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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간신>은 망하고 <왕의 남자>는 흥했을까?

   
▲ ⓒ 영화<간신> 포스터

올해 개봉한 영화중, 아마 평론가들을은 물론이고 관객 입방아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뜨거운 한국영화하면 아마 ‘간신’일 것이다. 익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관객과의 호흡이 잘 맞는 감독 ‘민규동’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이번 ‘간신’은 그에게 큰 모험이 될 법한 영화였다. 위에 언급한 ‘감동’ 라인의 트랙에서 벗어나 ‘사극’을 그것도 ‘수위가 높은’ 사극을 처음으로 찍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극은 처음이라 따르는 부담이 굉장했다.” 라는 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사극을 영화한다는 것은 ‘시각적 고증’으로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말이 많은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니 감독 입장에 서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더 힘을 주고 영화에 임해야 한다.

   
▲ ⓒ 영화<간신>의 ‘채홍’을 위한 여자 징집 장면

興淸亡淸(흥청망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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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채홍사(採紅使)를 파견하여 각 지방의 아름다운 처녀를 뽑고 각 고을에서 기생들을 관리하게 하고, 기생의 명칭도 ‘흥청(興靑)’이라고 칭하였다. 연산군은 ‘흥청’들을 모아 놀다가 中宗反正(중종반정)으로 실각해서 생긴 말

​위 영화는 ‘연산군 11년, 여색에 빠진 연산군이 간신 임숭재와 임사홍에게 채홍의 전권을 하사, 조선 팔도의 미색을 모두 잡아오라 명하다.’ 란 이 한줄에 함축된다. 자신의 어미 폐비 윤씨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자신의 어미의 죽음에 관련된 모든 후궁과 신료, 할머니까지 처단하는 ‘갑자사화’를 일으킨 후 끝을 모르는 주색에 빠져 사는 왕이 이번에는 ‘왕실의 후손을 도모하고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란 목적으로 조선의 팔도 미녀를 모두 잡아들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전의 자리를 채우기 위함이라는 연유에 써야 할 말이거늘 자신이 명한 이 ‘채홍’은 자신의 색욕을 채우고자 기생을 들이는 일에 불과한 일이었다. 그러니 위에 자신이 내뱉은 저 말에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인 것이다.  어찌 됐든, 왕의 말이 곧 법이요, 이를 어기면 죽음이나 이에 고개를 조아리고 따르면 왕의 총애를 얻는 법, 특히 간신이라면 약삭빠르기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일찍이, 왕에 눈 안에 어여삐 들어 왕의 총애를 받고 이번에는 왕이 ‘채홍’을 이 둘에 맡겼으니 이것이 기회라. 간신 부자(父子) 임사홍과 임숭재는 왕의 그칠 줄 모르고 침을 질질 흘리며 벌리는 그 입에, 색욕으로 잔뜩 찌들은 그 입에 여자들을 떨어뜨리며 왕을 주무를 수 있으므로 즐거워 나비 춤 추듯 이 기회에 날뛰게 되는 것이다. 흥청이 망청이 될 줄은 모르면서 말이다.

   
▲ ⓒ 영화 <간신>의 왕과 두 간신 父子

“단 하루에 천년의 쾌락을 누리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나이다.”

그들은 분명 쾌락에 취해 있다.

그러나 관객은?​

간신 임숭재는 말한다. ​”단 하루에 천년의 쾌락을 누리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나이다.” 쾌락에 눈 먼 왕에게 이보다 더 꼬리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이 말대로 이 영화는 쾌락을 위한 영화이다. 정확히 ‘왕의 쾌락’을 위해 끝없이 비위를 맞추는 간신의 놀음을 위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데 어째 이상하다. 분명 스크린 속의 왕은 피 튀기며 재밌게 놀며 술에 취해 계집 치맛폭에 취해 이제 간신배 손에도 실컷 놀아나고 있거늘 왜 보는 이들에게는 영화 속 흥이 전해지지 않는 것일까? 분명 스크린은 화려하다. 화려하게 꾸민 무대와 쉴새 없이 보여주는 여인들의 뽀오얀 살결에 보는 이의 눈은 분명 더 재미봐서 좋아야 하거늘 어째 눈이 호강하기는 커녕 눈살만 찌푸리게 된다. 필자는 이 점을 흥미롭게 느껴 같은 연산군을 그린  십년 전의 영화 ‘왕의 남자’를 끄집어내기로 했다.

 <왕의 남자>에는 있고 <간신>에는 없는 것은 무엇인가?

​’조선의 최고 궁중 광대, 왕을 가지고 놀다!’ 란 카피 하에 그려진 영화 <왕의 남자>. <왕의 남자>는 십년 전인 2005년 ​누적 관객 수 천만을 돌파하며 십년 전 기록으로는 흔치 않은 ‘천만관객 동원’ 영화반열에 올랐다. 이에 비해 <간신>은 힘겹게 이제 백십만을 넘어섰다. 단순하게 관객동원 수치로만 영화의 작품성을 가타부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분명 작품성이 충분한데도 다른 영화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는 영화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둘 다 한국영화로서 개봉 전부터 대중의 관심을 높이 받았다는 것 그러나 개봉 후에 왜 한 쪽은 입소문으로 승승장구한 반면 왜 다른 쪽은 대중들이 외면하였는가 이다. <간신>에는 없는 <왕의 남자>의 흥행 묘책이 있는 것일까?

