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이파] 일본 대덕사에는 다완으로서 일본 최초로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된 한반도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있다. 통칭 ‘기자에몬’, ‘이도다완茶碗’이라고 불리는 찻잔이다. 그렇다면 상상되는 것은, 조선의 백자 혹은, 고려의 청자를 생각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 상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람 밥그릇으로도 용도가 부적절해 보일정도로,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찾기 어렵다. 물론, ‘도자기도 모르는 놈’이라고 핀잔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아름다움’이란 기준에 속할 수 있는 물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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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에몬 이도>, 교토 대덕사 | ||
일본은 차의 유입 이후, 다도茶道 문화가 매우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이다. 가히 독보적, 기형적으로 보일만큼 발달한 국가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즐기는, 잎차가 아닌, 걸쭉한 말차를 주로 즐긴다. 때문에, 이와 같은 사발형식의 자기가 생활필수품 중 하나였다. 다도 문화는 전국 시대에 절정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와비사비’라는 일본 특유의 미감으로 발전시키는데, 문화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 와비사비란, 철학적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한적함과 여유, 간소하고 검소함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전국시대 자기수요 계층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중국 자기보다는, 단아하고 청렴한 인상을 주는 조선의 자기를 선호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진정한 청렴함과 검소함을 중시하기보다는, 단순히 유행이자,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기자에몬은, 물건에도 서열을 매기기 좋아하던 옛 전국시대 인물들이 ‘천하제일 대명물大名物’이라고 칭하던 찻잔이다. 명물의 반열에 오른 기타 다도구들 조차 성 하나와도 바꾼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나, 전국에 퍼져있는 ‘카타츠키’라는 세개의 대명물 도자기를 모두 모아야, 일본을 통치할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이 도자기가 가지는 상징성과 희귀성은 매우 컸다.
기자에몬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우리에게도 유명한 일본 권세가들의 손을 모두 거쳐간 역사적인 물건이지만, 정작 당시 조선에서 명확한 생산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하급의 자기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조선의 도공이 엄청난 공력과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동시대의 조선에서 제작되는 백자만 보아도, 상질의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이 도자기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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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시바 카타츠키> 좌, 현재소실 <닛타 카타츠키> 우, 나고야 도쿠가와 박물관 | ||
이것은 미감과 미의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대륙과는 다르게, 도자기 제작기술이 없었다. 이것은, 범세계적으로 해당되는 이야기일 정도로, 도자기는 ‘하이테크 상품’이였다. 개인적인 견해로, 전국시대, 극소수 계층만 향유하던, 도자기 조차, 생산지 본토에서는 매우 하급으로 취급받는 도자기였을 것이다. 때문에, 기자에몬과 같이 생산지 본토에서는 하급으로 취급받는 막사발조차 제작기술이 없는 일본에서는 명물의 반열까지 오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아직 사학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기자에몬이 가지는 그 의미는 평가절하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에몬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보이는 그대로다. 쩍쩍 갈라지고 멋대로 흘러내린 유약과, 손자국이 보이는 형태, 이는, 깔끔하게 떨어진 기형과 매끈한 유약을 상질로 취급하는 우리와 달리, 극단적 평범함. 이것이 당대의 일본인이 가진, 미의식이자 미감이다. 단순한 장식적 아름다움과 사치적인 형태가 아니다.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당사자가 가지는 감성과 생각을 통해, 당시 조선의 밥그릇 수준인 그릇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 타국의 미의식과 미감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틀을 벗어난 독특하고, 초월한 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갈라진 매화피를 만지면, 도검 손잡이의 질감이 느껴져 좋아했다는 이야기와 다른 차원의 사치라고 이야기도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순간 함께 했던, 도자기이기에, 그 역사성과 상징성이 한 몫 했다고 하지만, 이 그릇에는 일본인이 부여한, 그 이상의 미적 세계관이 담겨있다.
무엇이 예술을 만드는가? 기자에몬을 생각하면, 현대미술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아름답지 않은 것에, 별 것도 아닌 것에, 아름답다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제작자의 의도보다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더욱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일개 밥그릇이 천하제일 대명물이 되기까지는 사치 풍조와 세치의 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여러분 각각의 깊은 의미와 정신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일단, 이 밥그릇이 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자체부터가 예술이다.

