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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 ||
누군가가 말했다. 그날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고 싶거든 이 영화를 보라고. 나는 이 영화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 봤고, 다시 보고 싶은 장면도 알차게 돌려서 봤다. 보고 나서는 그렇게까지 우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뷰를 쓰려고 다시 영화를 곱씹으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진다. 마츠코의 생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랬다. 남에게 자신의 인생을 갖다 바치는 마츠코를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츠코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 데이고 나서는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남에게 헌신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그러나 우리의 마츠코는 그렇지 못한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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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 ||
여기서 우리는 마츠코의 어린 시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어린 시절은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강하다. 어린 시절, 마츠코는 자신의 존재 그대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찬밥 신세였던 마츠코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았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녀는 자신을 업신여김으로써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본모습이 아니다. 그녀가 얼굴을 기묘하게 일그러뜨린 사진은 남을 위해서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지독할 정도로 남에게 의존하게 되는 삶을 의미한다.
영화의 분위기처럼 마츠코가 맑고 밝고 아름답게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마츠코는 온갖 막장스러운 인물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 이들에게 마츠코는 그야말로 ‘호구’다. 마음만 먹으면 등골까지 아낌없이 빼먹을 수 있는 대상. 그녀의 인생은 겉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타인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마츠코는 겉으로 보기에 지독히도 혐오스러운 인생을 살다 간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녀의 조카만은 그녀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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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 ||
영화는 왜 조카의 입을 빌려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걸까? 마츠코의 조카는 뭐 하나 잘난 게 없는,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인물이다. 그는 이것도 저것도 되지 못한 평범한 다수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화같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은 현실에서는 극소수일 뿐이다. tv를 틀면 각종 성공 신화가 넘쳐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성공한 사람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기에 tv에 나온 것이다. 어린 시절, 누가 자신이 백조가 아닌 까마귀일 줄 상상이나 했을까? 대다수는 원하는 인생이 아닌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나 뜻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된다. 심지어 마츠코처럼 재기에 실패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사랑만을 추구하던 마츠코의 일생은 비참하게 끝났고, 사람들 대부분이 별 것 없는 인생을 살다 간다고 말해도, 오히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령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인생을 산다 하더라도, 추구한 목표가 실패한다 해도, 과연 우리의 삶이 가치가 없는 걸까? 최소한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녀가 한 번만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서 마츠코의 생애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기는 싫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지독한 현실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츠코에게 공감할 것이다. 아무리 못난 삶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영화의 연출은 슬픈 이야기를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즐겁고 화려해서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 특유의 만화 같고 과장된 연출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츠코>는 지금까지 본 일본 영화 중에서는 그런 방식의 연출이 가장 어울리는 영화인 것 같다. 언뜻 보면 과장되고 유치하며 정신없어 보이기까지 한 연출은 되려 이 비극적인 이야기에 독특한 색깔을 불어넣는다. 도저히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차마 있을 거라 믿고 싶지 않은) 마츠코의 생애와 과잉된 연출의 결합은 기묘한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그런 연출이 이야기가 주는 암울한 색채를 조금이나마 옅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누구보다도 ‘혐오스러운’ 인생을 살다 간 마츠코지만, 나는 그녀를 차마 욕하고 싶지 않다. 아마 영화를 본 분들도 대부분은 그러하리라 믿는다. 그녀가 정을 준 사람들 중 아무도 그녀를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단 한 사람, 그녀의 조카가 그녀를 알아준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녀의 조카, 혹은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마츠코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