   
▲ ⓒ 영화 <왕의 남자>의 왕과 광대 공길

중심을 잃지 않고 굵직하게 흘러가며 중도를 지킨 <왕의 남자>

​<왕의 남자>와 <간신>은 둘 다 연산군 시대를 그린다는 점은 동일하나 <왕의 남자>는 연산군 상대역으로 왕의 마음을 어르고 헤아리는 광대 ‘공길’을, <간신>은 왕의 비위를 맞추며 왕을 손아귀에 넣고 ‘왕 위의 왕’으로 군림하려는 간신 ‘임숭재’를 두었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하여, 필자는 이 점에서 영화의 내용과 구성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비교적 대중의 호평을 받았던 영화<왕의 남자>를 보자면, 영화의 중심내용이 끝까지 흐트러짐없이 굵직하게 흘러간다. 폭정을 하는 연산군 앞에 나타난 광대 ‘공길’이 여자보다 더 고운 미모와 왕의 어지럽고 가여운 헤아리는 능력을 지녀 왕을 사로잡기까지 그리는 과정이 공길과 연산군의 만남부터 영화 끝까지 굵직하게 그려진다. 또한 영화의 중심내용 옆에 따라붙는 마이너한 씬들, 왕이 색을 탐하고 칼을 부리는 씬 또한 등장하였으나 영화 흐름상 필요한 씬에만 넣었다. 즉, 영화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치하며 또 관객이 눈살을 지나치게 찌푸리지 않아야 한다는 연출자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중심은 잃지 않고 중도를 지켜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잃지 않은 것이다.

   
▲ ⓒ 영화<간신>의 연산군과 단희

자극적일정도로 화려하고 매서우나 중심과 중도를 모두 잃어버린 <간신>

그렇다면 <간신>은 어떠하였는가? 영화의 초장부터 자신의 어미의 죽음에 분노한 연산군의 ‘갑자사화’로 시작을 하여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이는 왕의 ​채신머리를 잃어버린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짧은 시간에 왕이 얼마나 지금 몰락한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감독의 생각으로 고려해볼만 하였다. 이 영화의 핵심은 따로 있잖은가.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채홍’ 이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색욕에 빠진 연산군이 간신 ‘임숭재’와 그의 아비 ‘임사홍’을 시켜 계급불문, 혼인불문하고 조선팔도의 여자를 다 내 눈앞에 대령하라는 명이었다. 이에 조선의 여자의 씨는 모두 왕 앞에 있을지어다. 이는 감독의 말마따나 자국민 여성을 그것도 왕이 스스로 징집한 전무후무한 희대의 행각이었으며 왕이 스스로 ‘흥청망청’하도록 자신의 몰락을 초래한 사건이니 분명 영화적 소재로선 흥미롭다. 즉, 대중은 이 영화적 소재를 문제삼아 외면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영화를 빼곡하게 수놓은 불필요한 씬들 탓이다. 특히, 영화 개봉 전부터 주목 받았던 포르노를 연상케하는 ‘외설적인 씬’들 때문이 그렇다. 혹여 역사서에 외설적인 말들이 그리 기록되어있다고 한들 영화에 반드시 넣어야 할 부분과 빼야 할 부분을 가려내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다. 이를 위해 연출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영화는 어떤가? 이 영화는 ‘왕 위의 왕’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야욕에 눈이 먼 ‘간신’을 중추적으로 그려야 하였으나 오히려 한 씬 걸러 나오는 외설적인 씬들 때문에 영화 자체로나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나 영화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하여, 보고 나온 관객들이 이것이 ‘역사고증영화’인지 ‘포르노색정영화’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평하는 것이다.

​영화는 연출자의 거울, 대작이 될 수 있던 영화이기에 더 아쉬워

영화는 연출자의 거울이다. 연출자가 영화촬영지에서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총괄할뿐더러 영화 작품에서도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영화는 그 연출자의 거울이 된다. ​그런 부분에서 <간신>은 매우 아쉽게 되었다. 첫 사극을 맡은 민규동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화에 넣고 싶은 씬들에 대한 욕심은 매우 컸다. 연산군의 몰락을 설득력 있게 해줄 ‘갑자사화’로 포문을 열어, 중심이 되는 ‘채홍’소재로 보는 색욕, 미치광이의 광기 속에 숨겨진 어린 마음에 이은 예술욕까지 연산군의 입장에서만 봐도 그려내는 것이 많다. 그러나 예서 분명히 봐야할 것은 마이너 씬이 메이저 씬의 자리까지 침범해선 아니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동등해져버리면 중심이 가려져 어느 하나 튀는 중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이너스 씬만 불필요하게 많아지면 영화의 가치도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이다. 분명,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그린 영화로서 대작이 될 수 있던 가능성이 있던 영화였으며 김강우, 주지훈 등 배우들의 역에 흠뻑 빠진 연기또한 좋아 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는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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