿐 그냥 끝이며 그 후에 아무 일도 없다며 소리친다. 헤이즐은 억지로라도 이야기를 지어내라며 분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이후, 피터의 말처럼 꿈같던 암스테르담 여행은 어거스터스의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로 두 사람은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지루한 표현일지라도, 사랑이란 감정은 끝이없기에 그들은 함께 행복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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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틸컷=공원데이트 중인 어거스터스와 헤이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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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틸컷=암스테르담 여행 중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 ||
헤이즐은 안나 프랭크의 사가에 방문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고 깨닫는다. 답변을 들으러 왔던 그녀는 스스로 답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십대소녀와 소년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충분히 괜찮다고 위로한다.
아름답게 끝나면 좋았을 그들의 로맨스는 처음 헤이즐이 사과한대로, 멋지지 않은 엔딩을 맞이한다. 끝까지 용기를 보이지 못했던 어거스터스와, 그의 죽음을 보면서 항암치료보다 더 아팠다는 헤이즐 그레이스. 그래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 연인은 서로의 사랑을 삶의 끝자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등장했던 <거대한 아픔>의 한 구절 “아픔은 느낄 필요가 있다”(Pain demands to be felt.)라는 말처럼, 헤이즐은 충분히 울고 다시 행복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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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틸컷=어거스터스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데이트를 즐기는 두 사람 | ||
“너한테는 이걸로 부족해? 이게 네가 가진 전부야. 나를 가졌고, 부모님을 가졌고, 이 세상을 가졌어, 그게 다야. 네가 이걸로는 충분치 않다고 해도 미안하지만 이건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해, 내가 널 기억할거야.” -헤이즐
장례식에 온 작가 피터는 헤이즐에게 한통의 편지를 전한다. 그것은 어거스터스가 헤이즐의 추도사를 미리 써두려고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인 피터의 충고를 듣고자 보낸 메일이었다. 그의 말은 어떤 영화보다 로맨틱하고 순수한 사랑의 시구처럼 들려, 가슴이 저린다. 불완전한 폐를 가진 헤이즐과, 한쪽 다리밖에 없는 어거스터스가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상처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하기로 선택했다면 상대의 진실에 과감히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확실한 진심을 나눌수록 분명 그 사랑은 더 아름다워지리라 믿으며..
가장 현실적인 결말 끝에 동화 같은 사랑과 용기가 담긴 그의 고백. 그 마지막 말로 이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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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틸컷 | ||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우리가 고를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제 선택이 좋아요. 그녀도 자기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어거스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