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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처음으로 설레게 한 인디밴드를 기억하시나요? : 더멜로디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신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오늘도 그 분들 덕에 일상 속에서 잿빛 하늘을 뚫고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을 본다. 당신은 가슴 속에 어떤 신을 품고 있는가? 종교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품어둔 여신은 누군가? 세간의 공식적인 여신은 수지와 아이유를 포함한 열 명 정도로 추려진다. 내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시지만 한결같이 가슴 속에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 트로이카를 품고 계신다. 형은 아이유 때문에 아직도 유튜브로 치킨 광고를 찾아본다. 왜 친구들이 컬트에 가깝게 취급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 속 여신은 변함없이 강승현이다.

남자들마다 품고 있는 여신은 다르다. 그리고 한 명의 남자에게는 그가 겪어온 시절마다 각각의 여신이 있다. 얼마 전 여자 친구와 하드에 저장해놓은 드라마 ‘커피프린스’를 보다 문득 내 중학생 시절의 여신이 떠올랐다. 드라마라고는 야인시대밖에 본 적이 없던 내가 훈남들이 대거 출연한 ‘커피프린스’를 보게 만든 것은 보호심리를 자극하던 윤은혜도, 소년의 동경을 일깨우던 채정안도 아니었다.(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마다 ‘하쓰미’가 등장하면 채정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를 저녁 9시마다 TV앞으로 끌어들인 것은 OST를 불렀던 더멜로디의 ‘타루’였다.

그 시절, 친구들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미쳐갔다. 홍대 여신으로 꼽히던 요조와 레이디제인도 좋았지만, 내 마음 속의 홍대 여신은 분명히 타루였다.

   
▲ 더멜로디 1집 (파스텔뮤직. 2007)

http://www.youtube.com/watch?v=-AMzb4ozKYY (EBS 스페이스 공감 ‘더멜로디’편)

타루를 맨 처음 본 것은 2007년 5월 방영된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였다. 당시 ’더 멜로디‘라는 팀의 보컬이었던 타루는 지금과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지미헨드릭스 티셔츠를 입은 기타리스트(관영)와 쪼그리고 앉아 키보드를 치는 키보디스트(고운) 사이에 서 있던 타루는, 지금보다 덜 정제된 느낌을 발산했다. 깡마른 몸매에 검은 단발, 녹색 원피스,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허스키한 창법을 구사하던 그녀는 크리스탈 캐슬즈의 앨리스 글래스를 서정적인 버전으로 바꾼 것 같았다. 당시 타루의 나이도 스물여섯.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내 눈에는 선망해오던 옆 반 교생선생님을 대학가 어딘가에서 마주친 기분이었다. 아직 소녀티가 간간히 묻어나는 그 사람이 대학가 어딘가에서 유쾌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마주한 느낌이라는 말에 당시 더 멜로디 팬들이 공감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십대 중반은 예술가에게 있어서 사춘기 시절부터 품어온 고뇌와 기법들을 비교적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되는 시기다. 자연스럽게 싱그러움과 풋풋함이 어른스러움에 거칠게 묻어나는 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내 감상이 아주 뜬금없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타루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첫 사랑처럼 떠나보내는 밴드가 하나씩 있다. 노브레인 초창기 팬들은 차승우가 빠진 노브레인을 첫사랑의 새 남자친구만큼 욕한다. 럭스 1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슬립낫 1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피타입의 헤비베이스 앨범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등등.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인디음악으로 처음 끌고 간 밴드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들과 이별을 겪는다. 다른 밴드에 빠져 있느라 멀어지거나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점점 색채가 변해가는 ‘첫 인디밴드’를 보며 팬들은 첫사랑을 떠나보낼 때와 비슷한 반응들을 보인다. 욕하거나 신경을 끄거나 과거를 그리며 현재를 안타까워하거나 그래도 좋아하거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때의 분위기가 조금 묻어나는 모습으로 지금 나름의 모습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 더 멜로디

내 ‘첫 인디밴드’는 더 멜로디였다. 타루의 목소리와 외모,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음악, 서정적인 가사는 온몸이 녹아들 듯 매력적이었다. 특히 한 앨범 내에서도 트랙마다 색채 달라 듣는 내내 더멜로디만의 감성을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말랑말랑한 ‘Remember’와 ‘Paradise’를 비롯해 쓸쓸함을 달착지근하게 표현한 ‘Everything N`nothing’, 이별의 아픔으로 무너져가면서도 성숙한 모습을 애써 보이려는 ‘Love box’, 네팔의 쿠마리를 모티브로 한 ‘Doo be rap’ 등을 모두 듣고 나면 다사다난한 고전 소설 한 권을 읽고 난 것처럼 작품 세계의 독특한 색채가 모든 감각에 엉켜있었다. 요즘도 카페에 가면 종종 더멜로디 1집에 수록된 노래들이 나온다. 거칠지만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반항적이면서도 순수한 가사를 노래하는 타루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앞 사람과의 대화를 끊고 노래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더멜로디는 2007년 1집을 낸 뒤 기타리스트인 관영이 탈퇴하고 키보드와 작곡을 맡던 고운이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보컬이던 타루의 솔로 활동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타루만의 서정적인 가사와 색채는 이전보다 더 발전되었고 훨씬 많은 팬들이 생겼다. 하지만 더멜로디 시절의 색채에 반했던 일부 팬들은 그 색채가 조금씩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 색채는 원래 ‘타루’가 아니라 ‘더멜로디’의 색채였기에 흐려지는 것이 당연했고, 더멜로디 팀이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색채가 변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 색채에 반했던 사람들이기에 자연스럽게 타루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첫사랑들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변하고 우리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우리는 자그맣게 응원하며 조용히 물러난다. 솔로 활동을 하게 된 타루와 더멜로디 팬들의 관계도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타루는 자신만의 색채를 발전시키며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데뷔한지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신인 때와 거의 비슷한 외모로 더 풍부해진 음악을 선보이며 최근에는 새 앨범도 냈다고 한다. 조그맣게라도 의지할 대상만 있다면 행복해 어쩔 줄 모르던 사춘기 시절, 마음 속에 여신으로 모셔왔던 타루의 새 음반이 첫 사랑의 근황을 듣는 것처럼 몹시 궁금하다.

   
▲ 타루의 새 앨범

2007년, 16살이던 나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마지막 곡인 ‘Crazy’가 나올 때 소파에서 고개를 쭉 빼고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설렘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전주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TV에 빨려들었다. 노래가 끝나서야 미소를 감추지 못하면서 소파에 등을 찰싹 붙이고 다리를 떨며 안절부절 못했다. 전자 기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영상만으로 설레 어쩔 줄 모르는 경우가 살면서 얼마나 될까? 다음 날 학원까지 지각하면서 더 멜로디의 앨범을 사러갔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더 멜로디의 앨범을 ‘아껴서’ 듣는다. 혹시라도 아무 생각 없이 그 앨범을 귀에 꽂고 다녔다가 그 때의 설렘이 일상 속으로 날아갈세라, 고이고이 모셔두다가 따뜻한 바람이 애간장을 녹일 듯 설레는 여름밤에 혼자 꺼내 듣는다.

[디아티스트매거진=주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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